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부탄 파로에서 음주 가무 본문
파로에서 보낸 3월 1일은 매우 알찼다. 이날 탁상 곰파를 보고 키추 라캉에 갔다가 양궁 올림피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톤 배스를 하면서 땀을 뺀 다음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8시 넘어 꽤 느즈막히 술을 마시러 나갔었다. 파로에 친구들이 많은 페마가 좋은 자리를 만들어 줬다.
페마는 성격이 매우 부드럽고 자상해서 여자인 친구들이 많고 아주 좋은 관계였다. 세 명이나 와주었는데 그 중에서 두 명이나 나와 이름이 같았다. 나는 한 12년쯤 전에 중국에서 여행을 다니다가 간쑤성 샤허에서 티베트 이름을 얻은 적이 있는데 '데키 초모'이다. 행복의 호수라는 의미이다. 내 한국 이름이 외국인 입장에서 발음이 좀 어려운지라 시킴이나 부탄 같은 곳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날 페마의 친구 중에 두 명이나 '데키'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현재 팀푸에서 건강음식 사업을 하는데 엄청 다정한 성격이라 아직까지도 종종 말을 걸어 주고 인스타그램 같은 데서 한국에 관련된 걸 보면 내 생각이 나는지 나한테 보내 준다.
또 이날 겔레이도 만났다. 한 고등학교 때쯤 엄청 오래 전 페마와 우연히 어울리다가 알게 된 사이라고 하는데 현재 둘다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아마 이날 탁상 곰파에서 다른 팀을 가이드하고 있는 걸 한번 마주쳤던 것 같다. 바에 들어왔을 때 옷이 달랐지만 아까 본 얼굴 같았다. 딱 1초 마주치고 오? 잘생겼는데? 싶었는데(드문 경험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ㅋㅋㅋㅋㅋㅋ
이날 나는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다르질링에 살았었다는 것이다. 나도 다르질링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 이번에도 또 갈 거야! 하니까 자기가 다르질링 중에서도 칼림퐁이란 곳에 살았다면서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히 놀랍고 반가워서 나 칼림퐁이 너무 좋아서 거기 다시 가려고 이렇게 여행 나온 거야!! 라고 말했다.
칼림퐁 얘기를 더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난 바 같은 데서 술 마시면서 얘기하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하는 것이 뭐라고 하는지 도통 잘 들리지가 않거든. 바로 그것 때문에 술 마시러 가는 사람도 많지만 난 아니야... 그리고 술자리는 워낙 정신도 없고 모든 일행이 다같이 공유할 수 있는 유쾌한 얘기를 해야 하니 진짜 궁금한 아래와 같은 것들(거의 뭐 현지조사... 취조...)을 자세히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나는 관심 지역의 현지인을 알게 되어서 1:1로 좀 찬찬히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면 이런 류의 질문들을 많이 한다. 방콕에서 대학을 다녔던 페마한테도 비슷한 걸 많이 물어봤다.
* 어떻게 어린 나이에 칼림퐁까지 가서 8년씩이나 공부하게 됐어?
* 장학 프로그램 같은 거야? 어떻게 선발되는 거야? 요즘도 그런 프로그램이 운영돼?
* 하고많은 곳 중에 칼림퐁이란 지역엔 어떻게 배정받게 된 거야?
* 칼림퐁에서 다닌 학교에 대해서 애교심이 상당한 것 같은데 어떤 학교였어?
* 같이 거기서 공부한 부탄 친구들도 많이 있어? 지금 다들 어디서 뭐해?
* 너도 유학 시절에 주로 부탄 친구들이랑만 어울려 다녔어, 아니면 현지 친구들이 더 많았어?
* 인도에 있을 때 여자친구는 현지 사람들을 사귀었어?
* 칼림퐁에 대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뭐야? 칼림퐁에 대해서 아는 거 전부 알려줘 ㅋㅋㅋㅋ
* 어린 나이에 부탄을 떠나 있었는데 종교를 어떻게 지킬 수 있었어? 어릴 때 종교적으로 어떤 특별한 경험이 있었어?
* 그러면 종카어 네팔어 힌디어 영어를 할 수 있어? 어떤 언어가 제일 편해? 또 다른 어떤 언어를 할 수 있어?
* 형제가 9명이라고???!!! 그거 부탄에선 흔한 경우야? 형제들은 어디서 뭐해? 다들 가까이 살아? 아니면 각자 멀리 떨어진 핵가족이야?
* 벵갈루루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일했던 거면 벵갈루루는 완전히 기회의 땅이었을 텐데 부탄으로 돌아와서 완전히 다른 일을 한다는 결정은 어렵지 않았어?
* 다 크고 나서 부탄에 오랜만에 돌아왔을 때 어땠어? 뭐가 특히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 부탄에 다시 돌아와서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었어? 학교를 마치고 나면 친구를 따로 노력해서 사귀어야 해서 쉽지가 않은데 어떻게 사귀었어?
* 부탄 사람들은 외국으로 많이 간다고 하는데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이 많이 남아 있었어?
* 여자친구는 어떻게 사귀었어? 들어보니 상당히 진지한 사이네. 가족들이 서로 알 것 같은데? 집에서 장가가라고 하지 않아? 이미 우리가 나이가 상당하잖아.
* 내일 친구 결혼식 간다고 했잖아. 그 커플은 몇 살쯤 됐어?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알아? 대부분 연애 결혼이지 요즘은?
* 비혼자도 많아? 사람들이 보통 애를 낳으려고 해? 한국은 출산률 망했거든. 나도 사실 거기 일조하고 있어 ㅋㅋㅋㅋ
이날 친구들 여럿이 다같이 술을 계속 마시고 노래방도 갔다가 클럽까지 가서 다같이 놀고 일어나니 새벽 3시인가 4시였다. 이날 노래방은 굉장히 신기했던 것이 한국처럼 방이 칸칸이 나눠져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랗게 오픈되어 있는 홀에 가라오케 화면이 띄워져 있고 그 앞에 테이블과 소파들이 여러 개 놓여져 있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자기 신청곡 차례가 돌아오면 홀 안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다 부르게 되는 형식이었다 ㅋㅋㅋㅋ 이날 비틀즈 노래들을 골랐는데 겔레이도 비틀즈 노래를 부르고 싶어해서 같이 불렀다. 나더러 노래 잘 부른다면서 영상 찍어놓은 걸 며칠 후 받아갔다.
이날 페마가 아니었으면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가보기도 어려웠을 부탄의 바, 노래방, 클럽을 모두 석권하였다. (!) 이날 페마는 비틀거렸고 겔레이는 다음날 자기가 베스트맨으로 참석해서 스피치를 해야 하는 결혼식이 있는데 많이 취했고 다른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였고 나도 술을 꽤 마셨다. 겔레이가 너 술 들이키는 걸 봤는데 하나도 안 취한 것 같다고 했다. 그다음날 하(Haa)에 가야 되는 걸 생각하고 정신력으로 꼿꼿이 서있었던 거여 ㅋㅋㅋ
원래 하에 간 3월 2일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쓰려고 했는데 분량이 이미 길어져서 따로 써야 할 것 같다. 이제 아점 먹으러 나가야지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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