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셋째날 본문
인터넷이 너무 불안정한 곳이라 다음날 아침 5시 40분에 쓴다. 셋째날은 7시 반~8시쯤 출발하여 오후 3시 되기 전에 어퍼 피상에 도착했다.
트레킹은 여전히 괜찮고 내가 너무 빨리 걷는 경향이 있어서 의식적으로 천천히 하려고 노력한다.
코로스 페이스 3. 저거 좋아 보여서 나도 갖고 싶다. 한참 걷고 나서 재봤는데 동행하는 어른들이 저 심박수나 스트레스 지수는 정상인이 가만 있다가 쟀을 때 나오는 거라고 본인들은 지금 심박수가 100이 넘어간다고 놀라워 하셨다.
난 평생 어떤 기준으로 봐도 잘 걸었다. 나랑 같이 등산을 하거나 걸어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신입사원 연수에서든, 등산 학교에서든, 다람살라에서 했던 트리운드 트렉에서든, 같이 등산을 간 친구든 아버지든, 부탄에서든 날더러 삐꺽 마른 것이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잘 걷는다고들 했다.
완력 같은 것이나 타고난 스포츠 센스 같은 것은 없지만 육상을 잘했으며 적게 먹고 적게 마시고 오래 버틴다. 일단 타고난 저체중에 심박이 느린 신체 조건이 기여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뭔가에 타고나게 재능이 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걷는 데는 조금 선천적인 게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진짜 고산 구간이라서 눈도 남아 있으니 길도 진창일 것 같고 해서 슬슬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나는 시간상 급할 것은 하나도 없고 육체적으로 몰아가며 시험에 들려는 것도 아니니 천천히 고산증 없이 잘 마무리하고 싶다. 이곳은 굉장히 아름다운데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우리 눈의 광각과 포커스를 카메라 따위가 따라올 순 없을 것이다.
이날 롯지 식당에서 어떤 분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온 분이었다. 자기는 영문학 교수인데 세계의 동물 목격담 같은 것을 수집하고 있다고 하셨다. 너무 깜짝 놀라서 저 그게 정확히 제 취미이고 영문학 전공인데요 그런 것도 영문학의 연구 범위인가요 하고 여쭤보니 ecocriticism이라는 분야에서 다룬다고 한다.
이 분과 한참 동안 얘길 나누면서 티베트 히말라야 문화권, 한국의 단군 신화(곰이 호랑이를 이긴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곰보다는 호랑이가 사람들 입에 훨씬 오르내리는 점), DMZ 이야기, 주로 전방의 군인들이 호랑잇과 동물을 목격하는 이야기, 호식총 이야기, 호랑이와 표범이 일제강점기 무렵 멸종된 이야기, 호랑이 전문 사냥꾼 이야기, 한자 중 코끼리 상象 자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한참 동안이나 내 얘기를 메모하셨다. 특히 일주일 후 타이베이에서 강연이 있는데 코끼리 상 자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고 중요해서 큰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象 자는 상형 문자이다. 원래 코끼리라는 즉자적인 의미 그 자체이다. 근데 이게 형상, 모양, 형태라는 추상적인 의미로 분화되었고 도상, 표상, 상상, 상징 같은 너무나 중요한 단어에 쓰인다. 왜 형상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하필 코끼리가 그 대표격으로 쓰일까? 옛날에 중국에 코끼리가 흔히 있다가 멸종하였나? 아니면 지구상 어디나 존재했을 듯한 매머드나 그 후손 같은 것을 고대 중국인들이 본 걸까? 아니면 인도와의 교류 때문일까? 어떤 이유에서건 코끼리가 중국인의 마음 속에서 너무나 크고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난 옛날부터 코끼리가 이런 의미로 쓰이는 게 너무나 궁금했는데 마침 이 분이 중국의 코끼리에 대해 얘길 하시길래 분명히 흥미롭게 여기실 것 같아 말씀 드리니 너무 신기해 하셨다. 이 분은 생태와 기후 관점에서 시 연구를 하시는데 생각해 보니 날씨 즉 기상이라는 단어도 气象이라고 해서 코끼리 상 자가 쓰인다. appearance of air. 이걸 보여 드리니 또 너무 재밌어 하셨다. 나야말로 동물에 대한 것을 문학에서 다룬다니 너무나 흥미로워서 이 분이 쓴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목격담 엄청 수집해 놨는데 informant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되어 드리고자 메일 주소를 교환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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