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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대구에서 만난 사람 - 고라파덕

bravebird 2024. 2. 7. 19:14

일요일에 갑자기 결정해서 월화수 대구 부산을 다녀옴. 백수의 위엄. 실업자의 특권.

 

부산 내려가는 길에 동대구역에 잠깐 내려서 신세계 백화점에서 초등학교 친구 '고라파덕'을 잠깐 만남.

 

 

초등학교 5~6학년 때 둘다 키가 고만고만해서 자리가 비슷하여 자주 짝꿍을 했었음. 얘가 맨날 PC방 갔다가 늦게 학교 오곤 했어서 선생님이 반장인 내 옆에 앉힌 것도 있음.

 

나는 그때보다 나이가 3배가 되었으나 여전히 포켓몬을 잡고 다님. 포켓몬 자동사냥 해주는 디바이스까지 갖고 다니면서 포켓몬을 잡는 도중 얘를 만났음. 얘가 보고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더니 지도 해봄. 내가 잡은 고라파덕 중에는 이름을 얘 이름으로 바꿔 놓은 것도 있다 ㅋㅋ

 

하여튼 우리가 어떻게 다시 연결이 되었냐 하면 내가 이 친구 세이클럽 아이디를 똑똑이 기억하고 있었음. 기억하기가 쉬운 아이디임. 그리고 얘가 당시에 모든 게임 계정과 이메일 주소 등등을 전부 똑같은 아이디로 사용하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었음. 그 아이디를 카카오톡에 쳤더니 진짜 이름 석자가 바로 나오길래 2년 전에 오랜만에 연결이 되었음.

 

초등학교 졸업 당시 우리 반 연락망을 내가 작성했음. 당시 굉장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검수를 했었음. 좀 쉬운 전화번호나 ID 같은 건 거의 외워졌을 정도임. 꽤 크고 나서 고등학교 대학교 때쯤일까 아빠 차를 타고 대구 고향 동네를 지나간 적이 있음. 근데 어떤 가게 간판에 굉장히 익숙한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거임. 아 이거 고라파덕네 아버지 가게구나, 이게 여기 있었네 하고 바로 알아차림. 정작 초등학교 당시에는 가본 적도 어딨는지도 몰랐던 가게임. 당시 스스로의 기억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음. 그랬었으나 이제는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남.

 

하여튼 이 정도로 얘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는데 짝사랑해서 뭐 그런 거는 아님 ㅋㅋㅋ 얘가 캐릭터가 확실했음. 게임 하느라 학교에 잘 안 왔었고 와서도 잠만 잤는데 그런 애를 처음 봐서 신기했음. 근데 머리는 진짜 제일 비상했음. 특히 언어 능력이 장난 없었음. 졸린 눈으로 있다가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진짜 똑똑하고 재치 있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고라파덕을 닮았음. 내가 직접 지어준 별명인데 얘는 중학교 때까지 계속 고라파덕이었다고 함. 개뿌듯. 고라파덕은 나를 논리적이고 잔머리가 항상 삐쳐 나와있는 애로 기억하고 있음.

 

더하여, 5학년 때 담임이 고라파덕 개인사에 대해 모든 친구들 앞에서 정말 무신경한 말을 하는 걸 봤는데 그때 내가 다 속상하고 충격을 받아서 확실히 기억에 박혀 있음. 2년 전에 대구 놀러 갔을 때 대로변에서 정말 잠깐 만나서 한 20분 서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음. 그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그때 어린 마음에 너무 놀라고 선생님한테 너무 실망했고 니가 크게 상처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니는 다행히 그 일을 기억도 못하네. 하여튼 그 일 때문에 니를 잊을 수 없었고 니가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길 항상 바랐다!! 오늘 이렇게 다시 보게 돼서 감개가 무량하다!! 그리고 니가 이렇게 훌륭하게 잘 지내고 있고 가족들도 잘 된 것 같아서 기쁘다!!" 하고 말함. 그 후 우리는 게임 친구로 가끔 게임을 같이 함 ㅋㅋㅋㅋ 근데 그 겜돌이가 이제는 게임을 해도 아들이랑 충분히 놀아주고 다 재워 놓고 나서 하더라. 인생~ 부모는 위대하다.

 

여튼 나이가 3배가 되고서 다시 만난 고라파덕과 급식이 아닌 식사를 같이하니 신기했음. 7살짜리 아들 아빠로서 진짜 명실상부한 인생 선배가 돼 있었음. 아들이 진짜 귀엽고 질문이 한참 많은 나이라고 하는데 예컨대 "아빠 무지개는 왜 생겨요?" 이러면 예전에는 어린이 수준에서 이야기해 주려고 엄청 노력을 하다가 지금은 "응 그건 빛이 굴절을 해서 프리즘 현상이라는 게 일어나서~"  어쩌고 저쩌고 과학 팩트 그 자체를 대답한다고 함 ㅋㅋㅋㅋㅋㅋ 그러면 "아 그렇구나~" 하고 끝이 난다고 함 ㅋㅋㅋㅋㅋㅋ 자상하게 대답은 다 해주지만 더 이상의 질문은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확실한 스킬이라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천재네 진짜 ㅋㅋㅋㅋ

 

아들과 같이 있으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고 함. 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다고 함. 항상 카메라가 켜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함. 애가 가끔 생각지도 못한 귀엽고 엉뚱한 짓을 하는데 그게 너무 신기하다고 함. "이제 나는 야빢에 안남았다 야뿐이다" 하는 걸 듣고 약간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울컥하였음. 학교에 잘 오지도 않던 겜돌이가 한 생명체를 훌륭히 책임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보기 좋았음. 나중에 대구에 다시 가면 아들 만나게 해 달라고 했음. 주말에 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고, 애가 정이 많아서 아빠 친구들을 좋아하고 잘 따르고 잘 기억한다고 함. 고라파덕 주니어는 분홍색과 하츄핑과 티니핑과 헬로키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메모해 놓음.

 

회사 잘린 것도 커밍아웃 했는데 별로 놀라지도 않음. 그리고 걱정 안 된다고 니는 알아서 잘 살 것 같다고 함. 4반세기의 세월이 지나서 만난 초등학교 친구도 이렇게 말해주니 참 고마웠음. 그동안 오랜 시간 그다지 헛살지는 않은 것 같음.

 

그리고 고라파덕은 참 달관한 자의 여유가 있음. 매우 쿨하고 느긋함. 본인이 주말에 직접 육아를 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우 이해가 잘 된다고 함. 아내더러 주말 되면 클럽 나가서 춤추고 오라고 했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이외에도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해 어찌어찌 될 대로 되겠지 하고 달관한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음.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대처하고 적응해 나감. 이제 곧 학부형이 될 거니까 애 돌보기 유리하도록 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직종으로 직업도 바꿈. 덕분에 보험 상담을 좀 받음. 내가 고정비 나가는 걸 싫어해서 보험을 최소한의 필수적인 것만 드는 성향인데 앞으로 만약 보강한다면 어떤 부분을 고려해서 어느 정도 가격대로 구성하면 좋을지 명쾌하게 알려주었음. 다 메모해 뒀으며 태평성대 백수시절 끝나고 다시 노예ㅋㅋㅋ 되면 조언대로 하는 걸 진지하게 고려 예정.

 

고라파덕은 자기는 이제 인생에 궁금하거나 기대되는 게 별로 없다며 우주의 끝이 뭔지가 궁금하다고 했음. 잠자기 전에 우주 유튜브 보는 게 취미라고 함. 그리고 본인 아버지가 사주를 엄청 믿는다면서 자기 사주를 아버지가 봐주신 이야기를 들려주었음. 자기 인생의 정말 중요한 부분은 사주가 정확히 맞혔다고 함. 이런 주제가 연달아서 나오는 게 매우 신기했음. 그래서 나도 마침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인생의 좀 중요한 사건은 약간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자유의지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니까 바로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 이야기와 관찰자 효과 이야기로 받아치더라고 ㄷㄷㄷㄷㄷ

 

그리고 얘가 내 피부 보고 놀람. 그래서 아 솔직히 그건 ㅇㅈ 하면서 비법을 전수해주기로 하였음. 이 글 끝나면 딱 정리해서 보내줄 예정. 내가 피부가 원래 나쁘지는 않았지만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좋아졌는데 이런 좋은 건 혼자 알면 안된다. 사실 별거 없고 일단 백수여야 하며 그 이외에는 비타민 세럼(항산화) + 수분 크림 + 자외선 차단제 3위 일체임. 모두들 비타민 C+E, B(나이아신아마이드), A(레티놀 계열) 제품 찾아보고 주의사항을 익힌 다음에 한번 사용해 봅시다. 앞에서부터 하나씩 사용해 보고 효과가 확실히 느껴지고 욕심이 나면 추가하면 됩니다.

 

하여튼 초등학교 때의 가장 잊을 수 없는 친구 고라파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고 뿌듯하였음. 고라파덕 주니어를 만날 날을 학수고대함. 여튼 이렇게 25년여간의 이야기를 나눈 다음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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