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포카라 첫째날 본문
보다나트에서 06시 45분 버스를 탔다. 정류장은 보다나트 스투파 바로 인근인 G Cafe 앞이었다. 숙소 주인 아들인 니라즈가 일찍 일어나서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기다려 줘서 너무 고마웠다. 인도 네팔 이쪽 지방 여행의 제일 큰 스트레스가 버스 타는 것인데 덕분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니라즈는 은행에서 6년째 일하고 있고 작년에 결혼했다고 하니 아마 나보다는 어릴 것 같다. 곧 결혼 1주년이라 뉴델리, 아그라, 뭄바이, 고아에 여행 예정이라고 한다.
듣던 대로 길은 험했다. 4시 넘어 포카라에 도착했으니 9-10시간 걸린 셈이다. 비행기로는 25분 걸린다. 길이 험해 버스가 하도 느리니 걸음수 카운트가 되는 것이 코미디이다 ㅋㅋㅋ 4-5km를 채 걷지 않았을 듯 한데 삼성헬스에 20km 걸었다고 뜬다 ㅋㅋㅋ
나는 그간 12시간 야간버스 이동 같은 것을 워낙 애용해와서 탈 만했다. 야간버스나 기차를 타면 여행 시간도 안 잃고 교통비와 숙박비 일타쌍피가 되기 때문에 적극 이용했다 ㅋㅋㅋ 근데 카트만두-포카라 간 이동은 야간버스는 추천하지 않고 싶은 게 진짜 덜컹거려서 밤잠을 잘 수는 없을 듯하다. 아침 버스를 타고 저녁 무렵 도착해서 밥 잘 먹고 푹 자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인다. 시간이 많이 한정된 여행자라면 비행기 이용. 다만 연착이 매우 잦다고 들음.
중간중간 서서 화장실도 보내주고 밥도 먹여줘서 올 만하다. 멋진 경치도 볼 수 있다. 노면이 울퉁불퉁한 거지 멀미가 날 만한 구불구불한 길도 아니었다. 오히려 길이 훨씬 잘 닦여 있는 부탄의 고속도로가 구불구불해서 처음에 경미한 멀미가 났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실사판 그 자체 ㅋㅋㅋㅋㅋㅋ 오는 길은 실제 이런 풍경과 이런 길이다. 이런 심한 갭모에가 인도아대륙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사진 속의 길 구간은 진흙탕이지만 그나마 매끈하기라도 하다. 자갈밭을 지날 때는 계속 흔들리고 걸음수가 계속 올라간다 ㅋㅋㅋ 도로 포장 상태가 이러니 먼지가 겁나 날린다. 머리 위에 에어콘을 틀어준다면 그냥 꺼버리자. 핸드폰 위에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기관지 전체에 먼지가 들러붙는다. 장거리 이동 중 에어콘 때문에 체온 떨어지고 호흡기에 이물질까지 들어오면 병날 수 있으니(인도에서 경험담) 마스크와 걸칠 옷을 준비하자. 이럴 때 쓰려고 비행기에서 담요 하나 챙겨 가져옴.
아래는 이날의 노래. The Temptations의 Shakey Ground.
https://youtu.be/W_UxlayuJpk?feature=shared
포카라에 내려서 버스 아래칸에 실은 배낭을 찾았는데 진짜 먼지에 형편없이 범벅이 돼 있었다. 내 몰골도 두더지 꼴이었다. 너무 싫다ㅋㅋㅋㅋ 숙소까지 가는 택시를 잡았는데 처음에 얘기한 가격이랑 다르게 외국인 요금을 불렀다. 실랑이를 좀 하다가 내가 그 돈은 사전에 합의된 게 아니라 못 주겠다고 하고 그냥 덜 주고 나왔다. 따지고 보면 미미한 돈 차인데 참 이렇게 기분 상해야 되는 게 내가 까다로워 그런가 싶고 참 그렇다. 숙소는 부킹닷컴 가격보다 좀더 낮은 1000루피로 얘기가 잘 됐고 상태 괜찮다. 근처에 빨래 맡길 집을 찾아봐 놨으니 내일은 제발 드디어 세탁기로 좀 전체적인 빨래 한 판 해야겠다.
웃긴 게 어제 아 이 쓸모없는 인간은 뭐해먹고 산단 말이고 하는 생각이 유난히 났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어제 글을 다 써놓고 나서 온수가 잘 나오길래 샤워를 하고 나니 생리가 시작됐다. 저런 뜬금없는 자괴감이 들고 나면 그날 혹은 그 다음날로 시작되고 정서도 완전 바뀌어 버리는 것이 거의 기계 수준이다. 또 이렇게 되면 원래 생각하고 있던 일정대로 3월 9일쯤 트레킹을 시작하기가 용이해지니 개이득이다. 트레킹은 여러 날이 걸리는데 고산 지대에서는 추워 샤워나 세수를 못한다. 생리 중에는 도저히 트레킹은 어려울 것 같은데 이번에 기간이 겹칠 듯 해서 에라이 될 대로 돼라 하던 중 잘된 일이다.
숙소를 나와 주변 인프라를 살펴보면서 페와 호수를 지나 윈드폴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그곳에서 사장님께 트레킹에 대한 정보도 얻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루트에 대한 견적도 받고 김치찌개도 한사바리 때리고 고마우신 어른들께 술도 얻어마셨다. 전날 왠지 식욕이 없어 먹은 것이 밀크티 한 잔과 간식거리인 라핑 한 접시(650원꼴..) 뿐이었고 버스 타고 올 때 자느라 내려서 점심을 먹지 않아 거의 만 이틀만의 첫 끼니였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것이 참 어메이징하다. 연비는 좋지만 트레킹 앞두고 이러면 병나니 남은 기간은 무조건 잘 먹자. 어쨌든 현재 트레킹 옵션은 서너개이다.
1. ㅍㄱㅌ와 같이 약 3박 4일짜리 마르디 히말 코스를 간다. 이 경우 가이드 없어도 되므로 경비 절약. 짧은 일정이나 ㅍㄱㅌ 유튜브에 출연하는 재밌는 경험 가능. 단 마르디 히말 완료 이후 ABC 등 타 코스를 다시 오르려면 퍼밋 및 어프로치 등 비용을 중복 지출해야 하며, 마르디 히말을 끝낸 지점쯤에서 ABC를 위한 가이드가 중도 합류하는 등의 옵션은 없음. 그러려면 그냥 시작부터 가이드를 고용하여 가야 하며 이 경우 마르디 히말과 ABC를 아예 연계시키는 건 가능.
2. 혼자 가이드를 고용하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를 간다. 약 5박 6일. 마르디 히말 연계 시 약 9박 10일.
3. 혼자 가이드를 고용하여 안나푸르나 서킷을 한다. 약 9박 10일. 이 코스는 4번을 포함.
4. 혼자 가이드를 고용하여 좀솜, 카그베니, 묵티나트 등 로어 무스탕 트레킹. 약 3박 4일이며 포카라에서 좀솜까지 버스로 오고가는 일정만 이틀 잡으므로 도보거리가 길진 않은 듯 함.
ㅍㄱㅌ는 일정 제약으로 마르디 히말만 가능하며 자기 일정에 매이지 말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한다. 난 뭐든 가능하다. 그리고 이왕 온 김에 더 길고 어려운 일정으로 하고 싶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안전상 이유로 가이드를 쓸 것이며 혼자서 고용하여 가야 하니 비용 부담이 있고 산중에서 씻지 못하는 기간이 긴 것이 최대 단점.
네팔에 오기 전 해발고도가 꽤 높은 부탄에서 거의 매일 하이킹을 했으므로 이미 고소 적응이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본다. 4000m에서도 무탈한 것을 확인하였다. 네팔은 1달짜리 비자이며 연장도 되므로 일정은 아무래도 관계없어서 서킷을 해도 되나 다만 못 씻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정이 긴 서킷의 경우 아예 낮에 씻고 쉬는 날을 둔다고 한다. 밤에는 추워서 못 씻으니까.
여하간 트레킹 전까지 남은 며칠은 루트를 정해보고 윈드폴에서 포커 좀 배우고 책 읽고 부탄 글 써놓고 밥잘먹고 잠잘자고 하여튼 쉬어야겠다. 포카라는 참 눌러앉기 좋은 평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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