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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랑탕 트렉 여섯째날 - 카트만두 복귀일 본문

여행/남아시아

네팔 랑탕 트렉 여섯째날 - 카트만두 복귀일

bravebird 2024. 4. 3. 14:19

여섯째날은 첫째날 잔 붓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랑탕이 진짜 좀 아쉽긴 한 게 그냥 올라갔다가 그대로 같은 길로 돌아온다. 물론 약간 변화를 줘서 셰르파가온 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는데 나는 그냥 좀더 빨리 가려고 같은 길로 내려와 버렸다. 올라갈 때 들렀던 티베트 난민 캠프에 들러서 할아버지한테 인사도 하고 하여튼 무난무난하게 복귀함.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버스는 다음날 아침에 있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 하루 자면서 오랜만에 풀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음. 이튿날 버스에서 지프로 한번 바꿔 타고 낮 3시쯤에 카트만두 타멜의 숙소로 무사 복귀했다. 바로 빨래를 정리해서 맡기고 밖에 나가서 피자 한 판을 벌컥벌컥 마셨으며 감기 기운이 있어서 맥주는 초인적인 의지로 참은 다음 티베트 북스토어에 가서 다음날 살 책을 다시 골라 두었다. 하여튼 이렇게 랑탕 트레킹은 앞뒤 이동까지 포함해서 총 7일이 걸렸다.


밍마 아저씨가 직접 만들어주신 모모
고양이 찌찌 만지는 아저씨
티베트 난민 캠프를 홀로 지키며 바구니를 짜는 할아버지
내 옆에 또아리 튼 강아지



걷기 마지막 날이었던 여섯째 날은 걸은 것 자체보다 기억에 남은 것이 밍마 아저씨와의 대화였다. 이 분과 다니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이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랑 엄청 비슷해서 나중에 두 분이 만나면 정말 볼만할 것 같다. 아저씨 및 우리 아버지의 지론은 다음과 같다.

* 돈은 중요하지 않다. 집도 없어도 된다. 어차피 돈 싸들고 죽을 것도 아니고 생활에 아무 지장 없다.
* 길에서 누가 돈 필요한 사람이 좀 달라고 하면 그냥 줘버린다. 그 사람이 사기를 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 업보이고 나한테는 선업이 되므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 나는 고객이 트레킹 대금을 바로 못 줘도 그냥 집에 가서 나중에 보내달라고 한다. 한달 뒤에 주든 두달 뒤에 주든 상관 안한다. 너도 장기 여행 중인데 현금 부족하면 그래도 된다.
* 내가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서로서로 도와준다. 나는 카트만두든 무스탕이든 안나푸르나든 어딜 가든 친구들이 재워주고 먹여준다. 나 역시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다.
* 친구나 스님이 암이 걸렸는데 수술비를 내가 내고 치료시켰다. 코로나 때 일이 없을 때는 클라이언트들이 연락을 하여 도와줬고, 트레킹을 같이 한 지 12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기억하고 있던 고객 하나는 내 딸이 대학에 진학할 때쯤 먼저 연락하여 학비를 내주기도 했다. (실제 메시지를 주고받은 기록을 보여주셨음) 돈이란 건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고 서로 채워주는 것이므로 돈 좇아다니느라 연연할 필요가 없다.
* 나는 집이 없이 세들어 사는데 집주인과도 월세 정산을 안한 지 오래됐다. 20년째 같은 집주인이다. 내가 돈을 낸다고 해도 집주인이 됐다고 그냥 천천히 하자고 한다.  
* Truthfulness, Honesty, Compassion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복잡한 것 필요없고 그거면 된다.
* 나는 니가 대학생인 줄 알아서 원래 받는 것보다 일 보수를 낮게 불렀다. (평소 보수의 절반 이하였음) 돈 벌려고 여기 온 거 아니거든.  
* 내 앞으로 돈을 한두푼 더 모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는 자식에게 좋은 미래를 주는 것이 낫다.
* 나는 1997년에 21살 때 슬리퍼 신고 무일푼으로 티베트에서 네팔로 왔다. 맨손으로 만든 내 인생에 매우 만족한다.

우리 아빠가 정확히 딱 이런 사람이다. 아빠가 딱 이런 생각으로 약 십 일이년전 내린 재정적 결정 한 가지가 내 진로에도 현재까지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결국은 내 성격과 선택이 같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인생 행로이므로 전부 아빠 탓이란 건 아니고 일정 영향이 있다는 뜻) 할 말이 무척 많지만 하지 않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아빠가 십 수년전 내린 결정이 내게 재정적인 불안감을 줘서 원래 공부를 더 해보려다가 그냥 회사에 쭉 남아서 가족의 만일을 대비한 재산 형성하려고 아등바등하게 된 게 크다는 정도만 쓰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진짜 이렇게 믿고 행동하는 사람이고 절대 돈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않고 재고 따지는 계산도 하지 않으며 자기 앞으로 뭔가 남기려는 마음이나 사유재산에 대한 마음이 진짜 아예 전혀 없어 보인다. 아빠는 돈키호테 그 자체이고 엄마는 그 정반대편인 햄릿 그 자체이며 난 둘의 유전자를 모두 받은 하이브리드 자손이지만 금전에 대해서는 엄마 쪽에 좀 더 가까운 듯 하다. 나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별이 매우 뚜렷하여 계산이 확실하고 미래를 대비하여 내 앞으로 비축을 한다.

내 안의 햄릿 내지 펜대운전사는 아빠를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가끔 회사가 너무 끔찍하게 싫을 때 아빠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내 안의 돈키호테 내지 조르바는 아빠가 대자유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자기 앞으로 뭔가 남기지를 않는다는 가정 환경과, 부모님이든 누구한테든 돈을 지원받고 그 사람 하라는 대로 할 생각은 전혀 없는 나의 성정이 기가 막힌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결과, 내 인생은 너무나도 극혐하였던 회사에 쭉 남아 있다가 정리해고되는 아이러니한 방향으로 흘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가정 환경과 나의 성정 때문에 대학생 때부터 부지런히 돈 벌어서 전공이든 뭐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나 이외의 아무런 결재권자 없이 스스로의 삶을 운용할 수 있었고 나는 그 점이 매우 자랑스럽다. 아직 '자유인'은 되지 못했지만 '자유민'은 오래 전에 된 것이다.  

나는 인격신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존재한다면 밍마 아저씨나 우리 아빠 같은 사람들을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처럼 여기며 몹시 아낄 것 같다. 참 천진하고 순수하며 재미나고 자유스럽고 또 강한 존재들이다.

이번에 아빠를 생각하면서 밍마 아저씨에게 대금을 치를 때 올림을 해서 드렸고 팁도 당초 생각했던 것의 2~3배 정도로 후하게 드렸다. 그동안 중국에서 태국에서 부탄에서 네팔에서 대접받은 것이 이렇게 또 새로운 곳으로 흘러간 것이다.

더하여, 이번 랑탕 트렉으로 여행 아이디어도 여러 가지가 추가되었다. 새벽부터 이곳저곳 연락해 보고 검색해 보고 저글링을 해보느라고 바빴다. 난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쓸 이야기가 많이 밀린 셈이다. 하지만 오늘은 놀러 나가서 책도 사서 부치고 벨트 풀고 대식을 할 것이므로 오늘 밤에 마음이 있으면 써보든지 말든지 할 거고 싫으면 걍 잘거임 ㅃ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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