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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표트르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가 중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제일 유명하다. 프르제발스키가 발탁한 제자이자 동행이었다. 심지어 둘은 비밀 연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프르제발스키 전기에 등장할 만큼 각별한 관계였다. 프르제발스키는 평소에 자기 부하가 결혼을 하면 실연당한 것처럼 질투하고 슬퍼하며 결혼을 매우 막았다고 한다. 덕분에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을 많이 받는다. 여하튼 코즐로프는 프르제발스키 사후에도 독자적인 탐험 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고비 사막의 버려진 도시 카라 호토(흑수성)를 발굴해 내어 서하 왕조(1038–1227)의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카라 호토는 서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서하는 티베트·강족 계통의 탕구트인이 북중국 고비 사막에 세운 국가다..
1888년에 프르제발스키의 5차 탐험대는 카라콜 이식 쿨 근처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프르제발스키가 갑자기 사망했다. 탐험대는 이듬해 봄에 출발했다. 지리학회는 새로운 탐험대장으로 미하일 페브초브를 선임했다. 미하일 페브초프 준가르 사막에서페브초프를 탐험대장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의 중앙아시아 탐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프르제발스키처럼 그 역시 군인이었으며 합동군사참모대학을 졸업했고 어렸을 때부터 탐험을 꿈꿨다. 기분 좋은 행운이 젊은 대장을 도왔다. 1876년에 그는 자이산에서 중국 신장 치타이 현으로 가는 카라반을 지키는 카자크 100명을 이끌어줄 것을 제안받았다. 그 길은 준가르 사막의 스텝 지역에 있었는데, 페브초프는 정확한 좌표가 표시된 이 지역 상세 지도를 최초 제..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거의 20년간 중앙아시아의 산, 스텝, 사막을 조사했다. 중앙아시아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프르제발스키 이전까지는 유럽인들 중 그 누구도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다. (역자주: 사실 스웨덴 사람인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가 1700년대 초반에 이미 준가르에 볼모로 잡혀서 로프 노르 인근에 간 적이 있다. 태그 누르면 이전글 확인 가능.) 네 번의 탐험 동안 프르제발스키는 말 위에서, 그리고 도보로 3만km 이상을 소화해 냈다. 세묘노프의 추천 프르제발스키는 군인이었다. 어렸을 때는 보병 연대에 복무했지만 탐험을 꿈꿨다. 1861년에 합동군사참모대학에 입학하여 첫 번째 지리학 저작인 《아무르 지방의 군사통계학적 개설》을 썼다. 이 저술 작업을 하면서 프르제발스키는 도서관에서 찾을 수..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전기 The Dream of Lhasa: The Life of Nikolay Przhevalsky를 읽고 있다. 왜 번역본 없냐고, 내가 번역해도 되냐고 그랬던 바로 그 책을 킨들 덕분에 읽고 있다. (2015/11/14 - [중점추진사업/유라시아사] -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흔적) 좋은 세상이다. 근데 어려워서 번역은 도저히 못하겠엌ㅋㅋㅋㅋㅋ 읽기도 벅참ㅋㅋㅋㅋㅋ 어느덧 챕터 7에 다다라 프르제발스키의 라싸 탐험이 티베트 측의 반대로 좌초된 후의 내용을 읽고 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에도 황제 암살이라는 큰 난리가 났는데, 이 상황과 청-러시아 국경분쟁의 중요 페이지가 맞물려 들어가기에 기록을 해 놓으려고 한다.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을 여러 차례..
올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는 중앙아시아 탐험가들의 흔적을 더 찾아보는 게 목표 중 하나였다. 그 타겟 중 하나가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는 1839년에 태어나 1888년에 사망한 러시아의 군인이자 탐험가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근데 서양인 탐험가 중 하나다. 시베리아, 몽골 및 고비사막, 티베트 고원, 암도 티베트(현재의 칭하이 지역), 준가르 분지의 천산 유역, 북중국 등 광활한 지역을 폭넓게 어행하였으나, 본인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티베트 라싸에는 아쉽게도 닿지 못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프르제발스키의 탐험 중에 마침 회족 무슬림 반란이 일어났다. 둥간 반란(Dungan Revolt)이라고도 알려져있는 매우 유명한 사건으로, 신장 지역의 회족 무슬림들이 코칸드 칸국의 칸인..
휴가 어디 갈지 고민하던 중 스톡홀름에 실크로드 관련 박물관이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검색하다가 우연히 찾은 읽을거리, Fraternity on the Silk Road: The Relationship of Aurel Stein and Sven Hedin. 오렐 스타인의 약탈품이 고스란히 방치돼 있다는 대영박물관에서 만든 자료인 것 같다. https://www.britishmuseum.org/pdf/9-Morin%20pp.pdf로 가면 원문을 바로 볼 수 있다. 스벤 헤딘은 스웨덴 출신의 탐험가로 신장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비롯하여 티베트 등지를 탐험하고, 특히 사막을 떠돌아다니는 소금호수 로프 노르 인근의 누란 왕국 고적을 발견한 최초의 서양인이다. 오렐 스타인은 헝가리 고고학자로, 스벤 헤딘의 선행 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