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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네팔 포카라 넷째날

bravebird 2024. 3. 9. 22:01

이날은 일찍 일어나서 9시 반에 니마 아저씨를 만나러 나갔다. 전날 ㅇㅎ랑 리틀 티베트 카페에 있을 때 얘기 나눈 분이다. 사실 연세(?)는 모르니 그냥 아저씨라고 할게요.

아저씨의 어머님은 카일라스 산 인근에서 네팔 돌포 지방으로 피난을 오셨는데, 포카라 지방에 스위스 사람들이 티베트 난민 캠프를 만든 후 이곳으로 이주하셨다. 어머님은 이곳에서 아버님을 만나 2개월여 만에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셨고, 아버님은 티베트로 돌아가셨기에 아저씨를 혼자 키우셨다. 아저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처음 몇 해는 방학 때 집에 돌아올 교통비가 없어서 올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대학은 진학하지 않고 포카라에 돌아와 영어 교사로 잠시 일하다가 스위스 사람들과 연이 닿게 되어 같이 문화교류 NGO 활동 같은 것을 하게 되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스위스에 초청받아 여행을 가게 되며 그곳에 눌러앉게 된다. 티베트 난민은 여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국으로 여행을 나가는 것이 어려운데 일단 한번 가면 인도적인 이유 때문에 마음대로 추방을 할 수 없어 눌러앉을 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나간 것이 10 몇년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스위스에서는 처음에 스키 리조트 일자리를 구했는데 주로 히말라야 등반이나 네팔, 티베트에 관심이 많은 스위스 고위층 인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네팔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야 하는 상황 등을 이야기하였더니 여권 신청 절차를 밟게 되었는데 일이 잘 풀려 체류 2년만에 스위스 여권을 받으셨다. 이후 매년 두 번, 각각 한 달씩 포카라에 돌아와 어머니를 돌보고 계신데 이번에 그 기간이 겹친 것이다.

어렵게 자라셨지만 고향에 올 때마다 수트케이스에 신발을 가득 채워 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계신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신다. 지인의 연락처를 공유해 주며 나와 ㅇㅎ의 네팔 여행을 최대한 도와 주려고 하셨다. 카트만두에 가야 하는 ㅇㅎ와 달리 포카라 일정이 더 남아있던 나에게는 오토바이를 태워 베그나스 호수를 구경시켜 주셨다. 또 반드시 한 해에 두 번 돌아와 어머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철칙으로 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범으로 여긴다고 하셨다.

아저씨는 불교를 믿기는 하지만 절에 가서 기도를 한다거나 불교 이론을 안다거나 주문을 외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본인이 가능한 선에서 선행을 꾸준히 실천하며 거의 승려처럼 사시는 분이다. 친구도 너 정도면 승려도 될 수 있겠는데 어때, 하고 권했다고 하는데 본인은 스님은 못 할 것 같다고 하셨다 ㅋㅋㅋ




아저씨가 해준 재밌는 얘기는 예티 이야기다. 한 10여년 전에 세계의 설인 이야기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포카라를 방문한 미국 학자를 위해 통역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서티베트 아리 지역의 한 여성이 예티 남성에게 납치되어 아이도 낳고 20년을 생활한 후에 탈출했다고 한다. 그 여성이 귀환했을 때는 거의 동물처럼 되어서 몸에서 동물 냄새가 났고, 인간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만에 사망하였다. 그 여성의 언니 되는 사람의 진술을 통역한 것이었는데 그 언니 분도 지금 60대쯤의 나이로 생존해 있다고 한다. 또 이 분도 잃어버린 아내를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예티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봤을 때 이 분은 미치지 않았대. 뿐만 아니라 본인 어머님도 예티를 직접 목격하셨다고 한다. 하여튼 이렇게 서티베트 카일라스 산 인근 사람들은 예티에 대해서 진지하게 믿는다고 한다. 이런 기괴한 얘기는 굳이 여기까지 놀러오지 않으면 어떻게 들어 보겠나. 이제 난 여기 있는 동안 산악 가이드 분께도 예티 이야기나 야생동물 목격담 같은 것을 많이 물어볼 것이다.

또 포카라 지역은 겔룩파 불교가 우세한데 카트만두 지역은 사캬파 사원이 많다고 하셨다. 카트만두 보다나트에서 발견했던 바이다. 더하여 포카라에는 뵌뽀교의 영향이 강력한 편이며 본인도 어머님이 아프실 때 샤먼이 온 적이 있는데 샤먼이 주술 의식을 하고는 어머님의 머리를 깨물었더니 입에서 흰 벌레가 나오는 걸 직접 봤다고 한다. 본인은 그런 걸 믿지 않는데도 실제로 눈으로 본 일이라 대체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아주 흥미롭게도 카트만두에 스와얌부나트 사원 근처에 Triten Monastery라고 해서 뵌뽀교 사원이 하나 있다고 소개해 주셨다. 뵌뽀교는 거의 사멸되었다가 다시 세력을 되찾고 있다고 한다. 다람살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도 뵌뽀교 승려들을 심심찮게 만났었다고 하니 한번 찾아봐야겠다. 히마찰 프라데시 주에 Menri Monastery라고 해서 뵌뽀교 사원이 하나 남아 있긴 하지만 이게 다람살라에 있는 것은 아닌데 혹시 다람살라에도 뭔가 있는 걸까?

또, 중국 티베트 사람들과 인도나 네팔의 티베트 사람들과 아예 더 먼 외국으로 나가 국적을 취득하거나 아예 거기서 태어난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미묘한 간극이 있어 다툼이 잦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의 사이도 그렇지 않겠느냐고,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시더니 본인은 남북한 통일이 점점 비현실적인 일이 되어가는 것처럼 아마 티베트 독립도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다만 달라이 라마의 노선인 비폭력 공존이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다고 하셨다.

또 네팔은 마오이즘 혁명도 일어났었고 중국 자본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네팔 내에서 티베트 난민은 약간 bargaining chip처럼 이용되고 있다고 하셨다. 네팔 정부에서 티베트 난민에게 우호적으로 대할 경우 중국의 위협이 너무 크므로 실제적인 지위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반면 인도는 좀 다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경쟁하는 슈퍼파워이기 때문에 다람살라 망명정부도 인정하고 달라이 라마가 지낼 수 있도록 거처도 마련해 주는 등, 티베트에 대한 네팔과 인도의 대우는 서로 다르다.

본인은 스위스 국적을 얻었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점점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고 했다. 혹시 외국에서 일하거나 정착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 보셨다. 나는 젊은 시절 경험을 위해서 홍콩 같은 곳에서 일해보는 것을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에서 일하는 건 뭔가 아주 중요한 걸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단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국에서 몇 년 살아보는 건 무조건 좋은 경험일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외국에서 일한다는 건 기업에서 일해서 돈 벌고 세금을 내는 생활로 요약되는 듯 하다. 비자를 지키기 위해 긴장감 속에 일을 해야 하고, 세금은 내지만 투표권도 없고, 모국어와는 도저히 같을 수가 없는 외국어로만 생활하면서 농담도 원하는 대로 못하고, 새 친구를 사귈 수는 있겠지만 20년 30년 긴 세월 동안 서로의 역사를 지켜본 가족과 친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역시나 고국에 살다 고국에서 죽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여 결국 외국 취업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아저씨는 매우 공감한다면서 본인도 정확히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아시아로 돌아오고 싶은데, 모든 게 더 비싸고 체계가 덜 잡혀 생활이 팍팍한 네팔보다는 다람살라나 데라둔 같은 북인도가 좋을 것 같아 거기서 집 짓고 살 계획 중이라고 하셨다.

이날 엄청난 흙길을 오토바이로 오갔기 때문에 진짜 두더지 꼴이 되었다. 거울을 보니 화장을 한 것처럼 얼굴 피부가 매트했는데 그게 다 먼지였다. 눈에서는 검은 눈꼽이 나왔다. 트레킹에 입고 가려고 빼놓은 바람막이는 도저히 다시 입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그냥 빼놓고 왔다. 그래도 정말 잘 보낸 시간이었고 내게 거의 하루 종일을 할애해 주셔서 감사하다. 난 인도와 네팔에서 진짜 극한 상황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반듯하게 자신을 지켜 가면서 남을 도와가며 고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 앞에 좀 숙연한 마음이 든다. 이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돈이라든가 체면이라든가 이해득실이라든가 자존심이라든가 멋 부리는 것이라든가 많이 알고 똑똑한 척 하는 것이라든가... 하여튼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노른자가 아닌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에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빼앗겨 가면서 참 이기적이고 자잘한 스케일의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저씨와 헤어지고는 5시에 윈드폴에서 가이드 분을 만나 루트 브리핑을 하였다. 난 결국 마르디 히말을 가는 ㅍㄱㅌ와는 독자 노선을 가기로 했다. 시간도 많으니 제일 오래 걸리고 제일 많이 볼 수 있고 제일 높은 고도를 견뎌야 하는 안나푸르나 서킷을 간다. 10일 정도를 예상했는데 로어 무스탕 이후 지역까지 도보로 다 보려면 이틀 정도 더 잡아야 해서 한 2주 정도는 등짐진 나그네 신세일 듯 하며 잘 씻지 못할 것이다. 사실 이미 첫날 일정을 마치고 첫 번째 롯지에 와있다.

이날 저녁 ㅍㄱㅌ를 만나서 삼겹살에 김치찌개에 소주 한 다음 뗀뚝도 한 그릇 더 하고 네팔 맥주도 세 종류 마셨다. 둘다 다음날 트레킹을 시작하기 때문에 환전도 하고 출금도 하고 슈퍼에 가서 보급도 좀 받았다. 그 다음 뭔가뭔가 디질랜드를 안 타보고 그냥 가기는 아쉬워서 바이킹 한번 타고 관람차 한번 탔다. 안전장치 겁내 부실하고 겁내 짜릿하게 운영하는 놀이공원이라 속칭 디질랜드라고 한다. 근데 막상 타보니 탈만했고(관람차는 무섭지는 않은데 약간 울렁거리는 구간이 있고 바이킹은 꽤 짜릿한데 탈만함) ㅍㄱㅌ는 바이킹을 엄청 무서워 하면서 물리 법칙에 따르면 이것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주문 외고 있었다. 유튜브 찍을 때 내 개노잼 선비라고 엄청 구박했는데 나도 겁쟁이가 맨날 상남자상남자거린다고 좀 팍팍놀릴걸. 여튼 친구를 먼 네팔 땅에서 만나니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고 또 내가 배신 때리고 더 좋은 데 가기로 한 거지만 같이 못 가게 돼서 조금은 아쉽다. 재밌을 텐데ㅋㅋㅋ

그러고는 숙소에 돌아와서 트레킹 짐을 완전히 다 챙기고, 숙소에 맡겨둘 짐은 구별해 두었다. 샤워하기 전에 거울을 잠깐 보니 얼굴 전체가 어둡고 약간 흰 얼룩이 생겨 있길래 일광 화상을 입은 건가 싶어서 정말 식겁했는데 먼지가 살짝 벗겨진 부분이 하얀 거였다. 먼지를 탈피하고 잤다. 언제 또 샤워를 할 수 있을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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