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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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남아시아

부탄 하(Haa) 방문 후 부탄 작별

bravebird 2024. 4. 7. 20:09

파로에서 실컷 논 다음날 아침에는 하(Haa)라는 지역을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등산복 바지를 빨아 난로 위에 올려 놓고 10시에 출발했다.

하 지역은 부탄 서부에 있는 곳인데 local deity에 대한 신앙 및 샤머니즘의 영향이 강한 지역이며 지역 정체성도 강렬하여 타지역 사람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또 이날 들은 트리비아 한 가지는 동부 부탄에서는 주로 여자아이들 위주로 상속을 받고 남자아이들은 알아서 독립을 해야 하며, 서부 부탄에서는 남녀 균분 상속 위주라는 점이다. 파로, 팀푸, 하는 모두 서부 부탄이다. 내가 어제 만난 친구들은 모두 균분 상속을 받게 되겠군 ㅋㅋㅋㅋㅋ 동부 부탄은 내가 가려는 아루나찰 프라데시와 붙어 있는데 이곳은 문화가 많이 다른 듯 하여 기회를 만들어 한번 가보고 싶다.

하에 갈 때 첼렐 라(Chele La)라는 마운틴 패스를 지나간다. 이곳은 부탄 내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속도로이다. 해발고도 거의 4천미터 높이였는데 아무런 고산증 대비 없이 심지어 술을 마시고 갔음에도 별다른 신체 반응이 없었다. 아마 네팔 트레킹에 문제 없겠구나 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부탄에서는 짧게나마 거의 매일 하이킹을 했고 그냥 숙소에만 있어도 해발고도 최소 2천미터 이상인 곳이 대부분이었으므로 네팔 가기 전 고소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덕분에 친구와 함께 마르디 히말을 가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꾸어 고도 5416m까지 올라가야 하는 안나푸르나 서킷을 선택하게 되었다.


첼렐 라 표지판
저 봉우리 위는 조장터였다고 함

  

하에서는 라캉 카르포에 가장 먼저 잠깐 들렀다. 송첸감포가 지은 108개의 사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이후에는 중니드락 수도원으로 이동했다. 이곳도 약간 하이킹을 해야 했는데 파드마삼바바가 다녀갔던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곳도 거의 절벽에 매달려 있는 조그만 암자 같은 곳이었다. 안에 들어갔더니 스님 한 분이 파드마삼바바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얘기를 조금 하다가 페마한테 말을 걸더니 이름을 알아 맞히시는 게 아닌가. 페마가 깜짝 놀라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이 분은 페마의 고등학교 친구였다. 그것도 가족들이 서로 알고 지낼 정도로 가까운 친구였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타지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어졌는데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거의 십오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페마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된 김에 우리는 아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서 그간의 내 얘기를 조금 했다. 사실은 정리해고를 당해서 이곳에 와있는 거라고. 회사 일에서 아무 의미를 느끼지 못했고 마지막에는 뛰어내리는 꿈 같은 것들을 꿀 정도로 떠날 때가 되었음을 명백히 알았지만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 때문에 그냥 꾸역꾸역 다녔다고. 그전까지는 페마한테 그냥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었지만 사실은 정리해고를 당한 것임을 스님 앞에서 처음 밝혔다. 이때 스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찰나의 표정, 그러니까 깊은 연민의 표정이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스님 : 그렇다면 지금 자기 자신을 찾고 있나요?
나 :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말이 조금 거창하게 생각되었지만) 네 그런 셈이에요.
스님 : 전 사실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했어요. 하지만 취직할 때가 되니 이런저런 고민이 깊어졌고 결국 이렇게 승려가 되었지요. 전 최소한의 돈을 벌고 있지만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어요.
나 : 전 오직 돈 때문에 마음에 없는 회사 생활을 꾸역꾸역 이어갔어요. 정말 별로였어요.
스님 : 이해해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돈 문제에 초연해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나 : 제가 성격이 급하고 고집이 있어서 화가 잘 나거든요. 회사 막바지엔 정말 참을 수 없었어요.  
스님 : 화는 주로 밖으로 향하나요, 아니면 안으로 참게 되나요? 두 가지는 좀 다른데.
나 : 처음에는 안으로 참지만 결국은 밖으로 드러나게 돼요. 분노는 저의 죄예요. (Anger is my sin.) 제가 뭘 어떻게 해보면 좋을까요?
스님 : 그렇다면 하루에 1분씩만 명상을 해보면 어떨까요? 명상이란 게 별다를 게 없어요.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해놓고 딱 1분씩만 search for ''I"를 해보세요. 어렵게 생각된다면 아무런 물건을 정해놓고 텅 빈 마음으로 바라봐요. 딱 1분만요. 더도 덜도 말고요.
나 : 그건 제가 한번씩 해보던 거예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님 : 좋아요. 그러면 가기 전에 이곳에 있는 것들을 좀 더 이야기해 줄게요. 부탄에 오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여기 여행하려면 엄청 비싸죠?
나 : 네. 세금이 너무 비싸요.
스님 : 그렇게 들었어요. 그래서 난 여행자들이 최대한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어떤 여행객들은 돈 받으려고 그러냐고 묻기도 하지만요.
나 : 하하하 맞아요 그런 사람들이 인도 같은 곳에 좀 있거든요.
스님 : 이곳 바위에 여성 성기 같은 모양이 남겨져 있는 게 보이나요? 만 18세 이상이니까 설명해 줄게요. 사실 생물의 성은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에 대한 금기도 결국은 인간 세상의 인위적인 틀, 내지는 상, 형식과 같은 것이에요. 밀교의 성자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 그러한 집착과 고집을 깨고자 했어요. 부탄을 여행하면서 드룩파 퀸리에 대해서 여러 번 들어 봤지요? 그 사람의 사상이랑 일맥상통한다고 보면 돼요. 말띠라고 했지요? 제가 기억하고 있다가 기도해 줄게요. (핸드폰에 메모를 함)
나 : 너무 감사해요!  

이날 페마와 친구의 놀라운 재회를 한자리에서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또 내 이야기와 고민거리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부탄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 깊게 만들어 주려 애써주신 소남 예시 스님에게 너무 고맙다. 기도해 준다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 날 위해 기도하는 사람? 그런 건 엄마 아빠 말고는 잘 없었다.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처음 만난 사람이 내 얘기에 귀기울여 기도까지 해준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부탄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날 저녁 식사 시간에 바로 뒤쪽 테이블에 앉은 부부가 엄청 조용조용 이야기를 해서 복화술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좀 자세히 들어보니 여자분은 의료인류학자이고 남자분은 작가였다. 나는 여자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야기를 좀 엿듣게 되었음을 정중히 밝히고 말을 걸었다.

나 : 저는 예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서양 사람들은 자기가 아프면 병명에 대해서는 잘 얘기를 하지 않고 증상 위주로 뭉뚱그려 말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정말 그런 경향이 있나요? 예를 들어 통풍이나 대상포진에 걸렸다는 말을 저는 한국에선 심심찮게 듣지만 미국 사람들한테 들어본 적이 없어요. 또 장염, 위염, 배탈 같은 것들을 엄밀히 구별해서 말하는 것 같지 않아요.
부부 :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 병에 대해서는 우리도 알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들어봤어요. 배탈에 대해서는 좀 뭉뚱그려서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반드시 모두가 다 그런 것 같진 않아요.

그래서 나의 오랜 궁금함은 풀리지 못했으나 한 가지 매우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부부도 다르질링에 오래 살았다고 한다. 무려 14년을. 그것도 다르질링 중에서도 칼림퐁에서. 아니 난 왜 자꾸 칼림퐁과 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한참 동안이나 앉아서 이야기를 더 나눴다. 알고 보니 남자분은 내가 읽어보려고 저장해놓은 티베트 관련 서적을 저술한 분이었다. 티베트 불교에서 '베율'이라고 불리는 이상향을 찾아 시킴 지역으로 떠난 티베트 승려와 그 추종자들의 실제 이야기로, 그 탐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들 생존해 있다고 한다. 난 이 책을 킨들 티베트 분야 베스트셀러에서 발견하고 리스트에 넣어 두었는데 그 저자를 이렇게 만나게 된 거다. 이 분이 부탄의 한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맡게 되면서 한 학기 동안인가 부탄에 생활하게 되어 같이 오신 거라고 했다. 난 한국에서 챙겨온 칼림퐁 관련 책을 두 분께 보여드렸고, 그 책에는 이 남자분이 쓴 베율 탐험 이야기가 한 챕터로 요약되어 소개돼 있었다. 두 분은 이 책에 무척 관심을 가졌다. 난 어차피 칼림퐁에 돌아갈 계획이라 거기서 또 사면 되므로 책을 드리고 오고 싶었는데 나에게도 당장 중요한 책이고 당장은 카피를 구할 수가 없어 선뜻 드리지 못했다. 그 점이 왠지 못내 아쉽다.




이 분이 쓰신 책은 아직은 사 읽어보지 못했는데 계속 마음 속에 있다. 얼마 전에 카트만두 티베트 북스토어에서도 이 책이 진열돼 있는 걸 봤지만 킨들로 사서 보면 되어서 하드카피 구입은 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다른 책도 우연히 발견하여 구입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두 분과 함께 찍은 사진을 첨부하여 인사 메일을 보내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자꾸 네팔에서의 트레킹 일정이 많아지면서 밀리고 있지만. 내가 가진 칼림퐁 책에서 읽은 요약본만도 너무 재미있었는데 풀스토리는 대체 얼마나 박진감 넘칠까? 그리고 정말 재미있게 읽게 된다면,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직접 이 책을 한번 번역해볼 수 있을까? 이날 이렇게 칼림퐁과 연이 깊은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게 되면서 칼림퐁에 대한 운명의 데스티니를 느꼈다. 곧 재방문하게 될 칼림퐁에 대해 엄청난 기대감을 안고 부탄 여행을 마쳤다.

이날 돌길에서 신발끈을 밟는 바람에 크게 넘어져서 다쳤고 난로 위에 올려둔 등산복 바지는 태워먹었다. 다른 옷들은 난로에 올려둬도 다 괜찮았는데 이 재질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이어버즈도 한 쪽을 잃어버렸다. 정말 다사다난한 날이었으나 이어버즈는 다행히 다음날 공항 가기 전에 일찍 일어난 덕분에 페마(가이드)와 닝포(드라이버)의 도움을 받아서 찾아낼 수 있었다. 부탄을 떠날 때 페마와 닝포를 한번씩 꼭 안아주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부탄에서 만난 이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들을 언젠가는 다시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런 것들은 앞으로도 숱하게 경험하는 것이고 어차피 전부 가져갈 수는 없는 것이므로 계속 앞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것이 맞는가? 여행을 할 때 이런 것은 참 쉽지 않았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길동무들로부터 돌아서고 나면 혼자 눈물을 훔친 적도 많았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그야말로 삶을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인지라 이제는 꽤 익숙해졌는데도 부탄에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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