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모스크바에서 10년만에 만난 사람 본문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10년 만에 아센을 만났다.
러시아에 도착한 날 문득 떠올라 예전에 주고받았던 이메일 주소와 왓츠앱을 뒤져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러시아를 떠났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답장이 왔다. 아센은 여전히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었다.
아센은 2022년에 조그만 동네 카페를 열었다. 레닌그라드 기차역이 있는 콤소몰 광장과 프로스펙트 미라 근처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갈 때도 들를 수 있어 좋았다. 아센은 내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2014~2015년에는 쿠즈네츠키 모스트에서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모스크바에 올 때마다 항상 금요일 저녁 도착이었고, 키타이 고랏의 호스텔에 짐을 두고 곧장 아센의 바로 향하는 것이 휴가의 시작이었다. 돌아온 모스크바, 아센의 바, 다시 만난 사람들, 휴가 첫날, 금요일 저녁, 다 같이 부르던 오아시스 Wonderwall... 그 아련한 10년 전의 기억. I don't believe that anybody feels the way I do about it now.

러시아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 meetup.com을 통해 찾아간 모임의 장소가 그 바였다. 하지만 정작 참가자들과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히려 바의 사장님이었던 아센과 가까워졌다. 아마 모임에 사람이 거의 없어서 사장님께 말을 걸었던 것 같다. 혹은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칼미크 친구들이 단골이라, 그들과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것일 수도 있다. 모스크바에 갈 때마다 나는 늘 같은 호스텔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투잡으로 일하던 마가리타도 알고 보니 아센의 친구였다. 처음 어떻게 말을 텄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관계들이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경우였다.
아센은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베르베르인이다. 매주 모스크를 찾으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카페는 모스크와도 가까워, 이번엔 금요일 예배 시간에 근처까지 함께 가봤다. 예배가 끝난 후 수천 명에 달하는 남성들이 끝도 없이 모스크를 빠져나왔고, 아직 어디선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들이라는 점에서 인상이 깊었다. 아시아계, 유럽계, 아프리카계 등 인종이 매우 다양했다.

아센과 대화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는 않다. 영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언어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는 화제를 빠르게 전환하고 관심사도 끝없이 넓다. 그 속도와 범위는 일반적인 수준을 조금 넘어선다. 아센이 하는 이야기를 내가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억력도 뛰어나셔서 내가 마지막으로 왔던 시기와 당시 나눈 사소한 대화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접객업 종사자라는 점을 감안해도 인상 깊은 수준이다. 수천 명의 사람을 만났을 텐데 내가 언제 왔었는지를 대체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 걸까?
알고 보니 아센은 한국인을 개인적으로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첫 번째는 1990년, 아스트라한에서 같이 러시아어를 배우던 한국 남학생이었다. 당시엔 소련이 아직 붕괴되기 전이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 여쭤보니 1980년대 후반에도 외국 학생들의 유학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니 아센은 소련이 망하기도 전부터 러시아에 있었던 셈이다. 물론 러시아어로 모든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한국인이 나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아센의 환대는 놀라웠다. 그는 나를 꾸준히 기억하고 몇 년간 안부를 전했다.
2019년쯤 아센은 바를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했지만 곧 코로나가 터졌다. 그 이후로는 주류 업계 자체를 쳐다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슈퍼의 와인 코너가 특히 커서 선물용으로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그조차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 제재 상황 중에도 ‘모든 물건이 다 있다’며 동네 슈퍼를 구경시켜 주었다. 평범한 슈퍼에 들러 어떤 품목이 진열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제품 라벨을 통해 수입국과 가격대를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전시 경제 상황에서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아센의 바에 갈 때마다 마주치던 칼미크인 친구들 중 상당수는 이미 러시아를 떠났다. 내가 아는 경우만 해도 세르비아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래도 그중 한 명은 모스크바에 남겨둔 아파트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작년쯤 아센의 카페 근처에서 잠깐 들렀다고 한다. 내가 보내준 아센과의 사진을 보고 반가워하면서 세르비아에도 한번 놀러 오라고 했다. 현재 세르비아에는 러시아인 디아스포라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마가리타에게도 아센과의 사진을 보냈는데 마가리타 역시 캐나다로 이주한 상태다.
이번에 아센의 카페에 두세 번 들러 하루 종일 그 동네에서 시간을 보냈다. 매우 한적하고 깨끗한 동네다. 예전에 바가 그랬듯 지금의 카페도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나도 그곳에서 아센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아센이 사람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는 나 같은 뜨내기조차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여행객들에게 단기 일자리를 제안하고 자기 집도 며칠 내어줄 정도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이 믿는 문화와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그렇게 하다 랩탑을 도둑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카페 영업시간이 분명 밤 9시인가 10시까지인데도 손님이 찾아오면 그 이후에도 요리를 해준다는 것이다. 내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던 날, 야간 기차 시간이 11시 이후였는데 아센이 카페 문을 늦게까지 열어 두고 근처에 있던 친구분까지 같이 짐을 옮기며 배웅해 주었다. 제발 본인 시간을 갖고 쉬셨으면 한다.
아센은 유쾌하고도 헌신적인 분이다. 10년이 흘렀고 장소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애초에 아센과 알게 된 것도, 긴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 짧은 인생에 흔치 않은 선물이다. 이런 만남은 인생에 몇 번 있을 수 없고, 앞으로 몇 번을 더 뵐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한번 한번이 더없이 귀중하다. 여하간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아센은 틀림없이 그가 뿌듯하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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