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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네팔 카트만두 둘째날

bravebird 2024. 3. 5. 00:15

일찍 잠이 깨서 포카라까지 이동 방법을 알아보았다. 대부분 타멜까지 가서 버스 타는 방법만 나와있길래 보다나트에서 바로 가고 싶어서 숙소에 문의하였다. 친절한 숙소 주인 아들이 보다나트부터 포카라까지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 주었고 가격은 1200루피였다. 아침 6시 45분 버스인데 인도 네팔 특)은 버스 승차지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걍 대충 길거리 아무 데나 세우고 중간에 지점을 바꿔 버리기도 한다. 짐이 무거워 뛰기도 어려운데 그래 버리니 버스 타러 갈 때마다 참 긴장이 된다. 방금 전에 표를 전달받았고 정확한 승차 지점과 버스 번호와 색깔까지 확인해 놨으니 내일 아마 괜찮을 것이다. 주인 아들이 기사에게 전화해서 직접 확인해 주어 너무 고맙다.

아침엔 숙소에서 도보 거리에 있는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갔다. 12년 전에 왔을 때 여긴 가보았을 확률이 높다. 입장료가 1000루피(약 1만원)여서 들어가진 않았다. 불교 제외 다른 종교 사원은 굳이 내부까지 들어가보진 않게 된다. 특히 신발 벗고 맨발로 가야 되면 좀 힘들다 ㅋㅋㅋ 밖에서 더러운 강줄기를 구경하고 장작 태우는 매연을 마시며 사람 구경을 하다가 떠났다. 실시간으로 먼지를 때려맞고 있는 게 느껴졌고 새로 꺼내입은 옷이 벌써 소매가 까매진 게 보였다. 근데 어제 양말을 빨아보니 여긴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온수 온도가 애매해서 샤워도 못할 생각을 하니 킹받았다. 난 이곳에서 강하게 키워지고 있다.




이후 보다나트 스투파로 돌아와서 5시 6시 넘어서까지 그냥 멍하니 앉아 있거나 탑을 돌았다. 햇빛이 따사로웠다. 드러누워 낮잠을 자는 강아지들을 구경했다. 길거리에서 조는 강아지 역시 인도아대륙 특)이다. 부탄에도 인도에도 그런 강아지가 많았다. 동물들은 어제도 내일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충실한 것 같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여기선 강아지만 만나면 눈길이 가 사진을 찍게 된다.




덩그러니 낮잠 자는 강아지들과는 달리 나는 오늘 앞날을 생각했고 돈 계산을 했다. 아 앞으로 뭐먹고 사노 아이고 노답. 신용대출은 8월이 만기이니 5월쯤 중도상환 수수료가 면제될 것이다. 그때 일시상환을 하고 나면 수중의 '현금'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월급이 끊겼으니 캐시플로우가 참 소중하다 느낀다. 사실 직장에서 월급생활자로 일한다는 것은 별다른 밑천 없이도 취직 그 즉시 매달 현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득인 일이다. 월급만큼의 배당 소득을 얻으려면 대체 몇십억을 집어넣어놔야 하는가. 하여튼 내가 밑천 없이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그 점 때문에 기업으로 갔는데 참으로 재민 없었다. 그 당시에 우리 집에 별 탈이 없었더라면 좀 다른 선택을 했을까? 이 상황은 언제 해결되나? 해결은 가능한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가? 내가 이 모든 걸 전혀 상관을 안하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위인인가? 아니 아예 집이랑은 상관없고 그저 내 성격이고 내 카르마인가? 뭐 이런 생각들이 났는데 과거를 가정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듯 하다. 내겐 재정 자립이 중요하므로 과거를 되돌이켜 보더라도 어쨌건 최대한 빠르게 돈벌이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을 갔을 것이고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생각 불필요.

불행하게도 그간 직장 생활은 몸서리 나게 재미가 없었고 오로지 원화 채굴의 의미밖에 없었다. 그 얘긴 그간 누누이 써서 질릴 정도이다. 그럼 그 다음은 도무지 뭘 해야 되노. 어떻게 하면 현금이 매달 생겨서 생활을 부지 가능한 거고. 돌아가서 일이 하기가 싫고 일거리를 못 찾으면 집은 전세 내놔야 되나. 가전은 어떻게 빼노. 책은 어디다가 가져다 놓아야 되노. 이 다음에 대체 뭐가 돼야 하노. 그런 생각들이 오늘 유난히 뜬금없이 났는데 지금으로선 전혀 모르겠다. 대체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먹고 살 길이 참 막막한데 주변 사람들은 내 걱정을 않는 것도 조금 기이하다. 날 믿어주는 것이므로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나는 그다지 쓸모가 없는데 주변 사람들은 날 유능하게 보는 그 격차가 커서.. 그간 사기를 쳤나 싶은 생각이 든다.. ㅋㅋ... 그래서 며칠 전 부탄에서 신기한 연으로 만난 어떤 스님이 내 상황에 대한 얘길 듣고 얼굴에 띄웠던 표정, 고통과 연민이 담긴 그 찰나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생각하면 약간 눈물도 맺힌다. 나는 그간 연민의 대상이 되는 건 싫어했었는데. 극 T 인데. 내 고통을 남이 느낀다는 것,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상당히 특별한 일이구나. 이 얘긴 다시 할 것인데 내 재주로 전달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뭐 그런데 누가 미래를 알고 사나. 그냥 확실한 것은 하루하루 생존에 단순하게 집중하며 하루씩만 더 얻어 나가면 모든 일은 지난 일이 되어 매듭이 지어진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일들을 미리 결론을 내고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현재의 불확실성 안에 인내심 있게 머무르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해 나갈 줄 알아야 된다. 당분간 놀기로 했으면 잘 노는 데만 집중해야 해.

부탄에서 스님이 내주신 숙제는 그냥 1분씩만 시간을 설정해 놓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혹은 아무 물체를 마음을 텅 비우고 바라보라는 것이다. 딱 1분만. 그러한 명상 역시 지금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이해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보다나트 스투파에서 거의 다섯 시간 넘게 머무르면서 탑 위의 비둘기를 바라보거나 강아지를 바라보거나 하다가 앉아서 꾸벅꾸벅 같이 졸다가 걷다가 노래를 듣다가 했다. 비틀즈 노래였다. 헤이 주드랑 렛잇비.

이 노래들이 유난히 생각이 나서 며칠 전에 부탄에서 노래방 갔을 때 골랐는데 옆에 친구도 같은 노래를 고르더니 함께 불러 주었다. 이것 역시 참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친구는 그 노래들을 고르게 되고 그 노래들에 위안을 받게 되는 내 상황은 전혀 모른다. 그래도 노래를 통해 어떤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단 건 특별한 일이다. 난 어떤 시절에 어떤 경험을 겪으면서 듣거나 불렀던 노래들이 그 공간과 함께 각인이 되는데 부탄과 보다나트는 헤이 주드와 렛잇비로 기억될 것이다.

계속 탑돌이를 하다가 저녁쯤 돼선 포카라에서 묵을 만한 숙소를 몇 개 봐두었다. 포카라에서는 친구를 만나서 같이 마르디 히말 하이킹을 하려고 한다. 친구는 아직 한국에 있고 내가 먼저 포카라에 가서 그곳에서 8일 저녁 합류하여 9일에 바로 하이킹을 시작한다. 싱글룸 2개 이상 여분이 있고 하이킹 준비 전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저렴한 숙소를 하나 찾아내서 친구에게 공유해 주었다. 친구가 리뷰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여 하이킹 전야인 3월 8일 1박에 대해서만 각자 예약해 놓았다. 그 전의 숙박은 내일 가서 현장박치기 네고를 하면 더 싸게 가능할 것이다.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오늘과 그 다음날 정도만 생각해도 되어서 좋다. 오히려 인도나 네팔에선 미리 다 구해 놓고 예약해 놓고 계획을 짜놓는 것이 무쓸모이다. 알 수 없는 내 미래도 그럴 걸로 믿고 난 이제 오늘 씻고 잘 궁리만 해보겠다.



2012년 대학생 시절 미래를 모르겠어서 아마 복잡한 마음으로 돌았을 보다나트,
12년 지난 오늘날 다시 찾아와 돌아보자니 미래를 모르겠는 건 동일하고 그때보다 책임질 것도 늘어나 인생 난이도도 올라갔지만 마음은 더 금방 돌릴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이 다음에도 아마 미래를 모르겠다면서 이곳을 돌 테니 그냥 원래 사는 게 그런가 보다 ㅋㅋㅋ
그래도 그 모르겠던 막막한 미래를 막상 맞닥뜨려 보면 좋은 일들이 참 많았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대부분 좋게 기억이 된다. 그러니 오늘 이렇게 먼지바람 속에서 잡생각을 하다가 멍하니 개 구경하다가 하며 보낸 것도 언젠가는 너무 행복하여 사무치게 그리운 기억이 될 것으로 믿고 앞날을 기대해본다.
보다나트 당분간 안녕! 이제 진짜 식고 잔다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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