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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키플링 시 If 오역을 알아냈다

bravebird 2021. 2. 3. 20:42

가장 좋아하고 항상 가까이 두는 몇 안 되는 시 중에 러디야드 키플링의 If가 있다. 

Nas의 Made You Look이라는 곡 뮤직비디오 첫머리에서 처음 접한 후, 살면서 제일 억울하고 굴욕적이고 패잔병 같았던 시절을 이 시와 함께 버텼다. 몇 년 전에 이 폴더에서 소개한 적도 있다. (링크)

Made You Look 첫머리


마하트마 간디나 이소룡, 유일한 박사, 워렌 버핏이 좋아했던 시이자,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도 꾸준히 꼽혔다고 한다. 영국 윔블던 테니스코트의 입구에도 한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자 완전히 지쳐 버렸던 패잔병 시절에 가장 많이 되새긴 부분이다.

윔블던 테니스장 입구


이 시는 전혀 어렵지가 않고 쉬운 단어로 쓰여 있다. 그런데 그간 해석이 잘 안되는 딱 한 부분이 있었다.
"If you can fill the unforgiving minute with sixty seconds' worth of distance run"

흔히 아래와 같이 번역이 되어 왔기에 인내에 대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60초의 장거리 달리기로 채울 수 있다면"

많은 오역을 낳았던 문제의 그 부분


이 시를 간만에 찾아보다가 어디선가 댓글을 봤는데, 저게 오역이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서 영어로도 한번 찾아보니, unforgiving은 unrepeatable(되돌아오지 않는), inexorable(거침없는, 멈출 수 없는)로 봐야 한다고 한다. 


용서하지 않는 → 얄짤이 없는

결국 그 부분은 "다시는 안 돌아올 얄짤 없는 1분을, 매 초마다 집중한 60초 간의 장거리 달리기마냥 순간순간 꽉 채울 수 있다면" 이라는 의미로, Carpe diem, Seize the day, Live one day at a time의 메시지였다. 


한번 시를 다시 읽어볼까. 


만일 주변 모두가 궁지에 몰려 너를 비난할 때 냉정을 잃지 않는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에 들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 하거나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그 생각 자체가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만일 성공과 실패를 마주하더라도 그 두 사기꾼을 매한가지로 여길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악한에게 왜곡되어 또다른 바보들을 속이는 덫으로 악용될지라도 그것을 참아낼 수 있다면, 너의 전 생애를 바친 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도 몸을 굽히고 다 닳은 연장들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 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모아 한 번의 승부를 걸 수 있다면, 그래서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다면,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온 마음을 다해 용기와 힘줄을 짜내어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견뎌"라고 말하는 의지밖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그렇게 버틸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의 미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거닐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다면,
적뿐 아니라 사랑하는 벗 역시 너를 상처 입히지 못한다면,
모두가 너에게 의지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너무 의존하지는 않게 할 수 있다면,
만일 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매 1분을 60초 간의 장거리 달리기로 꽉 채울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아들아, 너는 비로소 남자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은근히 암시돼 있듯이 러디야드 키플링은 제국주의자였고, 심지어 키플링의 아들은 1차대전에서 실종되었다... 그렇지만 가끔 이유도 모를 고난을 담담히 버텨야만 하는 시절에 이 시는 나를 지탱해 준다. 다시 생각하니 ㄹㅇ 억울하고 비인간적인 시절이었는데 지금 와서 파헤쳐 봤자 바뀌는 거 하나 없이 나만 손해죠!? ㅋㅋㅋ 이젠 오래 전에 다 끝났다. 잘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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