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2024년 2월 8일 본문

일상

2024년 2월 8일

bravebird 2024. 2. 9. 18:13

친구들 몇몇이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레이오프 글을 읽고 댓글을 달려다가 오류가 나서 못 단 것들이었다. 이런 것들은 귀한 것이니까 저장해 두어야겠다. 
 

싱가포르에 있는 친구 H. 평소에 일하면서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의견을 많이 구했다. 이 친구의 인사이트 덕분에 우리 팀의 입지와 내 job role이 잠재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임을 일찍 간파할 수 있었으며 이 친구가 제시해준 건설적인 방향대로 새로운 업무 방향을 잡고 일할 수 있었다. 
친구는 리더로서 탁월하게 일을 했으나 사내 정치적 상황에 휘말려서 회사를 나와 있다. 하지만 그걸 계기로 오히려 재정 자유를 달성하였고 곧 새로운 일도 시작하게 되었다. 조만간 싱가포르에서든 한국에서든 만나볼 수 있길 희망함. 
 

위 친구의 팀원으로 일했던 W. 
H가 갑자기 회사를 나오게 되면서 같이 레이오프된 케이스. 그래서 H가 내 글을 W에게 보여주었다. 정말 똑똑하고 열심인 인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회사를 옮길 때 같이 데리고 갔을 정도이다.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라고 한다. 
한국에 놀러를 오거나 내가 싱가포르에 놀러가면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 나도 오늘 메시지 보내 줘야지. 
 

러시아 친구 V가 보내준 생일 축하 메시지. 
"I wish you happiness, happiness in this big world. Like the sun in the morning, let it come into the house!"
 

정말 뜻밖에도 미국 본사의 디렉터가 보내준 메일의 일부.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너무나 감사했다. 
 
 
 
 
어제는 회사 동료 하나를 처음으로 만났다. 우리 집으로 놀러를 왔다. 
 
"진짜 딱 본인 집이네요. 회사에서는 전부 감추고 있더니 이렇게 취향이 분명해. 집을 정말 자기 스타일대로 멋지게 만들었네요."
 
그게 어떤 뜻인지 물어봤더니 깔끔하고 실용적인 것이라고 한다. 책도 많고. 숲이 바로 보이는 경치도 좋고. 딱 봐도 그냥 내가 살 것 같은 집이래. 
 
그렇다. 집은 정확히 원하던 대로 만들어졌다. 나는 사전 논의는 좀 열심히 했지만 정작 공사할 때는 거의 찾아와 보지도 않았는데 수완 좋고 열심인 사장님이 정말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후기를 잘 남겨드려야겠다. 여하간 아직 우리집을 들어와본 사람이 몇 명 없기 때문에 매우 기분 좋았던 평. 
 
회사 이야기를 나누며 작년 가을에 꿨던 꿈도 이야기해 드렸다. 
 
발디딜 곳이 전혀 없는 좁고 높다란 수직 기둥 위에서 도저히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저 뛰어내릴게요 안녕히 계세요" 하는 꿈이었는데, 뛰어내리자마자 어처구니가 없게도 너무 가뿐하게 착지를 하는 내용이었다. 동료가 예지몽 아니냐고 했다. 
 
레이오프 경험은 이 꿈이 암시하는 그대로였다. 레이오프 통지 즉시 지난 5년간의 모든 일은 아무런 고통도 충격도 없이 간단히 과거지사가 되어버렸다. 사직서에 서명을 하기 전까지는 약간 분노한 표정을 일부러 짓고 있었으나 서명 직후에는 팀장과 인사팀장을 위로해드리고 나왔다. 나 이상으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후 회사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고 쉬엄쉬엄 놀기 바빴다.
 
왜 내가 잘린 건지, 다른 사람은 누가 잘렸는지, 현재 회사가 어떤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너무 먼 과거처럼 느껴졌기에 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놀아 가며 다음 일을 궁리하느라고 굳이 옛 얘기를 하며 시간 쓸 틈이 없었다. 내가 실의에 빠졌을까 봐 말을 걸기가 어렵고 숙연해져 있는 동료들에게 실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그저 번거로웠다. 심지어 내가 현재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잘 몰랐으면 좋겠다. 절망해 있는 줄 알았으면 해.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친했던 동료를 어제 처음으로 만나 지난 모든 얘기를 한 것이다.
 
동료 역시도 나와 같은 상황인데 이 분은 회사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기에 들은 얘기가 많았다. 들어보니 생각대로 남은 자들의 충격이 대단한 것 같다.
 
우선 본부장이 꺼이꺼이 울었다고 한다. 본부장은 내가 연봉 상한에 부닥친 것을 알고 넥스트 스텝을 물었을 당시 "미국 본사로 지원해봐도 되고" 하는 식으로 남 일처럼 대답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전 한국에 살고 싶은데요"라고 대답하고 회의실을 나와 그 즉시 짐을 꾸려 두었다. 한국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 미국에 가는 게 더 빠르다면 여기는 사실상 북한이었던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이 말도 안되는 팀간 협업 구조를 짜놓고 아무 문제 의식도 없이 그냥 돌렸어. 그런 분도 이번에 꺼이꺼이 울고 내가 괜찮은지 우리 팀장한테 물었다고 해. 참으로 의외였다. 
 
대표이사는 이번 일에 대해 밝히는 자리에서 본사에서 전례가 없이 강행하였다고 말하며 한 30초간 말을 잇지 못해 다른 사람이 발표를 대신 마무리해주었다고 한다. 이것 역시 의외였다. 
 
팀원을 잃은 많은 팀장들이 이번 일에 화를 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제일 오래 다닌 비싼 사람들부터 순서대로 잘려 나간 것 아니냐며 이건 모두의 미래 아니냐고 지금 웃고 있을 때냐며 상사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바로 저게 내가 항의한 거였다. 
 
모든 구성원에게 불이익 변경이 분명한 연봉 상한이 갑자기 도입되는데도 임직원 동의 절차 따위는 생략되었을 때, 그때 내가 인사팀을 찾아가서 항의한 내용이 바로 저거다. "결국 직원 모두가 연봉 상한에 도달하지 않나요? 반면 회사는 승진에 대한 그 어떤 로드맵도 제시해주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나는 이때 인건비 절감을 위한 칼질이 본격 시작되었음을 알았고 My days here are being numbered 라고 느꼈으며 다른 동료들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을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도무지 하하호호 할 기분이 아니어서 잡담을 그만두었다. 이번 레이오프가 단행되고서야 똑같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난 듯 하다. 
 

 
 
이번에 한국 지사에서 누군가가 나를 딱 집었기 때문에 잘린 줄 알았다. 
 
지난 1년간 팀장에게 본부장에게 인사팀에게 혼자 항의를 하고, 회사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이기에 2023년도 고과가 안 좋을 것임을 예고받았었고, 연봉은 상한에 도달했고 승진은 못 시켜 주겠고, 회사 행사에 나가지 않고 회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가 선택된 줄 알았어. 
 
그런데 동료 말에 의하면 한국 지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본사에서 직접 대상자를 고르고 강행한 레이오프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엑셀 필터에 걸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일했는지와는 아예 상관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천재지변을 당한 거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의외였고 좀 신기했다.
 
이런 얘기를 하던 도중 동료 휴대폰으로 팀장님 전화가 왔다. 설 인사차 전화 주신 거였는데 나도 전화를 바꿔 받았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희 차 마시고 있었어요. 호박씨 먹으면서요. 진짜 리터럴리 호박씨 까 먹으면서요."
 
그러니까 동료가 옆에서 웃었음 ㅋㅋㅋㅋㅋ 진짜 농담 아니고 우리 집에 호박씨 1kg을 사놨는데 차랑 같이 곁들여 먹으면 멈출 수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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