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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이번에 토르구트 귀순비 드디어 목격!! 캬!! 2017. 9. 20. 수. 딱 1주일 됐다. 토르구트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꽤 자주 다뤘다. 토르구트는 오이라트(서몽골) 연맹을 이루던 한 부족이다. 강희제가 네르친스크 조약 및 3차례의 친정을 통해 정복하려 했고 십전노인 건륭제가 끝내 복속시킨 준가르가 오이라트 부족 중 제일 잘 알려져 있다. 나머지가 호쇼트, 데르베트, 토르구트다.오이라트는 신장의 준가르 분지를 중심으로 중국 서북부에 살았다. 티베트 불교를 믿고 티베트 내정과도 많이 얽혀 있었는데 특히 칭하이 성의 코코노르(칭하이 호) 주변에 살던 호쇼트가 그렇다. 호쇼트의 라짱 칸과 제5, 6대 달라이 라마, 제5대 달라이 라마의 섭정 상게 갸초, 그리고 강희제에 얽힌 이야기가 특히 어마어마하게 재밌..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난징조약(1842)으로 동아시아의 전통적 조공체제는 막을 내리고 청은 근대 조약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청은 이전에 이미 러시아와 호혜·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네르친스크 조약(1689)과 캬흐타 조약(1727)을 맺은 적이 있다. 강희 연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은 헤이룽장 국경을 확정하고 현지 주민의 관할권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옹정 연간의 캬흐타 조약은 러시아인들이 베이징 외에 캬흐타 등지에서도 국경무역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고, 베이징에 러시아 정교회 교당 건설을 허용했으며 할하(외몽골)와 시베리아 간 국경을 확정하는 내용이었다. 청은 왜 조공·책봉 체제의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러시아와 대등한 입장에서 조약을 체결했을까? 바로 준가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오이..
로프 노르 호수에 처음 간 서양인은 프르제발스키도, 헤딘도 아니었다. 훨씬 앞에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Johan Gustaf Renat, 1682-1744)라는 스웨덴 사람이 있었다. 한국과 스웨덴 간의 실크로드 관련 교류사에 대해서 읽다가 이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본 이름 같았다. 이 이야기가 나올 만한 책이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밖에 없는 것 같아서 색인을 펼쳐보니 역시 그랬다.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는 그 유명한 스웨덴과 러시아의 대북방전쟁 때 카를 12세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1709년 폴타바 전투 때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 토볼스크로 압송된 후 시베리아 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1716년에는 스웨덴 출신의 다른 포로들과 함께 금을 찾아나서는 탐사단에 참가했다가 ..
러시아 연방 소속의 칼미키아 공화국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가끔 국제토픽에 나오고는 해요. 이곳 공화국 수반이 체스 매니아이자 국제 체스연맹 대표로 유명하답니다. 그래서 수도 엘리스타에는 체스에 관한 상징물이 많아요. 학교 수업 시간에도 체스를 배울 정도이지요. 그렇지만 칼미키아는 무엇보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불교, 그 중에서도 티베트 불교를 믿는 독특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서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칼미키아인은 서몽골 오이라트에 속합니다. 스스로를 오이라트인이라고 칭해요. 몽골도 여러 부족이 있는데 그 중 서쪽 사람들인 셈이에요. 현재의 몽골 공화국과 중국의 내몽고 자치구는 동몽골에 속했습니다. 이 동몽골을 할하 몽골이라 하고, 이것이 할하와 차하르로 나뉘어졌어요. 현재 외몽골이 주로 할하부, ..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아옥석지모탕구도 (阿玉錫持矛蕩寇圖, 아유시가 창을 들고 적을 소탕하다) 아주 오랫동안 랩탑 바탕화면이었고 언제든 다시 바탕화면으로 걸어놓고 싶은 그림. 심지어 사이즈도 딱 맞음. 그림의 모든 부분에 역동성이 가득하다. 말은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것 같고, 기다란 창은 곧장 앞으로 내다꽂힐 것 같다. 차분한 단순함 속에 더없는 생동감이 깃들어 있다. 청조 건륭연간 제일가는 궁정 화가였던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의 작품. 칼미크 출신 아유시(한자로 음역한 것이 바로 아옥석)가 병사들을 이끌고 준가르 수령 다와치를 생포하자, 건륭제가 그 공적을 기려 카스틸리오네에게 초상을 그리게 한 것이 바로 이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오이라트 준가르라 하면 갈단, 아무르사나, 다와치 이야기 다 흥미진진 그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