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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추진사업/내륙아시아

실크로드 프로젝트

bravebird 2016. 4. 6. 17:54


중국 간쑤성 자위관 장성 앞의 아무 것도 없는 광막한 풍경



서역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마치 줄줄이 알사탕 같은 것이었다. 굳이 작정하고 찾아다닌 것이 아닌데도 가는 곳마다 실크로드가 딸려왔던 지난 6년이었다. 


나는 2011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호기심에 들은 위구르어 입문 수업이 계기가 되어 베이징에서 48시간 입석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떠나게 되었다. 그 겨울은 통째로 우루무치, 투루판, 하미, 란저우, 자위관, 둔황, 인촨, 간난 티베트자치주, 시안 같은 실크로드 지역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눈앞에 아무 것도 막아서는 게 없는 광막한 사막이 있었다. 건조한 기후에 다리살은 갈라지고, 주먹만한 양꼬치를 먹다 보면 고기가 쐐기처럼 앞니에 끼곤 했다. 하루 종일 꼬박 사막길을 걸으면 다음날 골반 전체가 얼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막을 뚫고 달리는 기차 속에서는 지도도 없이 걷고 또 걸어 길을 만들고 도시를 이었던 먼 옛사람들을 어렴풋이 상상해보곤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휴가 1주일을 손꼽아 발꼽아 기다리는 그런 직장인.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겨울 서역의 기억은 모두 흐릿해졌다. 그렇지만 무심코 갔던 곳에서 실크로드의 흔적을 자꾸 맞닥뜨렸다. 별 생각없이 갔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중앙아시아관에는 일본인들이 뜯어온 벽화 조각들이 있었다. 내가 직접 갔을 때 벽째로 뜯겨있는 것만 보았던 투르판 베제클리크 석굴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모스크바의 바에서 유난히 한국인을 닮았길래 말을 걸었다가 알게 된 청년들은 엘리스타에서 온 칼미크인이었다. 신장의 준가르 분지에서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해간 오이라트인의 후손이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고 몽골인 생김새를 했으며 불교 사원을 페이스북 커버로 걸어놓고 달라이 라마를 팔로잉하는 불교 신자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중앙아시아 컬렉션이 있었다. 러시아 학자들이 둔황에서 가져온 불교 문서들이 그득 진열돼 있었다. 서하 문헌도 여러 점이었다. 2012년에 닝샤회족자치구 인촨의 서하 왕릉에 직접 갔을 때는 전혀 몰랐던 '표트르 코즐로프'라는 이름을 3년 후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카잔스카야 거리를 무심코 걸어가다가는 중앙아시아 탐험의 선구자인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가 살던 집을 보았다. 해군성 공원에는 그의 동상이 낙타 한 마리와 함께 솟아있었다.


베를린의 달렘박물관에도 실크로드의 흔적이 있었다. 그것도 많이. 신장 여행 때 멀어서 못 간 키질 천불동에서 알베르트 폰 르콕이 톱으로 잘라온 벽화들이었다. 2차대전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들이었다. 둔황에 직접 갔을 때도 미처 못 샀던 둔황연구소 발간 서적을 이곳의 훌륭한 구내서점에서 공수해올 수 있었다.


우연이 6년간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 아직 가보지 못한 실크로드 도시들과 서역 유물들이 소장돼 있는 세계 각국의 박물관을 방문해서 뜯긴 벽화 퍼즐 맞추기 하는 것이 나의 프로젝트이다. 낮에는 대한민국 노동자로, 밤에는 역사책과 여행기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애호가로, 주말에는 필요한 언어를 배워 나가는 학생으로, 휴가 때는 나만의 실크로드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여행자로 지내면서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사소한 기록을 이곳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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