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넷째날 본문

여행/남아시아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넷째날

bravebird 2024. 3. 12. 23:14

비슷하게 7시 반쯤 시작하여 갸루를 거쳐 3시 무렵쯤 나왈에 도착했다. higher route를 택했으며 경치가 그 어느 날보다도 드라마틱했다.

현재기온 영하 4도 체감온도 영하 7도이며 해발고도 3660m이다. 천천히 걸었고 중간중간 많이 쉬었으며 아직 고산증 증세는 없었다. 별다른 약은 복용하지 않았다.



기압차 때문에 부풀어 오름




숙소 동네 엄청 높은 언덕에 불탑이 보여서 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가 봤는데 불탑 위에도 계단이 끝도 없었다.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지 궁금했으나 곧 어두워질 마당에 무리하면 고산병 올까봐 파드마삼바바 상을 보고 불탑을 보고 내려왔다. 알고 보니 계단은 다른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쉬지도 않고 올라가더라고 특전사냐고 하셔서 구르카 출신이에요^^* 라고 스웩 부렸음. 실제 구르카에게 인정받은 나의 산악인 자질!! 우리 일행의 가이드 중 두 사람이 구룽족, 마가르족인데 구르카를 구성하는 부족(구룽, 마가르, 라이, 림부족)에 속한다. 나머지 한 사람도 산악 민족인 네와르족이다.

고생해서 불탑까지 간 김에 기도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난 절이 보이면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 편인데 이 행위는 어릴 때 엄마 따라 절에 가서 하던 습관적 행위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엄마의 불교는 기복 신앙 그 자체였고 그건 엄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종교 자체가 그런 것 같다. 샤머니즘이 우리나라 대부분 종교 활동의 근간에 있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실 매우 인간적이고 본능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다만 도대체 나는 기도를 누구에게 하고 있는 것일까? 불상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면 불교를 믿는다고 할 수 있나? 부처가 과연 자신한테 기도한다는 걸 바라기나 했을까?

나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류 역사상 희대의 간지 폭풍맨을 철인으로서 존경한다. 그러니까 내가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스토아 철학을 읽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잘 읽었으며 가끔 좋은 글을 되새겨 읽거나 모범이 되는 사람들을 본받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 사실 싯다르타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각상 앞에서 바짝 엎드려 자신에게 기도 같은 걸 하는 걸 절대 바라지 않을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등불삼아서 쉼없이 정진하라고 한 사람이고 그걸 실천한 사람이잖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절이 가까이 보이면 굳이 찾아가서 삼배를 한다. 주로 여행길에서 그런다. 가장 친숙한 종교의 성소에서 잠깐 5분 정도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냥 잠시 시간을 빼서 몸을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부처 아님, 보살 아님, 신 아님) 앞에 겸허해지려는 것이다. 삼배를 하면서 오늘 하루를 무사히 즐겁게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는 생각을 세 번 하고 그 길로 돌아나온다. 소원은 가끔 비는데 내 개인적인 소원은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을 뿐더러 그다지 잘 빌지 않는다. 그때그때 딱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 역시 다른 이들에게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장소가 습관상 절일 뿐이다. 또 내가 불교 우세 지역을 주로 여행 다니다 보니 내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 중 불교인이 많기도 하고 흔히 보이는 것도 절이기 때문에 절에 가는 듯 하다. 네가 참 고마워서 네 생각을 하며 너의 모든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하면 모두들 좋아한다. 나의 기도는 진짜 단순한 그런 의미이다.

이런 게 불교 신앙이 맞을까? 부처가 가르치고자 한 바가 맞을까? 아닌 것 같지만 해서 나쁠 것은 없는 생각 및 행동이라고 보기에 그냥 한다. 난 불교 백그라운드가 있어서 습관적인 친숙함을 느낄 뿐이지 거의 무교에 가까운 것 같다.

나의 종교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절대자 같은 것을 믿고 그 가치체계를 온전히 따르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다만 석가모니는 너무나 간지폭풍맨이기에 기꺼이 그를 스승으로서 따를 수 있겠다는 그 정도 생각이다. 석가모니가 직접 저술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의 상당한 애독자였을 것 같다. 딱 그 정도이다. 불교의 진언을 외거나 어떤 의식을 따르는 것에도 관심이 적다. 한국 절에서도 그런 걸 많이 봤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게 다 좀 밀교적인 요소인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유일신에게 소원을 빌고 인격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고 구원을 받고 하는 그런 것은 나랑은 잘 맞지가 않다. 또한 불상을 만들어서 그 앞에서 어떤 양식으로 절을 하고 주문을 외고 49재를 지내고 이런 밀교적인 것은 문화의 표현 양식이라는 차원에서 호기심의 대상이긴 하나 실제로 내 신앙의 일환으로서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뭔가뭔가 잘 모르겠다. 다만 석가모니의 여정이 너무도 인간적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이 시대를 초월한 타당성이 있어서 그게 좋다. 종교보다는 사상으로서 좋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