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진짜 여행 시작 / The Real Journey Begins 본문

일상

진짜 여행 시작 / The Real Journey Begins

bravebird 2024. 7. 30. 17:03

2024년 7월 25일 목요일 집에 돌아왔다.
 
그동안 놀기만 하느라 글이 밀렸다. 이야기할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실제 경험과 글은 속성이 완전히 다르다. 경험이란 것은 목차부터 먼저 정해놓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글에는 순서와 체계와 논리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경험을 글로 쓴다는 것은 3차원의 지구를 2차원의 지도에 억지로 펴서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난 여행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조금 어색하다. 그래도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쓰는 것이 나았기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편히 쓰겠다. 
 

From Amsterdam (2017)

 
원래 파키스탄을 1개월 여행하려고 비자까지 받았으나 그냥 귀국했다. 이미 5개월간 무척 즐거웠기 때문에 여기서 더 놀면 모든 재미가 약간 당연하고 무감각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실제로 아루나찰 프라데시 타왕에 있을 때 이보다 더 특별한 여행 경험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은 갈수록 점입가경이었고 앞서 있었던 특별한 기억은 점차 무뎌졌다. 가장 좋을 때 멈추기로 했다. 파키스탄을 위한 더 좋은 기회는 나중에 꼭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5개월간 확실히 느낀 것은 그동안 번아웃 상태였다는 것이다. 나는 2022년 말에 만사에 화가 버럭버럭 나는 것을 느끼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본인은 굉장히 부지런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합니다. 자기 안의 감시관을 주말 단 이틀이라도 휴가 보내세요. 화가 날 땐 "화가 날 만하구나, 니가 살아야 되니까 스스로를 지켜야 돼서 화가 나는구나." 하고 생각하세요. 계속 번아웃 상태에 계신 거예요. 의무감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단순히 유튜브 보면서 멍하게 있는다고 쉬는 게 아니라 의무감 자체를 꺼버릴 수 있는 상태에 충분히 머물러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뭐하고 싶은지 우연히 생각난 걸 바로 할 수 있는 상태, 그렇게 생각한 걸 바로 뒤집어 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 휴가 나온 왕처럼 있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세요. 그런데 용서라는 게 힘들 수 있어요. 그럴 때면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세요. 사과를 받았기 때문에 용서하기가 조금 더 쉬워집니다. "너무 몰아쳐서 미안해."라고 사과하시면 됩니다.  
   

당시 이 말씀이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서울에선 누구나 다들 애쓰며 사는 걸로 보였고 내 일상은 항상 비슷했기 때문에 특별히 번아웃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 중 이런저런 사람들의 삶을 접하고서 지난 몇 년간을 되돌아보면 나는 매우 스스로를 몰아붙여 왔다.
 
나는 당시부터 최근까지 회사에서 극도의 불만족 속에 기계처럼 일해 왔으나 월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부업으로 번역 일을 했고 방송통신대 학부 과정을 병행했다. 한편으로는 대대적인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이사는 인테리어 공사를 동반했으며 모든 가구와 가전을 처음부터 전부 구입해야 하는 이사였다. 이 시기 나는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을 잘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는 밥을 뭐 먹을까 생각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몇 군데 정해놓고 돌려가며 먹었다. 취미조차도 의무감에 시간을 빼서 했다. 하여튼 뭔가를 유유하게 즐긴다는 것, 그냥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잊어버리고 있었다.  
 
작년 말에는 유난히 이를 갈다가 깰 때가 많았다. 거의 매일 선잠이 들었다가 어금니를 꽉 깨무는 감각을 느끼고 화들짝 깨어나고는 했다. 그러다가 최근 귀국을 앞두고 책을 읽다가 이갈이가 스트레스의 징후라는 내용을 접했다. 그리고 여행하던 몇 개월간은 그런 식으로 잠을 깬 일이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닫고 몹시 놀랐다.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 및 투쟁-도피 상태에서 온몸의 근육과 신경을 긴장시킨 채 상당 기간을 살았던 것 같다.
 
귀국한 후의 하루하루는 몹시 만족스럽다. 알람은 꺼두었으며 자고 싶은 만큼 잔다. 일어나면 손수 음식을 준비해 먹고 설거지를 한다. 환기를 시키고 집을 정리한다. 외출을 하는 날이면 하루 이틀분 식재료를 사온다. 스스로 밥을 해먹고 집을 정돈하는 단순 노동으로 하루를 쓴다. 그러나 그 노동은 나의 행복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증진시켜 준다. 틈이 나고 마음이 동하면 책을 조금 읽기도 한다. 구글 드라이브를 정리한다든지, 대출을 정리한다든지, 실업급여 관련 행정 업무를 본다든지, 치과를 다녀온다든지 하는 일거리는 하루에 한두 가지씩 천천히 처리한다.
 
실업급여는 지금부터 7-8개월까진가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중간에 소득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즉시 신고를 해야 하고 실업급여를 못 받게 된다. 이걸 받으려면 사실상 가만히 있으라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바로 이것이 복지의 역설이다. 그러나 이렇게 쉴 수 있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난 학생 때는 날 밝을 때 집에 가는 게 소원이었고, 회사원이 되어서는 밥을 두 끼 지어 먹고 여유롭게 차 마시면서 족욕하는 게 소원이었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당분간 실업자의 특권(?)을 누리면서 그토록 소원이었던 한가로운 일상을 좀 누려 보겠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뭘 추구해야 하고 그 대가로 뭘 포기해야 하는가?
대체 무슨 밥벌이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도 소원했던 집에 이사오자마자 소득이 끊겼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세를 내줘야 하나?  
나는 대체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서울에 사는 게 맞나? 한국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을 몇 년 해보는 것이 맞는가? 
나는 혼자 살아야 하는가? 누구랑 같이 사는 것이 맞는가?
이놈의 인생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이런 생각은 휴식을 방해하기에 일부러는 하지 않겠다. 일단 햇빛 받고 일어나서 밥 지어먹는 데만 집중할 것이다. 그러다가 내키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고. 
 
어디로 가는지, 언제 끝나는지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어서 더 궁금한 진짜 여행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I returned home on July 25. I had been so busy having fun that I neglected my writing. There's so much to talk about, but I’m not sure where to start. Real-life experiences and writing are completely different. Experiences can't be organized with a predetermined table of contents. Writing, however, requires order, structure, and logic. Turning experiences into writing is like forcing a three-dimensional globe onto a two-dimensional map. This is why writing about my recent travels feels a bit awkward. Still, I decided that writing something is better than writing nothing at all, so I'll just jot down whatever comes to mind for the time being. 

Originally, I had planned to travel to Pakistan for a month and even obtained a visa for it, but I decided to return home. I had already enjoyed myself immensely for five months and felt that continuing might make everything seem mundane. While in Tawang, Arunachal Pradesh, I wondered if a more special travel experience could exist. Yet, the further I traveled, the more spectacular it became, and the previous memories, once so special, gradually faded. I felt the need to sit for a while and properly digest my experiences, so I decided to stop while I was having the greatest joy. I believe I will be able to make another, better opportunity to visit Pakistan in the future.

What I realized over these past five months is that I had been experiencing burnout. At the end of 2022, I found myself getting extremely angry at everything and sought counseling. The therapist told me:

"You are extremely diligent and harsh on yourself. Give your inner critic a break for at least two days over the weekend. When you get angry, think to yourself, 'It's understandable to feel angry; you need to protect yourself, and that's why you're getting angry.' You're constantly in a state of burnout. You need time free from obligations. Simply zoning out while watching YouTube isn't resting; you need to be in a state where you can turn off your sense of duty entirely. It's about being able to whimsically do whatever comes to mind, and even if you change your mind immediately, it doesn't matter. It's about being like a king on holiday. Forgive yourself. Forgiveness can be difficult, so in those moments, apologize to yourself. It makes forgiveness a bit easier. Say, 'I'm sorry for pushing you so hard.'"

At the time, I found this hard to believe. It seemed like everyone in Seoul was working hard, and my routine felt no different, so I didn't think I was in a state of burnout. However, after encountering various people's lives during my travels and reflecting on the past few years, I realized I had been pushing myself excessively.

From then until recently, I worked mechanically at a company I was extremely dissatisfied with but couldn't afford to quit. Additionally, I had a side job translating, and I was pursuing an undergraduate degree through an open university. On top of that, I was preparing for a major move, which involved remodeling and purchasing all new furniture and appliances. During this period, I barely saw friends and family. I even limited my meal choices to save time, rotating between a few regular spots. Even hobbies felt like obligations. I had forgotten how to leisurely enjoy anything, or simply exist.

By the end of last year, I often woke up from grinding my teeth. Almost every night, I would fall into a light sleep, feel my molars clenching, and wake up with a start. Recently, just before returning home, I read that teeth grinding is a sign of stress. I realized that during my months of travel, I hardly ever woke up that way, which surprised me greatly. I had been living in a state of significant stress and a fight-or-flight response, with my muscles and nerves constantly tense.

Now that I’m back, each day is immensely satisfying. Just as I did during my travels, I turn off the alarm and sleep as much as I want. I cook for myself and do the dishes. I ventilate and tidy up the house. When I go out, I buy enough groceries for a day or two. Simple tasks like cooking and cleaning significantly and immediately enhance my happiness. When I have time and feel like it, I read a bit. I slowly handle tasks like organizing my Google Drive, sorting out loans, dealing with unemployment benefits, or visiting the dentist, one or two at a time each day.

I can receive unemployment benefits for 7-8 months. However, if I have any income during this period, I need to report it and will lose the benefits. It seems like they expect me to do nothing to keep receiving it. This is the paradox of welfare. But this too is a unique experience and a gift for me.

When I was a student, my dream was to go home before dark. As a working adult, it was to cook two meals a day, drink tea leisurely, and soak my feet. Now, I can do all that. So, for now, I’ll enjoy the privilege of being unemployed and relish in the leisurely life I’ve long dreamed of.

How long can I keep up this lifestyle?
What should be pursued, and what should be given up in return?
What kind of job should I pursue?
Now that my income has stopped as soon as I moved into my own apartment, what should I do? Should I rent it out?
Where should I live? Is Seoul the right place for me? Should I leave Korea for several years and pursue a new phase of life?
Should I live alone or with someone?
Where is this life of mine heading?

These are some remaining questions I'll need to tackle. I'll try not to dwell on these thoughts as they disrupt my rest. For now, I’ll focus on getting up in the sunlight, and cooking my meals. When I feel like it, I will read, write, think and go out to meet people.

Nothing is known, including where it is headed or when it will end. Thus, the real journey begins now.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 / Money  (13) 2024.08.29
일상 복귀 1개월 즈음 / About One Month After Returning  (2) 2024.08.27
카카오톡 나에게 보낸 메시지 털이  (0) 2024.02.15
부탄 여행 확정  (0) 2024.02.14
부산에서 만난 사람 - PGT  (1) 2024.02.0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