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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만주족의 청제국》은 신청사(New Qing History) 분야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청조사 딱 펴면 제일 처음 나오는 개념이 팔기제라 수업 들으면 시험에도 지겹게 나왔지만 팔기 기인들 생활이 실제 어땠는지, 만주족 정체성이랑 왜 그렇게 밀접하다고 하는지는 몰라서 한번 읽어봤다. 저자 마크 엘리엇은 청조의 근간이었던 팔기제도(八旗制度)를 분석하여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한화이론에 도전한다. 또한 대청제국의 중국 지배에 있어 팔기제를 바탕으로 한 만주족 정체성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강조한다. 신청사 연구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1. 청조 내내 한인과 만주족 간에는 차별성이 유지됐다. 후기로 갈수록 만주족은 문화 변용을 겪기는 했으나 중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 2. 민족성에 대한 ..
홍타이지의 부인이자 순치제의 어머니, 강희제의 할머니인 효장태후(孝庄太后)는 중국사상 대표적인 여성 정치가이다. 지혜와 강단을 겸비한 여걸로, 자신이 직접 권력을 휘두르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황제 셋을 성실히 보필하여 신생 청조의 기틀을 다졌다. 본명은 보얼지지터 부무부타이(博尔济吉特·布木布泰)로 호르친 몽골 부족(科尔沁部) 태생이다. 호르친 부는 청조 초기부터 결혼 동맹을 통해 아이신 기오로 가문에 적극 협력했으며 북방 수비 역할을 담당했다. 효장태후(孝庄太后) 내몽골 자치구 초원 분포 - 호르친 초원의 위치 17세기 초 명말 시기의 후금과 호르친 부 위치. 오른쪽 아래 지도는 명 초기의 여진족 각부 분포. 헤이룽장강 근처 가장 추운 지역이 야인여진, 그 아래가 해서여진, 그 아래가 건주여진으로, 청조..
2014년 겨울에 모스크바 갔을 때 칼미키아 사람들을 몇 알게 되었다. 어떤 바에 1주일 간격으로 두 번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마주쳤던 한 그룹의 친구들이었다. 생긴 게 내 친구랑 너무 닮아서 고려인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칼미크족이란다. 와, 오이라트 후손 아니냐고, 너무 반갑다고 반색을 했더니 그 쪽에서 더 놀라고 반가워 했다.이 사람들은 한 무리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대여섯 명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덕분에 2015년에 다시 한번 모스크바를 갔을 때 또 만날 수 있었다. 이 중에 한 분이 몇 개월 전 내가 마침 핀란드 여행을 준비중일 때 만네르하임 사진을 올렸다. 중앙아시아 탐험 중에 찍은 오이라트인 사진들! 이 사진들을 다시 웹검색해서 러시아 블로그들을 찾아냈다. 원글 캡션에는 전부 칼미크인이라고..
이번에 토르구트 귀순비 드디어 목격!! 캬!! 2017. 9. 20. 수. 딱 1주일 됐다. 토르구트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꽤 자주 다뤘다. 토르구트는 오이라트(서몽골) 연맹을 이루던 한 부족이다. 강희제가 네르친스크 조약 및 3차례의 친정을 통해 정복하려 했고 십전노인 건륭제가 끝내 복속시킨 준가르가 오이라트 부족 중 제일 잘 알려져 있다. 나머지가 호쇼트, 데르베트, 토르구트다.오이라트는 신장의 준가르 분지를 중심으로 중국 서북부에 살았다. 티베트 불교를 믿고 티베트 내정과도 많이 얽혀 있었는데 특히 칭하이 성의 코코노르(칭하이 호) 주변에 살던 호쇼트가 그렇다. 호쇼트의 라짱 칸과 제5, 6대 달라이 라마, 제5대 달라이 라마의 섭정 상게 갸초, 그리고 강희제에 얽힌 이야기가 특히 어마어마하게 재밌..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1842)으로 동아시아의 전통적 조공체제는 막을 내리고 청은 근대 조약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청은 이전에 이미 러시아와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과 캬흐타 조약(1727)을 맺은 적이 있다. 강희 연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은 헤이룽장 국경을 확정하고 현지 주민의 관할권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옹정 연간의 캬흐타 조약은 러시아인들이 베이징 외에 캬흐타 등지에서도 국경무역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고, 베이징에 러시아 정교회 교당 건설을 허용했으며 할하(외몽골)와 시베리아 간 국경을 확정하는 내용이었다. 청은 왜 조공·책봉 체제의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러시아와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했을까? 바로 준가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오이..
아우구스투스 프레데릭 루돌프 회른레: 1821년 인도에서 태어남. 독일계 성공회 선교사의 아들. 런던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웠고, 당시 영국령 인도의 수도였던 캘커타에서 학문 연구. 인도 고문서 해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영국 편에서 고문서 수집 경쟁에 참여했다. 희대의 고문서 위조범인 이슬람 아훈에게 깜빡 속는 바람에 뻘논문까지 쓰게 되지만, 동료 학자들이 슬쩍 넘어가줌. 개이득~ (오렐 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클릭)바우어 고사본 일부. 위키피디아 펌. (이미지 클릭) 바우어: 인도 육군 정보부 장교. 스코틀랜드 탐험가인 앤드루 댈글라이쉬(Andrew Dalgleish)를 청부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수색하던 중, 굴람 카디르라는 현지인으로부터 51매의 자작나무 껍질로 된 문서를 사서 캘..
현재상황: 문 닫음 ㅡㅡ 만네르하임 박물관 금토일만 여는 거 확인하고 일요일에 오기로 계획 짰었는데 미친!!! 까먹음!! 중국 정부에서 갑자기 영공 통제를 해서 인천 출발이 7시간이나 지연됐다. 환승지 모스크바엔 자정에 도착해서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겨우 방을 배정받고는 새벽 쪽잠을 잤다. 일요일 오후에야 헬싱키를 도착했다. 짐 풀러 갈 시간도 없어서 중앙역 코인로커에 짐을 넣어놓고, 부랴부랴 가까운 곳부터 다니다가 금토일만 오픈인 걸 잊어버림. ㅡㅡ 헬싱키 재방문 각. ㅡㅡ 날씨도 좋은데 좀 빡친다. 트럼프 뻐큐 시진핑 뻐큐 으아아앜!!!!!!!!!!!!! 싸드의 나비효과가 왜 나에게 이런 식으로???!!??!!?????? 이게 다 박근혜 때문이야!!!!! 박물관 가는 길은 항구를 지나는 아름다운 길이..
만네르하임의 전 생애를 다룬 전기문 Mannerheim: President, Soldier, Spy. 이거 작년에 런던 Foyles 서점에서 보고 내년에 핀란드 가기 전에 읽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 내년이 겨우 2주 앞이네. 조너선 클레멘츠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까 《해적왕 정성공》 저자였다. 예전에 대만 가기 전에 봤었고 당시 대만에서 교환학생 중이었던 친한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정성공도 흥미롭지만 만네르하임도 만만찮게 재밌는데 번역본 나오면 좋겠다. 만네르하임은 러시아 제국의 대공국이었던 핀란드에서 1867년에 태어났다. 독일 혈통이 섞인 스웨덴계 핀란드 귀족 가문 출신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병 학교에서 공부하고 러시아 군대에서 복무한 후 핀란드 독립을 이끈 다면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겨울전쟁..
■ 장소 헬싱키 대학 - Orientalica Collection에 만네르하임 일기 원본과 중앙아시아에서 수집한 서적 소장. 만네르하임 박물관 - 임종 시까지 살았던 생가. 중국에서 가져온 물건들 소장. Museum of Cultures - 극동아시아 전시관에 만네르하임 아시아 컬렉션 소장. 다른 핀란드 탐험가들의 물건들도 있음. Hietaniemi 공동묘지 - 만네르하임이 묻혀 있음. National Archives of Finland - 만네르하임의 사적 기록 소장. National Board of Antiquities in Helsinki - 만네르하임의 아시아 사진 소장. 헬싱키 대학 도서관, National Board of Antiquities, National Archives of Finlan..
중국에는 투르크어를 말하면서 이슬람교가 아니라 티베트 불교를 믿는 민족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위구르족과 본래 한 계통으로 추정됩니다. 바로 간쑤성 쑤난 위구족 자치현에 거주하는 위구족(裕固族, Yugurs)입니다.1893년도에 러시아 탐험가인 그리고리 포타닌이 처음으로 위구어 단어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위구족의 행정 및 지리적 상황에 대한 간단한 노트를 곁들였습니다. 이후에 위구족 관련 민족지 조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한 첫 번째 사람이 만네르하임입니다. 만네르하임의 위구족 관련 보고서는 1911년에 피노-우그리안 소사이어티에서 발행되었습니다. 만네르하임에 의하면 위구족은 스스로를 Sarö Yögurs라고 부릅니다. 황색 위구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만네르하임 당시에도 이미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