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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프랑스 파리 기메박물관에 갔더니 문헌학자 펠리오의 둔황 막고굴 컬렉션은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알프레드 푸세, 조셉 하킨 같은 고고학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온 간다라 양식 조각상이 훨씬 많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천천히 조사를 해보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재미있길래 《간다라 미술》이라는 도해집을 빌려왔다. 1999년도에 예술의전당에서 파키스탄 정부의 후원을 받아 개최한 전시회의 도록이다. 도해집이라 기본적으로 사진이 많고, 앞에 붙어있는 이주형 교수의 소개글이 읽어볼 만하다. 그 내용을 간추리고 이미지를 추가해서 정리했다. 1.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간다라 미술을 이야기하려면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을 빼놓을 수 없다. 알렉산더 대왕은 지중해의 마케도니아에서 서아시아를 지나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
기메 박물관 중앙아시아 전시품은 생각보다는 많지 않았고 펠리오가 직접 가져온 것도 일부분이어서 조금 김이 빠진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잘 몰랐던 다른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날라온 것이 많이 있었다. 워낙 생소한 이름들이라 글을 쓰다가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알프레드 푸세(Alfred Foucher)는 프랑스의 유명한 불교미술 사학자였다. 푸세의 전문 연구 지역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카불, 젤랄라바드 인근이었지만 프랑스 정부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세운 그리스 식민 도시국가의 터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박트리아 지방(현재의 발흐)으로 푸세를 보내 버렸다. 이곳은 기후가 적당하지 않았으며 푸세 부부는 식수 오염으로 거의 죽을 위기까지 넘겼다고 한다. 푸세의 박트리아 조사는 대..
파리에 간 첫 번째 이유,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는 폴 펠리오가 둔황에서 가져온 문헌이 그득하다면, 이곳에는 유물이 모여 있다.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탔는데 도버 해협의 해저터널로 들어가는 순간에는 바보같이 실컷 잤다. 깨 보니 이미 파리 근처였고, 숙소에 짐을 두고 기메 박물관으로 가니 4시 무렵이었다. 기메 박물관은 리옹 출신의 실업가이자 동양 예술 애호가였던 에밀 기메가 설립했다. 인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의 많은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시아 외부에 있는 아시아 예술 박물관 중에서 최대 컬렉션을 자랑하는 곳 중 하나다. 1945년도에 이집트 예술품을 루브르로 넘겨주고 루브르로부터는 아시아 예술부에 있던 문화재를 넘겨받았다. 이곳 지하에는 아시아 고고학, 미..
올해 8월 중순 런던이랑 같이 갔던 파리에서는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가서 폴 펠리오(Paul Pelliot) 컬렉션을 볼 작정이었다. 기메 박물관에는 펠리오가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미술품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리슐리외관에는 고문서가 있다. 폴 펠리오는 프랑스의 걸출한 문헌학자인데 상당한 천재였다. 중국어를 모르고 한문을 못 읽었던 오렐 스타인과는 다르게 중국어 구어나 고전 한문이나 가릴 것 없이 끝내주게 잘했다. 탐험 직전의 막간 몇 주를 이용해서 위구르어를 익힐 정도로 언어감각이 탁월했고 아시아 고문헌에도 통달했던 젊은 학자였다. 펠리오가 둔황 막고굴 장경동에 처음 갔을 때 하도 중국어를 잘해서 문을 지키고 선 왕원록 도사를 아주 기가 질리도록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장경동에 ..
보려고 노리고 있던 전시인데 마지막 날에 드디어 사수했다. 작년에 러시아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틸리야 테페 발굴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적이 있는데, 오래지 않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해주길래 신기했다. 이 사리아니디의 아프가니스탄 박트리아 유적 발굴에 대해서는 《보물 추적자》라는 책의 첫 번째 챕터에 재밌게 잘 쓰여 있다. 참고로 두 번째 챕터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신장)과 둔황의 실크로드 유물을 가져간 열강 탐험가들 이야기다. 홀이 하나뿐인 크지 않은 전시실에서 열린 특별 전시였는데 볼거리는 풍부했다. 인터넷 사이트와 앱을 통한 무료 오디오가이드도 큰 도움이 됐다. 가장 봐둘 만한 건 틸리야 테페 고분군에서 나온 금관. 국사책에서 익히 봤던 신라나 가야 금관이랑 상당히 비슷하다. 둘 사이에 구..
만일 대영박물관의 서가에서 진실을 찾을 수 없다면 진실은 과연 어디 있겠느냐고 나는 공책과 연필을 집으며 자문했지요. (...) 회전문이 휙 열리자 거대한 둥근 천장 아래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나 자신이 마치 일단의 유명한 이름들로 화려하게 에워싸인 거대한 대머리 속에 들어간 한 가지 사소한 생각처럼 느껴졌습니다. 카운터에 가서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 도서 목록을 펼쳤지요. 그리고 . . . . . 이 다섯 개의 점은 망연자실하고 어리둥절했던 그 오 분을 각각 나타내는 겁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중에서 영국도서관에 들어섰을 때의 어안이 벙벙했던 느낌은 이 정도면 전해질까. 거대한 메인 홀의 중앙부 몇 층이 저렇게 장서로 가득차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영박물관 부속도서관과 다른 여러..
영국도서관 방문 전에 온라인 사전 등록을 하고 로그인하면 basket에 희망 자료를 담아둘 수 있다.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인 delivery time을 확인해서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미리 자료 요청을 해놓으면 그날 그곳에 직접 가서 볼 수 있다. 바스켓에는 옛날 책, 수기 문헌, 사진, 지도를 골고루 담아놓았다. 총 30종까지 담을 수 있는데 딱 그만큼 넣어놨다. 책은 중앙아시아를 탐험한 학자들의 여행기가 많은데, 한국에는 대학도서관에도 없는 것들이라 어떻게 생겼나 그냥 쓱 보려고 한다. pahar.in 사이트 들어가면 ebook 올라온 게 많아서 읽을 욕심까지 낼 필요는 없음. 저 중에 사진 자료는 사진 부서에 미리 메일을 보내서 문의했더니 월, 화요일 이틀 아침 3시간씩 프린트 룸에 와서 열람하라고..
이 정도로 준비가 빡셌던 휴가는 처음이라 매우 바쁘다. 런던 파리 2개 도시인데 방문 목적은 중국 유물 조사다 보니 (...) 사전에 조사할 분야가 세 가지임. 만날 사람도 유난히 많았고 이번 주는 특히 후배가 휴가를 가서 일도 바쁘네. 파리 조사는 포기. 그냥 가서 적당히 즐겨야지 (...) 하여튼 틈을 쪼개서 대영박물관 유물을 몇 점 골라서 신청했다. 오렐 스타일 컬렉션 상설전시가 있는 Hotung Gallery가 개보수 중이어서 2017년 11월에 재개관한다고 하니, 수장고에 처박혀 있는 놈들을 꺼내 보여달라 할 수밖에... pdf 신청서 양식을 채워서 Asia department에 메일을 미리 보내면 유물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지 심사를 거친 후에 Study Room 약속을 잡아 준다. 약속 한 ..
2세기-3세기에 타클라마칸 사막에 살았던 사람들도 우리랑 똑같다. 휴먼 네이처 :) 모두 대영박물관의 회른레(Hoernle) 컬렉션에 속하는 유물이다. 회른레는 19세기 후반에 활발하게 활동한 인도-아리아어 학자다. 수집가나 탐험가들이 신장 지역의 고문헌들을 모아다 회른레에게 보내면 열심히 해독을 했다고 한다. 오렐 스타인하고도 동시대 사람이고 일도 엮여서 같이 했다. 국제 둔황 프로젝트의 한국어 페이지에도 회른레 얘기가 간략히 나와 있다. 대영박물관 Hotung Gallery에 가면 오렐 스타인이 둔황과 신장 여러 곳에서 약탈해온 유물이 상설전시돼 있다. 그런데 2017년 11월까지 개보수 공사 때문에 폐쇄됐다. 대신 Study Room에서 개별 열람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약속 한 세션당 유물 다섯 ..
로프 노르 호수에 처음 간 서양인은 프르제발스키도, 헤딘도 아니었다. 훨씬 앞에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Johan Gustaf Renat, 1682-1744)라는 스웨덴 사람이 있었다. 한국과 스웨덴 간의 실크로드 관련 교류사에 대해서 읽다가 이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이름 같았다. 이 이야기가 나올 만한 책이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밖에 없는 것 같아서 색인을 펼쳐보니 역시 그랬다.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는 그 유명한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전쟁 때 카를 12세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1709년 폴타바 전투 때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 토볼스크로 압송된 후 시베리아 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1716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다른 포로들과 함께 금을 찾아나서는 탐사단에 참가했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