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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친구에게 해줄 법한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bravebird 2024. 2. 9. 20:50

나처럼 최근 레이오프를 당한 싱가포르의 W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본인이 직장을 잃었다면 딱 이 정도만, 직장을 잃은 친구에게 순수한 우의에서 해줄 법한 말 정도만 스스로에게 담백하게 말해줄 수 있어도 낙담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참고로 저기서 말한 시는 키플링의 If로 이전에 직장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무수히 여러 번 읽었다. 집에 걸어 놓고 싶은 시이다.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6473/if--- 

If— by Rudyard Kipling | Poetry Foundation

If you can keep your head when all about you

www.poetryfoundation.org

 
https://bravebird.tistory.com/535

키플링 시 If 오역을 알아냈다

가장 좋아하고 항상 가까이 두는 몇 안 되는 시 중에 러디야드 키플링의 If가 있다. Nas의 Made You Look이라는 곡 뮤직비디오 첫머리에서 처음 접한 후, 살면서 제일 억울하고 굴욕적이고 패잔병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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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상담을 가서든 친구를 만나서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사람들이 날더러 스스로에게 가혹하다고 할 때가 많았다.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스스로를 지지하고 옹호한다는 게 자기 자신에게 취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에게 좀 힘들게 굴었던 것 같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을 때 도리어 스스로를 비난하고 괴롭게 굴고 비현실적인 대상과 비교하게 되는 것 같아.
 
기존에 회사에서 어쩌다가 비난을 받는 경우에는 좀 억울하고 힘들더라도 100 중에서 1이라도 옳다면 일단 받아들이고 노오오오력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몰고 갔었다. 그건 변명하지 않는 건설적이고 용기 있는 태도이긴 했으나 스스로를 조금 피곤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위기를 극복해낸 후, 자신을 먼저 지켰어야 했었는데 하는 마음에 괴로워질 때도 있었다. 
 
작년 추석 무렵,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의견 피력은 다 해봤지만 바뀌는 것 하나 없이 고과만 나쁘게 나올 지경이 되어 더 이상은 못 다니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뛰어내리는 꿈도 꾸고 했던 것이 이 무렵이다. 또 코로나에도 세 번째 걸린 나머지 7일 정도 3평짜리 방에서 나가지 않고 추석 연휴를 보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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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가을

연휴 3일 전 코로나에 걸렸고 7일간 꼬박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다. 예약해둔 여행도 없고, 코로나 걸렸으니 친척 방문도 못하고, 아무 약속도 없고, 어디 갈 수가 없기에 거의 매인 것이 없는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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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때, 친구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인간된 도리로서 담백한 응원을 건네는 딱 그 만큼만 나 자신에게 해주면 그게 곧 나 자신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풀 방법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어서 한번 스스로에게 편지를 써보았다. 
 
오늘은 또 설연휴이고 회사도 끝났고 하니, 추석 때 뭐라고 편지를 썼는지 한번 읽어 보았다.
 
 

회사 옮긴다고 큰일나? 어차피 우연히 들어간 회사잖아. 회사는 월급 채굴장이지 인생의 목적은 결코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확고하잖아. 그리고 넌 평소에 장비가 낡으면 좋은 걸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야. 결국 도구 차이야 도구 차이. 회사도 도구인 이상 회사도 바꾸면 돼. 도구가 쓰다 보면 무뎌지고 닳아서 결국 바꿔야 하듯이 회사도 다니다 보면 질리고 실망해서 옮겨야 할 시간이 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회사를 옮기자.
 
지금 회사에서 어떤 걸 얻고 싶어? 얻을 게 더 남아 있어? 아마 당분간 이사해서 집에 구색도 갖추고 방송통신대 졸업도 하려면 회사는 그대로 다니는 게 아무래도 편리하지? 회사를 옮기면 또 새로 적응하느라 120% 에너지를 쏟아야 되고 살아남으려고 눈치도 엄청 봐야 되잖아. 지금 회사 다니는 동안에 본인 성장에 보탬이 되는 노력은 하되 승진은 너무 신경쓰지 마. 승진을 하더라도 다른 팀 하청업체처럼 일해야 하는 근본 구조 자체는 어차피 그대로잖아. 노력한다고 쉽게 바뀔 부분도 아니고. 윗사람들이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진작에 바뀌었겠지. 그리고 연봉은 굳이 지금 당장 안 올려도 돼. 천천히 가도 기회는 많아. 나중에 적당한 때 그냥 회사를 바꾸는 게 빠를 수도 있어.
 
그리고 어디 가든 모든 사람과 100% 잘 어울리고 갈등이 전혀 없고 매일 행복하고 고민이 전혀 없는 그런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좋은 사람들도 인간 관계에서 횡액 같은 일들을 겪어. 어린 나이에 인격이 다 자라지 않았을 때의 자잘한 미숙함이나 갈등, 회사 같은 이익 집단 안에서의 알력 다툼이나 정치 같은 것들은 마치 자연 현상 같은 거니까 자기를 너무 책망하지 않았으면 해. 넌 집단에서 갈등도 겪은 반면 좋은 친구들도 하나 이상씩 꼭 사귀었어. 개성이나 주관이 뚜렷한 편이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고 안 맞는 사람들은 안 맞는 성향인 거야. 너랑 반대로 물에 물탄 듯이 어디서나 조용조용 잘 맞추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또 고충이 있어.
 
여러 일을 겪고 회사가 너무 싫은 마음은 이해해. 사람 개개인과의 갈등과는 별개로 회사의 제도나 문화 자체가 문제일 때도 있지. 지금 회사는 가식적인 컬트집단 같잖아? 그러면 위에서 말했듯이 그냥 그만둬도 돼. 돈 벌 방법은 많아. 다만 회사랑 개인은 잘 구별해서 개인에게는 조금 더 너그럽게 하는 걸 연습해보자. 개개인은 결국 다 비슷한 처지야.
 
회사에 적응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 같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높게 평가하고 없어서는 안 될 직원으로 생각하고 친근하게 여겨야 적응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근데 그런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어. 겉보기에 적응을 아주 잘 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실제로는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더라고. 
 
회사에 적응한다는 것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을 뿐 아니라, 남들은 그걸 수월하게 달성하는 반면 자기는 해도해도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해. 그리고 너도 10년씩이나 휴직도 없이 큰 병치레도 없이 일상을 잘 이끌어 왔으면 나름대로 회사 생활에 적응을 잘 했다고 보는 게 맞아. 어차피 회사가 돈 버는 수단이라면 수단을 잘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면 돼. 회사에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같은 걸 실현할 것도 아닌데 무슨 종교 성인 같은 비현실적인 사람에 기준점을 둘 필요 없어.

 

 
작성 4개월여 만에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나 언젠가 또 어려움에 처할 때 다시 읽기 위해 남겨둔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남에게 도리상 응당 해줄 수 있는 말을 스스로에게 계속 들려 주자. 그럴 수만 있어도 그 사람은 쓸데없는 상념에 힘빼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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