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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화권

베이징 여행 후기 (인프라 측면)

bravebird 2023. 7. 9. 18:37

중국에 잘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중국에서만 사용하는 앱을 세팅하고 이것저것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 귀찮았지만 역시나 너무나도 과분한 환대를 받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구경도 부지런히 다니고 재밌게 놀다 오긴 했다. 나는 중국은 관광 자원이 넘사벽이고 사람들도 시원시원 통쾌하고 일단 적응만 하면 철도나 통신 등 인프라도 잘 되어있는 나라라 호감을 갖고 있는데도 몇 년 사이 상당히 삼엄해진 인민통제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너무나 재미있는 나라이나, 외국인 자유 여행은 좀 귀찮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 일단 비자가 비싸다. 나는 1달짜리 단수 여행비자 발급을 여행사 대행을 시켜서 받는 데 11만원이 들었고 물론 증명사진 찍는 비용은 별도였으며 지문을 찍으러 충무로에 평일 낮시간에 한번 다녀와야 했는데 입국 심사에서도 지문을 다 찍었다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비자 신청자 본인이 입국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전에도 지문을 찍고 공항 도착한 후에도 지문을 찍어야 하는 그런 나라인가 보다. 그리고 비자 발급을 위해 별의 별 개인정보를 다 넘겨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부모님 성함, 부모님 직업, 졸업한 고등학교와 대학교, 연봉 같은 것을 소상히 써야 했다...

 

- 내가 호텔 투숙을 원래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숙소를 처음에 서비스 아파트먼트로 예약했었는데, 주숙등기를 하려면 집주인과 직접 같이 파출소에 간다고 해야 해서 취소했다. 호스텔은 코로나 때 도산했는지 거의 없었다. 베이징은 기록적인 무더위가 덮친 상황이라 샤워가 무척 중해서 1인실을 찾아야 했는데 호텔은 아무리 싼 것도 1박에 10만원이 넘었다. 하여튼 중국은 외국인이 투숙 가능한 숙소는 옛날부터 한정되어 있고 그 숙소들은 조금 비싸다. 그래도 그런 숙소는 주숙등기를 자동으로 해주기 때문에 내가 신경쓸 것은 없다.

 

- 회사 일 때문에 구글과 카카오톡 등을 사용해야 해서 로밍을 해갔다. 그러면 중국에서 금지된 앱들을 다 쓸 수 있다. 하지만 중국 번호를 쓰지 않으면 중국에서만 다운받을 수 있는 앱들은 쓸 수가 없다. 구글 플레이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VPN은 회사 노트북을 들고 가서 컴퓨터로만 사용했다. 핸드폰에서는 별다른 VPN을 쓰지는 않았다. 아 그리고 8월부로 중국 링크드인 섭종된다고 함ㅋㅋㅋㅋ...

 

- 이번엔 미리 예약해야 하는 관광지는 하나도 가지 않았는데, 천안문광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잠깐 쓱 보기만 할까 싶어서 내려봤더니 방문 예약을 미리 해야만 했다. 그냥 걸어서 지나쳐 가면서 볼 수도 없도록 천안문광장 양 옆을 막아놓았다. 잘 모르지만 뭔가 통행 제한과 방문객 통제가 심한 것 같았다. 몇 년 전에는 그냥 밤에 자전거 타고 지나가면서 봤었는데...

 

- 디디추싱의 경우 한국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마스터카드)를 미리 연결시키고 갔는데 결제가 잘 되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고 한국보다 택시비가 확실히 저렴해서 부담 없이 타고 다녔고 차도 금방금방 잡혔다.

 

- 알리페이에는 체크카드와 신용카드 2개 정도씩을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섞어서 등록해 놓고 갔다. 가끔가다 결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해외카드 거래를 터놓지 않아서(?) 그랬던 경우가 한 번 있었다. 또 기차역에서 알리페이 결제가 안되는 상황이 있었다. 알리페이 앱을 켰는데 결제할 카드 종류들이 전부 회색 표시가 되어서 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현금을 냈다. 하여튼 갑자기 결제가 안될 상황이 있어서 신용카드나 현금도 약간은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 경우 위챗 페이는 한 장의 카드도 등록시킬 수 없었는데 어떤 사람은 현대카드를 연결시켜서 잘 썼다고 한다.

 

- 식당에서 주문은 대부분 QR을 스캔하면 메뉴판이 뜨고 거기서 결제까지 한다. 나는 거의 얻어먹고 다녀서(!) 식당에서 두 번 정도만 직접 결제했었는데 알리페이를 통해 한국에서 만든 마스터카드 체크카드를 잘 사용했다. 하여튼 이렇게 QR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면 누군가의 핸드폰, 높은 확률로 현지인의 핸드폰으로 한꺼번에 주문하게 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이 사람들 손이 커서 매번 거하게 사주는 밥을 더더욱 얻어먹게 된다. 나 같은 외국인은 먹고 나서 송금을 해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치페이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그냥 감사히 즐겁게 먹고 한국에서 미리 선물을 잘 챙겨가는 것이 좋다.

 

- 송금 방식으로 결제해야 하는 곳들은 결제를 할 수 없었다. 송금 방식으로 결제하려면 친구한테 미리 중국돈을 현금으로 주고 내 계좌로 받아놓아야 한다. 나는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 지하철역 기계로 이카통 카드를 충전하거나 일회용 승차권을 사려는데 내 이름과 여권 번호와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해서 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카드에 돈만 넣고 싶거나 지하철 한 번만 좀 타겠다는데 온갖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것이다. 입력을 해도 인식도 안 된다. 나라는 사람이, 즉 2년 전에 바꾼 내 여권 번호와 내 중국 전화번호가 전산상에 등록이 안 돼있어서... 그리고 지하철역 카운터에 가면 직원이 없다. 카운터에 설치돼 있는 전화로 직원을 불러서 현금을 주고 이카통 카드를 충전해 달라고 했다. 앞으로도 이게 가장 편리할 듯 하다.

 

- 기차표를 예매하거나 직접 현장 구매할 때, 그리고 승차할 때도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 내국인도 기차표 구매와 승차 시 신분증 정보가 필요하며 플랫폼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신분증을 찍어야 한다. 그러니까 기차표 구매 여부 자체를 기차표가 아닌 신분증으로 검사하는 것 같은데 굉장한 인민통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한창 다니던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고, 기차표를 살 때 여권을 보여주긴 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플랫폼 들어갈 때는 기차표만 보여주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여튼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이 인터넷을 통해 기차표를 예매하는 것은 가능은 한 것 같았는데 신분증 정보를 제출한 다음 통과가 되어야만 해서 좀 시간이 걸리고 귀찮게 되어 있다. 또 기차역에 있는 예매 기계에서도 통 여권번호를 입력하라는 둥 해서 직접 구매가 불가능했다. 나는 高德地图에서 잔여 표 상황을 보고 기차역 현장에 가서 직원에게 말해서 표를 산 적이 있었는데 이때 알리페이 결제가 되지 않아서 현금을 냈고, 또 다른 한 번은 친구가 내 정보를 입력해서 인터넷으로 대신 표를 예매해줬다. 하여튼 버젓이 중국어를 할 줄 알아도 혼자서 처리가 불가능한 것들이 많아 이래저래 신세를 지게 된다. 선물을 많이 챙겨가자.

 

- 美团은 정말 편리해서 그냥 슈퍼 주문도, 음식 주문도 집에서 일상적으로 한다. 오히려 매장에 직접 가는 것보다 할인이 더 많이 되어서 이득일 때가 많아 보였다. 배송비를 내더라도 한국 돈으로 몇 백원 수준이라고 함. 다만 외국인의 경우 사용하기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친구가 사용하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 안마를 받았는데 현장결제보다 틱톡이나 大众点评 같은 플랫폼에서 예약한 후 결제하면 오히려 훨씬 쌌음. 친구한테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물어보니 플랫폼에서 판매자에게 보조금 같은 것을 주기 때문에 가격을 더 싸게 책정할 수 있다고 함. 결국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이득인데, 다만 결제된 돈은 바로 판매자에게 송금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2개월 후에 송금해준다고 함. 2개월 동안 아마 투자를 하든지 해서 돈을 불리겠지? 그래서 전부 다 윈윈인 뭐 그런 구조라고 함.

 

- 길거리에 프로파간다 여전히 많음. 촌스러워서 도저히 못봐주겠음. 그리고 전반적으로 매우 입조심하게 됨. 지금 이 글 쓰는 것도 조심스러움.

 

 

하여튼 종합하면 중국 신분증 갖고 있는 내국인에게는 정말 편리한데, 처음 발들여놓은 단기여행 외국인에게는 인프라 장벽이 좀 높은 국가가 맞다. 정말 이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관광자원과 유구한 전통과 다양한 매력을 갖고 써먹지를 못하는 나라... 정치 프로파간다가 소프트파워를 분쇄해버린 나라...

 

생각건대 이 모든 것은 중국은 최고권력자 욕을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역사의 향방을 정말 크게 바꿨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꼽자면 김영삼인데, 바로 문민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대통령을 놀리거나 욕해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역사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난 생각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에 가서 꽃 한 송이 놓고 오지 못한 것을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해왔다.

 

 

 

하여튼 중국은 아직 내겐 볼 것이 너무 많아 평생 가도 모자라다고 생각이 되며 갈 때마다 즐겁지만 시진핑 집권이 공고해지면서 점점 쇄국정책이 심해지니 외국인으로서 점점 번거롭고 불편해진다. 그런데 한번 다시 생각해 보면 온국민이 평생 바뀌지 않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핸드폰 번호가 있어야만 실명인증이 가능하고 뭐 좀 하려면 전부 실명인증해야 하고 뭐 공동인증서가 어쩌고 지랄발광을 하는 우리나라도 결국 마찬가지 아닐지? 이미 적응이 되었기 때문에 편리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닌지? 이미 적응이 다 된 중국 인민들은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테크놀로지 발달 자체는 한껏 누리고 있는데 사실 알고보면 우리도 비슷한 짝 아닌지? 감시사회 아닌지?

 

하여튼 오늘날은 월든 호숫가에 집지어놓고 살았던 소로우처럼 조용히 살 수가 없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으며 그리드를 벗어날 수가 없는 세상인 듯 하여 피곤하다. 이번에도 놀러다니면서 어서 퇴직하여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퇴직하고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중국에서 학생비자 같은 걸로 지내면서 산수를 유람하러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감시를 많이 받겠지만....

결론 : 어쨌거나 빠른 퇴직 후 가급적 은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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