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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전투의 심리학

bravebird 2020. 5. 20. 13:26

 

이 책은 군인, 경찰, 경호원, 특수요원 등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최전선에서 일하는 직업적 전사들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다루고 있으며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전투 상황 전, 중, 후에 어떤 신체/심리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피를 흘리고도 살아남아 반격을 가할 수 있는지(무려 200ml 우유 열 팩!),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쏘아야만 한다는 도덕적 딜레마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은지 등등 실용적인 내용뿐 아니라, 전사의 미덕과 자부심 등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게임은 왜 이렇게 재밌는가 하는 한 가지 질문이 절 이렇게 밀리터리까지 입문하게 만들었습니다. 게임에서 전투까지 비약하게 된 경로를 세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고 번거롭지만, 다름아닌 '액션(행위)'과 '승부'와 '운명적 상황'이 공통 키워드입니다. 이전글 중 상호작용 의례도박, 나심 탈렙 책들, 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고 인도 여행과도 모두 직접 연결된 내용입니다. 작년부터 내내 거의 이 생각뿐인 것 같네요. <상호작용 의례>랑 <도박>은 특히 읽다가 어떻게 이렇게 천재적인 책이 있을 수 있을까, 와 이거야말로 내가 찾던 거다 싶어 너무 흥분이 되어 한번에 읽어내릴 수가 없었을 정도였고, 지금까지도 뭔가 서평이랄 것을 쓸 엄두가 안 날 정도로 압도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기회되면 한번 같이 읽어보세요. 직접적으로 전투 이야기를 하는 책들은 아니지만 모두 승부 상황에 대해 다루고 있기에 제 마인드맵 안에서는 한 가지 주제를 제대로 관통하는 한 부류 책들입니다. 너무 개인적이고 비약적이고 불친절한 블로그네요. 이루 다 설명을 못하겠어서 죄송합니다ㅠ_ㅠ  

 

밀리터리 안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저는 전쟁의 메카닉적인 측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단 전쟁 문화사나 전략 전술론, 전쟁 사상사 같은 게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대략 이런 것들이 저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왜 전쟁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인간을 매혹하는가

- 전투의 포맷은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 전쟁 체험이나 전사 직업에 대한 인식은 시대별로 어떻게 변천했는가

- 전쟁에서는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유발 하라리도 전공이 전쟁사학이라는데 전 <사피엔스>는 생각보다 노잼이었던 반면(광범위하게 다루지만 뭔가 아주 참신하고 독특한 포인트는 없었다는 느낌) <극한의 경험>이라는 전쟁문화사 책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오늘은 <전쟁본능>이라는 책이 도착할 예정이라 기대됩니다! ^_^ 

 

그럼 <전투의 심리학>에서 재밌게 본 부분들 조금 가져와 보겠습니다. 본격 서평을 쓰고 싶은데 요즘 근성이 모자라서 인용만 하네요? 으 점심시간 다 끝나가네. 빨리 마무리. 

 

전투가 군인들에게 주는 심리적인 위안이 있다. 잔혹한 전투에 무슨 위안에 있겠냐며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전투는 전우애의 가슴 벅참, 적을 뒤쫓을 때의 흥분감, 기습·기만·위장 전술의 쾌감, 승리의 환희, 장난기가 섞인 무책임함의 순수한 재미를 가져다준다. (p.246)

이 부분은 전쟁사학자 존 키건의 <전쟁의 얼굴>에서 발췌해왔다고 합니다. 저 전쟁광 아닙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 시민이에요.... 하지만 전투를 게임으로 바꿔 읽어보세요. 너무 맞는 말. 게임은 인간의 원시적인 전투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대체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딸피의 유혹, 추격본능, 억제기 밀어버릴 때의 정복감, 펜타킬의 전율을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펜타킬 했을 때 너무 황홀해서 잠시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

 

신이시여, 아직 갖고 계신 것을 제게 주시옵소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거부한 것을 제게 주시옵소서. 
저는 불안과 위험을 원합니다. 
저는 혼란과 소동을 원합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제게 주시면, 
신이시여,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이런 것들을 항상 제게 주시옵소서. 
제가 이런 것들을 간청할 만큼
항상 대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1941년 7월 26일 임무 중 사망한 SAS 안드레 지멜드 중위가 남긴 기도문 (pp.320-321)

용기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압박받는 상황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품위를 유지하는 전사의 능력을 존경해 왔다. (p.507)

사실, 용기란 결과를 운명에 맡기고 위험에 뛰어드는 두려움이다. (p.572)

전사의 용기와 품위와 명예에 대한 이야기들이죠. 특히 '이런 것들을 간청할 만큼 항상 대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정말 멋짐...

 

그럼 마지막으로, 이 책의 부록으로 붙어 있는 '험한 세상에서 도덕성을 유지하면서도 강해지기 위한 스물두 가지 원칙'을 덧붙입니다.

 

1. 세상 전체가 미친 듯이 보이더라도 더 큰 믿음을 가져라. 
2.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이 믿는 대로 행동하라.
3. 자신의 공포를 분석하라. 보기보다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4. 선행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라. 일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에도 최선을 다해 열중하고 노력하라.
5. 물욕을 멀리하라. 돈에 너무 집착하면 정신이 허약해질 것이다.
6.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정신을 단련하라. 공공선에 따라 자신의 통제 규칙을 정하라.
7. 실패했다고 가던 길을 멈추지 마라.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8. 잦은 유혹이 있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유혹이 없을 때 걱정하기 시작하라. 그런 상태가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는 확실한 징조이기 때문이다.
9. 항상 공격에 대비하라. 신중한 장군들은 평시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10. 이를테면, 악당의 얼굴에다 침을 뱉어라. 용기를 얻기 위해 기운을 북돋아 주는 말 하나를 간직하라.
11. 두 가지 위험이 있다.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고, 하나는 자만이다. 어떤 훌륭한 일을 완수했을 때, 모든 공적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라. 
12.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라. 자신이 이기적인 경향이 있다면, 의식적으로 너그럽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라.
13. 전투에 나설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싸워라. 그러면 결국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14.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약간의 비행을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무시하고 넘어간 적이 나를 굴복시킬 것이다.
15. 대체 방안은 신중하게 평가하라. 잘못된 방법이 옳은 방법보다 종종 더 쉬워 보일 것이다.
16. 부상당했더라도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 훌륭한 군인은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고도 힘을 끌어모은다. 
17. 항상 행동 계획을 가져라. 그러면 싸울 때가 왔을 때 대처 방법을 알 것이다. 
18. 얻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를 이해함으로써 감정을 추슬러라. 사람들은 실제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로 걱정하고 신경 쓴다.
19.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라. 나는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원할 만큼 떳떳한 일을 하는가? 
20. 선행에 대한 보답은 선행 그 자체다. 일단 갖게 되면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21. 인생은 슬프고 어렵고 빨리 지나가 버릴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라!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니 매일 명예롭게 행동하라. 
22.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라.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많다. 

 

 

 

 

아 티스토리 편집기능 그지같누. 

이사가버릴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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