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부산에서 만난 사람 - PGT 본문

일상

부산에서 만난 사람 - PGT

bravebird 2024. 2. 8. 02:31

V를 만나고 돌아와서 실컷 폰을 하다가 새벽 늦게 잠들고 다음날은 백수의 특권을 행사하여 늦잠을 쳐잤다. 점심으로 닭칼국수를 사먹고 남포동을 거쳐 영도로 가 바다 구경을 하면서 실컷 걷고 포켓몬을 잡은 다음에 동네에 돌아와서 안티프래질을 좀 읽었다. 저녁나절 친구 PGT를 만났다.
 
마침 내 숙소가 부전시장 안에 있고 시장에서 회를 먹기로 했기 때문에 부전역에서 만났다. 부전은 서면 바로 옆이다.
 
"아... 너무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서면부전이 같이 붙어 있는 거고. 가슴이 아프다."
 
만나자마자 일단 위와 같이 드립을 박고 시작했다.
 
"오 좀 치네?? 하나하나씩은 생각을 해도 두 개를 엮을 생각은 몬했디."
 
이 놈은 맨날 날더러 노잼 씹선비라고 하기 때문에 이런 인정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얘는 상대가 여자든 20년된 친구이든 인터넷 세상에서였든 전혀 가리지 않고 스스럼 없이 드립을 치고 광대가 된다. 그 초지일관함의 바탕이 되는 강력한 캐릭터는 실로 경이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평소에 이런 섹드립을 치는 자도 주변에 없을 뿐더러 회식자리 같은 데서 어쩌다 들으면 못 알아들은 척 하기 바쁜데 이 친구한테는 내가 먼저 개드립을 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염성이 있는 카리스마적 캐릭터이다. 존나 거침없고 구애 안 받는 성격인데 동시에 무해하고 절도가 있음. 그리고 윾쾌함. 참 부러운 성격의 전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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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사람들

재기발랄하고 장난기 많은 사람들 엄청 부럽다. 나는 그다지 재기발랄하진 않다. 예의와 상식 지키는 편이다. 웬만하면 점잖다. 대신 스스럼없는 드립 같은 거 잘 못친다. 흑역사 공개 같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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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역 근처의 옛 여관촌을 휙 둘러보고 부전시장으로 향했다.
 

 
 

 
 
이 친구는 내가 인도여행을 갔다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개쩌는 인도여행기를 올렸길래 나도 한편 올린 다음 야 너 내 동료가 돼라 하고 연락을 하게 되면서 친해짐.
 
부산에 간 건 친구들 만나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백수 기념 여행을 러시아로 갈지 인도로 갈지 (둘 다 가도 되지만 기후 차이 때문에 번거로울 듯 하여 양자택일 필요) 생각해보려는 목적도 있었음.
 
만약 인도를 간다고 하면 갈 곳은 진작부터 정해져 있다. 콜카타로 들어가서 시킴에 다시 한번 갔다가 부탄을 찍고 아루나찰 프라데시도 노려 보고 바라나시 쿠시나가르 보드가야 그리고 네팔 룸비니 등등 불교 성지를 쭉 다녀오고 네팔도 다시 한번 가보고 뉴델리 찍고 우타라칸드와 히마찰과 펀자브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거기서 와가 보더를 넘어서 파키스탄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더 오래 있을 엄두가 난다면 뭄바이나 오로빌이나 케랄라 같은 인도 동남 서남부로 아예 쭉 내려가도 되고. 근데 PGT가 3월에 네팔에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얘기를 좀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찾아갔다.
 
이 친구는 직장인인데 여행 유튜브도 블로그도 갖고 있으며 꽤 잘 알려진 인물이다. 내가 이번에 백수가 되면서 월급쟁이로 산다는 것의 취약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이렇게 된 김에 지금까지 잘 안하던 짓을 시도해봐야 할 필요성 역시 느꼈다. 왜냐면 10여년의 직장 생활은 그다지 보람되거나 재미있지는 않았기에 단순히 오직 관성 때문에 그 길로 바로 돌아간다면... 난 그 길로 곧...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라는 광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하면서 자기 캐릭터를 마음껏 발휘하고 살아가는 삶은 어떤지 한수 접고 경청하기 위하여 친구를 찾아갔다.
 
만나보니 이미 네팔 갈 날짜도 다 픽스해 놨고 자기가 관심 있어 하는 불교 철학서도 엄청 많이 읽어 두었더라. 근데 내가 가려고 하는 시킴 진짜 바로 옆이 네팔이기도 하고 어차피 나도 불교 성지를 다 찍으려면 네팔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시기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일정이 겹치면 아마 유튜브에 씹노잼캐릭터로 찬조 출연을 하게 될 것이다. 조회수 멱살캐리 해주겠다고 허세를 부려 놓았다 ㅋㅋㅋ 안 겹치면 안 겹치는 대로 괜찮지만 네팔에서 만약 만나게 된다면 다시 없을 재미난 기억이 되지 않겠는가.
 
이외에는 이런 얘기들을 했다. 회사를 짤려도 아무 후회도 없고 도리어 그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짧게 하였더니 PGT로서는 드물게 바로 칭찬을 박았다. 그리고 니는 좀 제발 놀고 오직 이때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일하고 돈버는 것 그 다음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보았다.
 
나 - "야 그냥 인생 별거 있나 싶다. 걍 생명체 제1본능이자 목적은 생존 아니겠나. 나는 지금껏 독자 생존해서 결혼은 그저 옵션으로 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일하고 돈벌고 혼자서 집 마련했어. 여자들한테까지 확대된 보통 교육의 혜택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이게 개인 차원의 생존을 위해서는 백번 합리적인 선택이 맞지. 근데 요즘은 다들 이렇게 사니까 다들 번식을 멈춰 버렸잖아. 집단은 절멸될 판이다. 이게 웃기지 않냐? 이런 걸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아이가. 그리고 좀 신기하기도 해.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거는 누대의 조상들이 수만 년 동안 번식을 선택해 왔기 때문인데 지금 와서 오로지 내 한 사람의 선택으로 그게 끊어진다고?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ㅍ - "ㅋㅋㅋㅇㅇ맞음"
 
나 - "인생에 사실 뭐가 더 있겠노?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은 생존 그 자체가 산다는 것의 전부인 것 같다. 일단은 생존이고 당장 생존이 해결되면 그 생존을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번식 아니겠나. 그동안 생존할라고 일하고 돈벌기 열심히 해봤는데 ㅈㄴ 허무하기만 하다. 니 백년의 고독 좋아하제. 띵작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나도 읽어 봤거든. 근데 이름도 헷갈리고 딱 한마디로 요약도 못하겠고 사실 읽을 때 그냥 그랬어.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삶이 끝나지 않아! 하는 내용이네.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ㅍ - "맞다 딱 그거다. 서면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나 - "ㅋㅋㅋㅋㅋㅋㅋ 일은 쌔빠지게 해봤지만 그다지 내 작품처럼 안 여겨진다. 니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거. 니 채널을 키우는 거. 혹은 자식을 낳아 기르고 가족을 만드는 거. 아니면 사업체를 만드는 거. 아니면 자산을 갖는 거. 그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것을 갖는 일인 것 같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세상에 창조해낼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대단하고 신기한 거는 사람 아니겠나. 애는 자라면서 자기 삶을 스스로 또 만들어 갈 거고 그게 계속 이어지면서 반복이 되는 건데. 존재하지 않던 엄청 많은 것들이 새로 생겨나는 거잖아."
 
ㅍ - "ㅇㅇㅇ 맞음."
 
 
모 하여튼 부전시장에서 회 먹고 나서 치킨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저런 얘기들을 해씀. 불교맨인 PGT는 석가모니 입적 당시 아난다와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인간미에 대해서 감동에 젖어 이야기하였다. 실로 감동스러운 내용이 맞으므로 한번 읽고 갑시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냈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늙은 수레가 가죽 끝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섬으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계산하고 나와서 숙소에 들어와서 식고 잘려고 했는데 폰을 다시 보니 희한하게 92000원이나 나왔더라. 뭔가 좀 이상해서 PGT한테 문자 보내서 물어봤더니 분명 잘못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치킨집에 전화를 해보니 옆테이블과 착각했다고 하면서 차액 19000원을 보내준다고 했다. 계좌를 보내 주면서 영수증을 요청해 보았는데 치킨 한 마리에 맥주 10잔 ㅋㅋㅋㅋㅋ 맥주 10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하다.
 
이날 푹 자고 이튿날 낮에 신발원에서 혼자서 네 접시 먹어 치우고 잠깐 안티프래질을 마저 읽다가 기차 시간을 앞당겨서 서울에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 인도 비자용 증명사진을 찍었다. 이미 사진 파일은 당도하였다. 그래서 대구와 부산 다녀온 이야기를 좀 무리해서라도 빠르게 기록해 두고 그 다음 일로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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