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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본토주의의 두 갈래

bravebird 2019. 9. 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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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입법회 선거, 행정장관 선거 시리즈에서 홍콩 본토주의 내지 자결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 부분만을 따로 상세하게 다루지는 못했고, 관련글을 따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습니다. 특히 6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송환법 반대 시위는 그 양상이 마치 한국의 1980년대 시민운동을 연상시킬 만큼 활발하고 격렬합니다. 이러한 시위 양상과 홍콩 본토주의는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2016/09/13 - 2016년도 홍콩 입법회 선거 이야기 (3)

2017/03/20 - 2017년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이야기 (1)

2017/03/27 - 2017년도 홍콩 행정장관 선거 이야기 (2)

 

저는 기존 글에서 홍콩 본토주의를 '고유한 로컬 문화나 주요 명소를 지켜내려는' 움직임이라고 정의했었습니다. 자결파에 대해서는 항인치항 지지, 본토문화 수호, 홍콩 독립 등을 기치로 하며 우산혁명을 주도하였으며 2016년도 입법회 선거 때 약진한 청년 정치 세력이라고 정의했었습니다. '본토주의'와 '자결파'라는 두 가지 용어를 사용했지만 실제로 그 둘은 '본토주의'라는 하나의 이름 하에 불리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이 다릅니다.

 

'홍콩 본토주의'라는 개념 안에는 매우 상반되는 두 가지 정치적 입장이 상존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는 진보적 본토주의가 있습니다. 이들과 관계 깊은 키워드로는 로컬 문화, 공동체 재건, 생활문화, 향수, 문화유산, 집단기억, 민주적 도시계획, 토지정의, 재개발 및 젠트리피케이션 반대, 환경 보전, 도시에 대한 권리, 시민의식, 참여 민주주의, 비폭력 등이 있습니다. 부동산 값이 금값인 홍콩에서 거대 자본에 의해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도시 개발을 반대하고, 홍콩의 평범한 일상 생활문화와 문화유산을 보전하자는 움직임입니다. 

 

홍콩 정부는 2000년대 중반쯤 스타 페리 부두와 퀸즈 부두 철거를 주도했는데요, 여기 반대하고 나서서 홍콩의 집단 기억과 문화 유산을 보존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진보적 본토주의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본토행동(Local Action)이라는 단체가 이런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2016년 입법회 선거 당시 가장 많은 득표를 했으며 토지정의연맹(Land Justice League)에서 활동하는 에디 추 역시 이러한 진보적 본토주의 진영에 속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로는 반중국적 본토주의가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임산부나 중국 관광객 및 신이민을 메뚜기라고 부르며 적극 배척하고, 홍콩인의 배타적 이권을 주장합니다. 홍콩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경쟁이 극심한데, '중국 메뚜기'들이 쳐들어와서 가뜩이나 모자란 홍콩의 자원을 약탈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들은 홍콩 내부의 과두 자본이라든지 계급 모순보다는 중국-홍콩의 갈등을 홍콩의 가장 주요한 문제로 여기며 이민자 배척 행태를 보이므로 우익 파시즘의 성격이 강합니다. 2016년 입법위원 취임 선서에서 People's Refucking of Chee-na를 외치고 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야우와이칭을 떠올리시면 되겠습니다.

 

2014년 우산혁명이 실패하자 평화적 운동에 대한 불만과 무력감 속에서 홍콩의 자결, 심지어 무장 혁명을 통한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반중국적 본토주의가 급성장했습니다. 이들은 친중국 성향의 건제파(Pro-establishment)에 반대할 뿐 아니라, 온건한 방식을 통해 홍콩 자치를 지켜 내려는 기존 범민주파(Pan-democrats)에도 반대하며, 이들을 모두 싸잡아서 좌익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는 건제파나 범민주파 모두 사회 불평등을 문제삼는 좌익과는 거리가 멉니다. 친중국 성향의 건제파조차도 중국의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기보다는 중국의 거대 자본과 긴밀히 결탁한 주류 세력입니다.

 

홍콩에서는 이처럼 좌익과 우익의 구도도 독특합니다. 홍콩 반환 이전의 좌익은 친 공산당, 사회주의, 친중국, 애국, 반제국 반식민주의를 표방했습니다. 당시 공산당 지지자는 좌익, 국민당 지지자는 우익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기존의 친중국 좌익 세력은 주류 사회에 편입됐습니다. 현재 홍콩의 메인스트림 정치판에서는 본래 이념에 충실한 좌익, 즉 계급 모순을 강조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세력이 딱히 없습니다. 정치 지형 전체를 통틀어 중국-홍콩 간의 갈등이 주된 이슈인 반면,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은 철저히 주변화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몇 주간 여러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습니다.

- Antony Dapiran, City of Protest: A Recent History of Dissent in Hong Kong

- 장정아, '본토'라는 유령 - 토착주의를 넘어선 홍콩 정체성의 가능성

- 장정아, '이 폐허를 응시하라' - 홍콩 우산혁명과 그 이후의 갈등이 드러낸 것

- 장정아, 빈민가에서 문화유산의 거리로: 홍콩 삼쉬포지역 사례를 통해 본 도시권

- 류영하, 세계체제와 탈식민 - 본토 홍콩의 정치경제학

- 배리 사우트먼·옌하이룽·연광석, 홍콩 본토파와 '메뚜기론' : 신세기의 우익 포퓰리즘

- Barry Sautman and Yan Hairong, Localists and "Locusts" in Hong Kong: Creating a Yellow-Red Peril Discourse

- Ying-ho Kwong, The Growth of "Localism" in Hong Kong - A New Path for the Democracy Movement?

- Che-po Chan, Post-Umbrella Movement: Localism and Radicalness of the Hong Kong Student Movement

- Yun-chung Chen & Mirana M. Szeto, The forgotten road of progressive localism: New Preservation Movement in Hong Kong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글을 쓰는 게 몹시 어려웠고 남은 과제가 많습니다.

- 중국과 홍콩의 경우에 좌익과 우익,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헷갈린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이 개념들이 어렵습니다. 대체 좌익/우익이란 뭐고 진보/보수란 뭘까요?

- 1967년도의 홍콩 반영 폭동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아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 파시즘에 대해서 더 알아볼 필요도 느꼈습니다. 이민자 배척은 홍콩 뿐 아니라 미국, 유럽, 심지어 한국에서도 이슈입니다.

- 파시즘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리고 홍콩에서 좌익이라는 단어가 텅 비어버린 현상 때문에 이전에 많이 생각해보곤 했던 우크라이나와 크림 사태, 그리고 아이러니란 개념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연결지어서 뭔가 써낼 만큼의 내공은 아직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15/01/10 - 2014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가 - 우크라이나 및 크림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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