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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bravebird 2015. 12. 17. 22:55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에 대한 연구서. 지배받는 지배자란, 문화영역을 지배하지만 그 권위의 원천을 미국 학위에서 찾는 한국인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의 이중적 지위를 뜻한다.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생님들과 내 가지 않은 길을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모두가 한복을 버리고 청바지나 양복을 입고, 공자 맹자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익숙한 현대 한국인에게 도대체 한국적이란 건 뭘까 하는 호기심이 주전공 선택의 작은 계기가 됐다. 탈식민주의 관련 영문과 수업을 한번 들었는데 흥미롭길래 영문학 복수전공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난 고등학교 때 홍콩영화 팬이었다. 반환 이전의 영화를 보면 저당잡힌 미래에 대한 페이소스, 이민 나가는 엑소더스 행렬, 세기말의 허무주의 같은 것들이 분명 깃들어 있었다. 홍콩 사람들한테는 식민통치 종식이 자유의 종말로 여겨졌다니! 모국으로 돌아가는 게 또다른 식민지배의 시작이었다니! 해방의 감격을 묘사한 국정 국사교과서를 달달 외워야 했던 내게는 틀을 깨는 충격이었다. 홍콩인과 대륙인 사이의 긴장을 보면서는 남북한의 미래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점이 많아보였다.

국문학은 재밌긴 했지만 많이들 얘기하다시피 스펙트럼이 다소 좁은 편이어서 약간 아쉬움이 남았다. 과 이름부터가 시사하듯이, 한국 안에서 우리들만의 리그. 제도권 국문학계의 연구 대상 지역은 당연히 한반도와 그 근처, 시대는 1930년대 정도까지.

영문학은 달랐다. 커버 지역이 거의 5대양 6대주에 육박하고 소재도 사조도 다양한 것이 아주 세련되고 진보적인 느낌이었다. 특히 탈식민주의가 핫이슈인데 오리엔탈리즘, 옥시덴탈리즘, 서발턴, 혼종성, 변방, 다문화 같은 뭔가 휘황한 용어로 해설을 붙여가며 이야기를 읽는 게 짜릿했다. 초서나 세익스피어 뿐만이 아니라 무슨 이름도 모르는 라틴아메리카 작가가 쓴 이야기도 영문학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무척 이율배반적인 것은, 누구나 탈식민을 이야기하는 영문과가 제일 식민성이 강하다는 거였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학생 누구나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미국 박사를 받으셨다. 영국 박사조차 드물다. 영어로 작성된 강의계획서는 미국대학 스타일이었다. 은연 중에 영문 논저를 더 심도있는 고급 저작으로 취급한다. 무엇보다도 영문학은 바로 우리 자신과 아시아 이웃들의 문제인 탈식민을 얘기하면서도 정작 우리 얘기는 제껴놓는다. 외국의 최신 사조를 소개하기에 바쁜 선생님들은 지식 생산자라기보다 수입자나 번역자에 가까워 보였다. 나 역시 게으름에 이국 취향에 학과 분위기까지 더해져, 지금 이곳 문제는 그다지 치열히 고민해보지 못했다. 참 안온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나의 두 전공과 홍콩에 대한 관심은 죽이 잘 맞았다. 그래서 후식민 홍콩사회를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작고 밀도있으면서도 보편성과 특수성을 골고루 지닌 도시라 연구대상으로 아주 적합해 보였다. 원거민 권리 문제, 대륙인과 홍콩인 사이의 갈등, 대륙인과 구별되는 홍콩인 정체성이라는 집단기억의 형성과정, 접경지역의 밀무역, 이주노동자 문제, 청킹맨션의 글로벌 무역 네트워크, 도시 자체의 공간특성, 다언어 상황, 참정권에 대한 각성과정, 체제보장 종료 이후의 전망 등 흥미로운 주제가 너무도 많았다.

추천서를 부탁드리려고 영문과 선생님들을 찾아뵈었다. 그런데 이전까지만 해도 연구의 길을 권하던 선생님들께서 격려는커녕 내 뜻을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차라리 그냥 학계에 자리잡기가 어려울 거다, 하는 조언이면 감사했을 텐데 취지 자체가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홍콩대학은 미국대학이 아니니까 의미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당신들의 탈식민주의 가르침 때문에 발전한 관심인데. 그러면 그동안 수업과 연구는 당신들이 믿지도 않는 학술용어 성찬일 뿐이었나? 결국 풀죽은 채 맨땅에 헤딩하듯 혼자 준비하다가 어드미션을 받지 못했다. 부랴부랴 취업을 했고, 전공과는 거의 연이 끊겼고, 홍콩에 대해서는 고이 접어 넣어뒀다. 생각하자면 조금은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에 마치 예고라도 한 듯 우산혁명이 터졌다.

간단히 꿈을 접어버린 건 언제까지나 나 자신의 탓이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홍콩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더 자극과 지지를 받았더라면 우산혁명 때 바로 그 현장에서 그 연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렇지만 홍콩 연구는 미국 중심의 제도권 학계에서, 심지어 학자들 누구나 후기식민주의 사조의 영향을 비껴갈 수 없는 요즘조차 꼼짝없이 변방 취급당한다. 홍콩 연구로는 학계에 자리를 잡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후식민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홍콩 같은 첨예하고 컴팩트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을 빼놓을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현실은 그렇다고 한다.

이 책은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학계 내부자 신분으로 그 곪은 곳을 진솔하게 보여준 점 감사해하며 읽었다. 하지만 사실 기본 골자는 한국 대학을 경험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미국 학위는 막강한 상징권력을 갖고 있고, 한국학계는 미국학계에 종속돼 있다... 이건 상식이잖아. 가끔 학자들은 경험적으로 자명한 것을 휘황한 말로 애써 정당화하는 데 참 많은 지면을 사용하는 것 같다. 당연하지만 말하기는 어려운 학계의 뒷얘기가 그 내부에서 연구되고 출판됐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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