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요새
네팔 포카라 휴식 첫째날 본문
포카라 복귀 후 휴식 첫째날.
일찍 깨서 거의 한 달만에 유튜브란 걸 들었다. 출국하고 나서 뉴스나 유튜브 등을 본 적이 없다가 처음이었다.
느즈막히 나가 빨래를 맡기고 하이캠프 롯지에서 만났던 중국 팀을 만나 중국음식을 먹었다. 이번 서킷 트렉에서 하이캠프 롯지에는 중국인이 많았었고 난 그게 한 그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랑 연락이 닿은 팀은 남자1 여자1 구성이었다. 오늘 둘과 식사도 맛있게 하고 이야기를 매우 잘 나눴으나 이들이 내일 떠나는 룸비니 및 치트완에 합류하는 건 아래의 이유로 정중히 고사하였다.
남자분은 애 아빠인 걸 위챗 프로필에 당당하게 밝혀 놓았다. 음침한 구석은 없는 시원한 분이었다. 여자분은 연락처가 없어 프로필을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한참 재밌게 여행 얘길 했다. 둘은 윈난 다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해줬다. 일을 그만둔 중국 청년들이 오래 머무르면서 느긋한 생활을 즐기는 곳으로 윈난의 다리와 장시의 징더전 같은 곳들이 유명하다고 해서 나도 좀 궁금해졌다. 둘은 여행에서 만나서 몇 년째 이곳저곳 여행을 같이 다닌 친구라고 한다. 그럼 부부는 아니겠군. 사는 곳은 서로 베이징과 쓰촨으로 엄청 멀다.
룸비니 치트완에 나랑 같이 가잔 제안은 그 쪽에서 먼저 했다. 만약 둘이 부부나 연인이면 애초에 나한테 그런 제안 자체를 안 했을 것이다. 잘 모르지만 둘은 진짜 친구거나 내 기존 상식으로 뭐라 잘라말할 수 없는 관계일 것 같다. 둘의 일은 사실 내가 상관하거나 판단할 바가 아니긴 하다. 사파리이기 때문에 가이드 고용이 필요할 치트완에서 다같이 하루 이틀 정도 원만하게 잘 지낼 수만 있으면 둘이야 어떤 사이이든 사실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래도 뭔가뭔가 알 수가 없는 부분이 있으니 내가 끼기가 조심스러웠다.
결국 보다 보수적이고 자유로운 쪽을 택하여 혼자 다니기로, 여유를 부리며 다음 행선지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매우 매력적인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길거리를 다니면서 여행사 입간판을 들여다 보니 티베트 투어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곳이 꽤 있길래 세 군데쯤 들어가 보았다. 크게 두 가지 상품이 있었다.
1. 라싸, 시가체, 간체 등 : 7박 8일, 매주 토요일 출발
2. 카일라스 순례 : 9박 10일, 4월 27일이 첫 출발이며 주로 5~8월 사이 성수기라 격주 혹은 매주 출발
- 둘다 카트만두에서 육로로 월경. 카트만두에서 시작하여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종료하는 일정.
- 외국인도 중국비자 및 티베트 퍼밋 받는 데 문제 없음. 즉 한국까지 가서 중국비자 받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음. 단 티베트 여행을 위한 특별 비자이므로 그 비자로 중국 자유여행을 할 수는 없고 정해진 일정대로 카트만두에 복귀해야만 함.
- 가격은 한국에서 가는 것 대비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훨씬 저렴함. 중국이 인도와는 사이가 좋지 않고 네팔과는 관계가 좋으며 네팔의 각종 기반시설에 전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중국인은 네팔에 올 때 비자가 면제된다. 비슷하게, 네팔에서 티베트를 가는 것은 타국에서 가는 경우 대비 절차적으로 가격적으로 우대를 받으므로 훨씬 유리하다.
- 단 한국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서티베트 카일라스 상품은 일반적으로 구게 왕국 유적을 보는 일정도 포함돼 있는데 그런 내용까지 포함돼 있는지는 상세 일정 확인이 필요하다.
- 여행 대금은 카드로도 결제 가능. 현금만 받는 네팔에서 이 점 매우 마음에 든다.
이번 주중 1번 라싸 프로그램을 신청한 후 네팔 비자를 미리 연장해 두고 룸비니 - (치트완) 일정을 소화한 다음 카트만두로 가면 다음주 토요일에 당장 티베트로 떠날 수 있다. 여행 종료 후에는 카트만두로 복귀해서 항공편으로 인도 입국을 하면 된다. 인도 여행을 3개월 한 후에는 어차피 출국을 해야 하므로 그때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2번 카일라스 순례를 가면 가장 좋은 기후 조건에 서티베트 여행이 가능하다. 이후 인도에 재입국하여 파키스탄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귀국하면 된다 ㅋㅋㅋㅋ
대충 생각은 이렇게 해봤다. 1번 라싸 프로그램은 1~2일 내로 신청해야 된다. 2번 카일라스 프로그램은 여름쯤 생각해도 되고 출발 1개월 전쯤부터 온라인 예약도 가능하다.
오늘 들어간 한 여행사에서 사장님이 좀 바빠 보였다. 이따 다시 오면 커피 한잔 대접하면서 상세히 안내해 줄게요 하시길래 나도 다른 볼일을 먼저 보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되게 재밌는 캐릭터여서 좀 자세히 쓰자 ㅋㅋㅋㅋㅋㅋ
알고 보니 이 아저씨는 단순히 바빠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 나를 보고 호감을 느껴서 커피하러 오라고 한 거였다. 근데 매우 클리어하고 유머가 있는 태도였고 음침하거나 집착하는 구석이 없었기에 무해하였다. 아저씨가 완전 직진으로 비행기 태우는 멘트를 치고서 수줍어 하시길래 그 모습이 하도 웃겨서 난 껄껄 웃으며 에이~~~~~~ (장난치지 마세요)~~~~~~ 하는 느낌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저씨도 껄껄 웃었다. 이 분은 최소한 매우 솔직한 사람이구나 싶어 기분이 상하거나 위험을 느끼지 않았기에 얘길 계속 들어보았다 ㅋㅋㅋㅋㅋㅋ
들어보니 아저씨는 여행업 이외에 되게 진지하게 자선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네팔의 빈곤층 소년 소녀들을 후원하는 사업인데, 산악 가이드로 일하던 시절 산중에서 구출해 내어 현재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만 서너 명이었다. 아예 정부 인가를 받은 자선사업을 운영하면서 여행업과 연계시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본인이 16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교육의 혜택은 잘 받지 못했기에 이런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3년쯤 함께해온 아내의 부정을 발견하고는 이혼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자기 얘기까지 전부 솔직히 하면서 자선사업 웹사이트도 다 보여주고, 내가 물어본 여행 프로그램과 다른 추천 관광지 설명도 자세히 담백하게 해 주셨다. 호감 표시가 완전 직진인데 음침하지도 않고 집착도 없으니 무해하게 느껴져서 끝까지 얘기 잘 듣고 나왔다. 어차피 난 오늘 시간도 많았으니까. 아저씨의 태도로부터 아래 사실을 배웠다.
* 자기 감정과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clear on terms)
* 상대방에게 강요를 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고
* 익살과 여유가 있으면
* 그 사람은 음험한 협잡꾼은 아니므로
* 대체로 무해하기 때문에
* 인간 대 인간으로 얼마든지 공존 가능하다
물론 딴 집에서 동일한 상품을 여자 사장님이 더 좋은 가격으로 제시해 줘서 아마 거기서 예약하긴 할 듯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최소한 이 아저씨는 진짜 완전 이게 머고 싶은 직진을 하였고 내 타입도 아니지만 ㅋㅋㅋㅋㅋ 미운 구석이 없었고 오히려 윾쾌하였다. 하시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가치있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멋지고 재밌는 분이라고 느꼈다. 또 이 분이 룸비니 가는 길에 있는 팔파라는 곳이랑 위빠사나 명상을 진지하게 상세하게 추천해 주셔서 그런 것도 참 감사했다.
사진 없어서 아무 거나 첨부함. 서킷 마지막날 어디선가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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