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중국 자유여행은 난이도 최상이며 기괴함의 극치이다 본문
중국 여행 준비하다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글을 남긴다.
나는 여행 계획을 빡빡하게 짜고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신경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2023년 6월 현재 중국 여행은 그런 것을 강제하는 것이 확실하다. 기존에는 비자 준비만 조금 번거로웠을 뿐이지 준비할 것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비자, 결제, 교통, 통신, 관광지 예약, 숙박, 출입국 절차... 그냥 여행의 모든 절차에 태클이 걸리는 너무 번거로운 나라다. 그리고 귀찮음이 증가한 그 이유가 바로 기술 발전 때문이라는 것이 킬 포인트라는 점에서 기괴함의 극단이다.
중국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스마트폰이 보급되었다. 2011년에 중국에 갔을 때만 해도 피처폰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핀테크 결제를 한다. 길거리의 거지들도 QR로 적선을 받는다. 정말 편리해서 여행이 쉬워질 것 같은데 그게 아니다. 중국 국내에서 발급된 카드라야 핀테크 서비스에 연동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나도 있는 카드 없는 카드 다 끌어모아서 알리페이에 겨우 몇 장을 등록했는데 정작 현지에서 잘 될지가 모르겠다. 또 중국 현지 카드나 계좌를 만들려면 체류 기간이 일정 이상 되어야 해서 단기 여행자는 그것도 할 수 없다. 핀테크가 발달했는데 그것 때문에 외국인들은 도리어 결제를 할 길이 없어진 것이 너무 웃긴다. 핀테크가 너무 우세해서 현금을 준비해 가도 잘 안 받아준다고 한다. 뭐 대체 어떻게 돈을 내라는 거냐.
또 자금성이나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는 이제 위챗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지 입장이 가능한 것 같다. 당일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입장하는 것은 잘 안 되는 것 같다. 일단 '위챗'. 내가 핸드폰을 바꿨다는 이유로 위챗과 QQ 계정을 잃어버린 엿같은 사연은 별도의 글로 썼었다. 뭐 어쨌든 예약을 해야만 한다면 하겠다 이거야. 그런데 사전 예약 페이지가 전부 중국어로만 되어 있고, 무엇보다 중국 현지 휴대폰 번호가 있어야만 예약이 가능하니까 사람 놀리나 싶다. 이거 그냥 외국인들은 현지 도착하기 전엔 도무지 방법이 없다는 거 아니냐. 기껏 힘들게 비자며 뭐며 다 준비했는데 정작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을 못 갈 수 있다는 거 아니냐. 중국 여행의 목적 그 자체인 곳들을.
나는 이런 여행 계획표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것은 정신병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은 우연성과 가능성을 즐기러 가는 것이지, 분초 단위로 계획을 이행하고 예산을 관리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나 역시 매 여행의 목적은 매우 뚜렷한 편이다. 예를 들면 인도 마하라슈트라에 가면 석굴을 많이 보고 오겠다는 목적이 있다. 그것 때문에 애초에 마하라슈트라를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맵을 켜서 무슨무슨 석굴이 어디 있나 직접 찾아보고, 석굴 간의 거리를 확인해보고, 이동 수단과 소요 시간이 현실적인지 알아보고, 동선을 줄일 수 있는 곳에 숙소를 잡고, 허탕치지 않도록 문 닫는 날을 확인하는 정도의 노력은 당연히 한다.
여행 계획은 그 정도여야지... 무슨 전부 다 핸드폰으로 예약해놓지 않으면 못 가게 해놓았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예약을 좀 미리 하겠다는데 왜 중국 폰 번호를 요구하냐고 (이건 인도 기차표도 그렇긴 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가기도 전에 회원 가입이며 카드 등록이며 예약 시도며 수 차례의 에러며 재시도며 뭐며 진이 다 빠져서 도착하면 자빠져 자야겠네.
이런 실정이라면 이젠 대부분의 단기 여행 외국인에게 실질적으로 패키지 여행이 강제되는 듯 하다. 중국어를 이만저만 할 줄 안다 할지라도 뭔 가는 곳마다 다 예약을 하고 계획을 해야 하는데 그 단계마다 태클이 걸리는 식이라면 시간이 무척 많아야 쾌적한 여행이 가능할 것 같다.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자유여행은 유명 관광지에서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예컨대 내가 막고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서울에서 일단 베이징을 간 다음 거기서 둔황까지 국내선을 80만원짜리 예매해서 타고 갔는데 정작 막고굴 예약이 도저히 안 된다? 월아천에 입장을 못한다? 현장에서 기다릴 방법도 없다? 뭐 이딴 일이 생겨서 그 여행의 주요 목적 자체가 폭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이번에 아무리 체력이 남아 돌고 의욕이 넘치더라도 도시 간 이동이나 관광 욕심은 자제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듯 하다.
중국은 최첨단 기술 발달이 오히려 외국인들의 여행을 막는 정말 희한한 나라이다. 내가 중국의 정말 이상한 점을 여러 가지 알면서도 역사와 언어를 재밌어 하니 관심이 깊어서 자주 여행을 다녔지만 이번에야말로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중국은 기술 발전이라는 이유로 자유여행 난이도가 극악이 된 아주 그냥 멋진 신세계다.
다시 한번 결론은 내가 2011년에 다른 나라가 아니라 중국에 교환학생을 가서 실컷 돌아다닌 것은 신의 한수였다. 오히려 많은 것이 아날로그였고 대부분의 것을 현장발권하였던 그때가 지금보다 간편하고 융통성 있었다. 이제 그런 것은 어렵다. 체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본다. 이런 글 쓰면 입국거부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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