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아홉째날 본문

여행/남아시아

네팔 안나푸르나 서킷 아홉째날

bravebird 2024. 3. 18. 01:43

현재 위치 무스탕 묵티나트. 서킷 종료.
현재 고도 3669m. 오늘 도달한 최고점 토롱라 패스는 5416m.
오전 5시 출발 오후 3시 반경 묵티나트 숙소 도착.
고산증 증세 없었음. 전원 무사.
일출 전의 눈밭이어서 손끝 발끝이 매우 추웠으며 옷을 있는 대로 껴입어서 동작이 둔했다. 장갑을 벗고 사진 찍을 엄두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하강할 때가 서킷 9일 전 일정 중에 가장 빡셌다. 올라가는 건 천천히 느릿느릿 가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반면, 오늘 내려갈 때는 옆은 절벽 같은 사면이고 온통 새하얀 눈길이라 미끄러지면 옆으로 굴러 내리거나 다른 사람들까지 다친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되어 골반까지 힘이 들어갔다.
오늘 3만보 넘게 걸었음.
동네 절과 구루 린포체 상 앞에서 무사 귀환에 대해 감사함.




지난 한 이틀간은 롯지 방에 화장실이 없거나 아니면 똥간만 있거나 하였고 물이 얼 듯 하여 세수며 양치조차 어려웠다. 샤워는 애당초부터 꿈을 꿀 수 없는 기온 및 인프라였다.
오늘 숙소는 드디어 뜨거운 물은 나왔으나.. 그리고 이제 내일이면 포카라로 돌아가니 샤워를 해도 되나.. 자세한 설명은 아래 짤로 대신한다.......



내가 전형적으로 손발이 차디찬 그런 몸이다. 추운 날씨에 옷 벗어야 되는 것, 샤워하고 나서 물이 기화하면서 잦같이 추워 뒤지겠는 그 상태를 도저히 참기가 힘들다. 난 땀은 없어서 차라리 안 씻고 만다. 비록 트렉은 종료됐지만 여기도 엄연히 3600m대의 고산지대라 적응 없이 단숨에 비행기 같은 걸로 오면 병날 수 있는 높이이고 아무 난방시설이 없어 뼈가 저리게 춥다. 여기 영하 5도 정도다. 어차피 몸은 씻더라도 옷은 여전히 먼지투성인데 그냥 꾹 참고 하루 안 씻고 말 것을 괜히 씻으려고 들었다가 욕만 나오고 마음이 엄청 꺾였다. 산에 9일간 올라가는 것보다 그 쑥과 마늘의 시간이 드디어 다 끝났는데도 아무런 훈기가 없는 냉방에서 샤워해야 했던 방금 전이 훨씬 더 끔찍했다. 우리나라는 콸콸 나오는 온수와 팽팽 돌아가는 난방과 전반적인 위생 수준이 진짜 전세계 탑티어급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미 너무 스포일드 됐다.

내가 살던 우리 가족 집도 화장실이 너무 추워서 도저히 겨울에 샤워를 못 하겠어서 나왔는데 자취방도 화장실이 너무 추웠다. 내 집에는 아예 휴젠뜨를 달아 버리고 오랜 고민을 해결했다. 나는 오늘 샤워 사건으로 진짜 집 생각과 태극기 펄럭 하는 생각만 나고 이 다음 이어질 인도 여행이 미친 짓 같고 괜히 좀 마음이 꺾인다.

내가 여행은 좋아해도 방랑 타입은 절대 아니고 정주민이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 여행을 일부러 찾아 하는 것도 절대 아니고 역덕인데 하필 이쪽 지역에 관심이 많아서 여행지 선택이 이렇게 되었다. 걍 나도 등따시고 배부른 여행이 하고 싶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놀려는 것일 뿐인데 걍 적당히 하고 세상 좋은 내 집에 가거나 아니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멀끔한 곳을 찾아내서 거기서 뻐기는 여행을 할까? ㅋㅋㅋ

이런 생각은 내일 포카라 가서 지금보다 조금 살만해지면 또 옅어지므로 지금 손가락이 뒤지게 시리지만 적어 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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