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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공부를 왜 해야 할까?

bravebird 2021. 5. 12. 04:17

학생 때 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싫어했다. 무언가를 남한테 설명이 가능할 때까지 이해하고 정리해서 가르치는 건 꽤 재미가 있다. 근데 공부에 영 관심이 없는 학생들한테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납득시키는 게 불가능했다.

 

우선 내 스스로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그저 했었다!

 

잼민이 시절 승부욕이 강해서 운동이나 발표 같은 것에 욕심이 많았다. 중학교에 갔더니 라이벌이 생겨서 그 욕심이 공부로 옮겨붙는 바람에 처음으로 펜대 운전사가 되어보았다. 요령이 전혀 없어서 그냥 닥치고 하다 보니 잘한다 소리를 들어보게 되었다. 잘한다 소리를 계속 들으니 항상성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용 자체에도 재미를 느끼면서 너드가 됐다. 너드가 되니 가급적 동료 너드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어졌고 방법은 공부 뿐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들이밀 수 있겠음?! 이건 내 이야기일 뿐이지 이런 걸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또 내 성격상, 좋은 대학 가야 인생이 편하지 으이으이! 요즘은 공부를 잘할수록 예쁘고 잘생겼다고 으이으이! 뭐 이딴 말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산증인 아닌가 ㅋㅋㅋㅋㅋ 인생이 편하긴? 당시 전공도 싫고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대체 뭐 먹고 살지 고민 뿐이었는데. 잘생기고 예쁜 사람?! 대체 그건 전설의 포켓몬인가?! ㅋㅋㅋㅋ 아니 당장 내 면상으로 반증이 되는데 ㅋㅋㅋㅋ 스스로가 아직 경험해보지도 않은 전설상의 이득으로 약팔이하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불가능했다.

 

아쉽게도 공부에 대한 동기 설정이 이미 다 되어 있는 학생은 만난 적이 없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는 학생들을 감화시키는 게 과외 선생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치다. 그건 당시 만 18세~20대 극초반이었던 내 역량을 크게 넘어서는 일이었다.

 

아직도 나는 하필 딴것도 아닌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경험이 약간이나마 늘게 되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우월전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경험상, 적성? 진정한 나? 이런 건 전부 전설의 포켓몬 같은 것이다. 내가 경험한 현실에서는 공부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나 일 등 거의 모든 과제가 내 능력이나 적성이나 취향과 별 상관이 없이 그저 뚝 떨어진다. 좋든 싫든 잘하든 못하든 간에 그 과제는 해결해 내야만 한다. 그래야 내 목숨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공부는 괴로운 것이지만 그런 것과도 한번쯤은 진지하게 겨루어 보면 앞으로 끝없이 주어질 과제에 대한 연습이 된다. 어렵고 번거로운 것을 좀 참고 견뎌보는 훈련, 못하던 것을 잘하는 것으로 점차 바꿔보는 경험을 공부를 통해서라도 안 해봤다면? 나의 더러운 성격상 회사를 애저녁에 때려쳤을 것이며, 때려친 게 한두 곳이 아닐 것이고, 아마 지금 입에 풀칠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또 난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업으로 삼으려고 했었는데 보기좋게 대학원에 떨어졌다 ㅋㅋㅋ 막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공부를 해보지 않았다면 이걸로 밥을 벌어 먹고 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모르고 무식하게 덤볐을 것이다. 꼭 뭔가를 잘하지 않아도 좋다. 그걸 생각만큼 잘 못한다는 걸 깨닫고 인생의 낭비를 줄이는 것도 훌륭한 수확이다. 단, 공부는 여기까지니 이만 접어야겠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우선 공부를 한번 열심히 해볼 것이 선결 조건으로 요구가 된다. 공부가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생이 나한테 공부 왜 해야 되냐고 묻는다면? 일화를 곁들여서 쉬운 말로 해줄 실력은 아직 안되는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하다. 이 글도 와닿지가 않을 것 같다. 박진감 넘치게 얘기해줄 수 있는 재미있는 할머니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하라는 꼰머 발언에 대한 솔선수범을 하기 위해, 쒸이펄 벌써 4시가 넘어버렸지만 아침에 출근을 해야겠고 밤엔 방송통신대 과제를 해야겠다.

 

과제를 안하고 이런 쓸모없는 글이나 써제꼈다는 사실은 굳이 감추지 않겠다.

'내일 과제하는 나'라는 것이야말로 전설의 포켓몬 그 자체인데 그놈만을 한번 믿어본다.


내일의 나야, 내일은 너로 정했다! 가랏, 과제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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