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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모스크바 붉은광장과 대조국전쟁 박물관에서 찍은 기마상 사진들. 카메라 잃어버린 줄 알았다가 운좋게 되찾은 덕분에 보전할 수 있었다. 다음 번에 갈 땐 상트페테르부르크 기마상들도 찍어 올 거다. 주코프 원수님 제가 꼭 돌아올 거라는 약속 지켰죠? 다음 번에도 모기처럼 열심히 사진 찍어갈 테니 기대하세요. 대조국전쟁(독소전쟁) 박물관의 오벨리스크를 지키고 있는 성 게오르기의 매력은 이번에 새로 발견. 꼭 다시 찾아서 성가시게 해드리겠어요!
찬란한 날이었다. 한국에서 사간 사냥꾼 모자를 쓰고 나갔다. 카페 싱어에서 아침을 먹고 겨울 궁전을 지나 다리를 건너 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갔다. 가는 길에 눈 내린 풍경이 멋져서 또 엄청나게 프로필 사진용 셀카를 찍었다. 사실 러시아에서 사냥꾼 모자 쓰고 사진 찍는 게 오랜 꿈이었어서 원없이 그렇게 했다. 유빙이 떠다니는 네바 강은 어제 봤지만 그 다음날 봐도 아름다웠다. 또 엄청난 시간을 네바 강과 하늘 바라보는 데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쿤스트카메라에 도착했다. 쿤스트카메라에서는 동양학 연구의 일환으로 탐험대를 파견하는 것 같았다. 내가 관심 있는 중국령 투르키스탄(신장)에도 비교적 최근에 탐험대를 파견해서 이런저런 사진 찍어 왔고 이런저런 볼거리도 마련해 놓았다. 예전에 에르미타주 갔을 때 중앙아..
아침에 빈둥거리다가 느즈막히 숙소를 나와 카페 싱어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운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저번에 왔을 때 안 와봤는데 듣던 대로 카잔 성당 전경이 끝내주게 펼쳐지는 최적의 장소였다. 밥을 먹고서는 피의 성당 뒷편에 있는 길로 가서 마블 팰리스를 지나 다리를 건너갔다. 아래는 가는 길에 찍은 피의 성당. 다리를 건너고서는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 바로 근처에 도착했다. 아래는 눈 내리는 날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풍경. 이렇게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인 줄 몰랐네. 저번에 왔을 때는 지도를 구비해 와도 지리를 잘 모르고 거리 감각이 없으니까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었다. 이번에는 거리 감각도 생기고 길도 더 잘 알게 되었으니까 다음 번에 한번 더 오면 익숙하게 걸어서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예전에 묵었던 카잔스카야 거리에서 숙소는 다른 곳에 묵게 되었는데, 호스텔은 저번처럼 아파트 한 칸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이었다. 저번처럼 찾아 들어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몰라서 일단 초인종을 눌렀더니 누군가가 러시아어로 뭐라고 하더니 마지못해 문을 열어줬다. 일단 단지 안에 들어갔는데도 어디 있는지 잘 못 찾겠어서 한참 헤맸다. 물어물어 호스텔이 있다는 현관에 들어갔는데도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현관에서 도와달라고 짜증 섞어 소리치고 말았다. 그랬더니 내 짜증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흐트러지지 않은 차분한 인상의 남자가 하나 내려와서 짐 옮기는 걸 도와주고 호스텔로 안내해 줬다. 이름은 스타니슬랍. 차분하고 평온한 사람 앞에 서니 바로 홧기가..
정신 차리고 제시간에 약속에 나갔다. 흐린 날씨였는데 주코프 동상이 회색 톤으로 더 근사하게 보였다. 매우 흡족한 사진들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오늘의 행선지는 대조국전쟁 박물관과 러시아 현대사 박물관. 대조국전쟁 박물관이 있는 파크 포베디로 가서 건물 앞 오벨리스크와 성 게오르기 동상 사진을 실컷 찍었다. 기마상을 아주 좋아하는데 오늘따라 멋진 사진들이 잘 나와줘서 기뻤다. 대조국전쟁 박물관은 참 컸다. 각개 전투별로 디오라마도 잘 꾸며져 있고 볼거리가 많은데, 너무 많아서 트래픽에 무리가 왔다. 좀 피곤했다. 현대사 박물관이 있는 트베르스카야 거리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가는 길에 알렉산드르 아저씨에게 크림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봤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크림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인다..
새벽까지 논 덕분에 정통으로 약속에 늦었다 -_- 9시 반까지 붉은광장 주코프 동상 앞에서 알렉산드르 아저씨 만나기로 했었는데 거의 1시간 넘게 지각하여 송구스러웠다. 서브웨이 샌드위치 먹고 나서 고리키 집, 알렉세이 톨스토이 집, 츠베타예바 집, 체호프가 의사로 일하면서 살던 곳, 레르몬토프 생가, Patriarch's 연못과 거기 있는 키릴로프 우화 기념비들을 죽 돌아봤다. 우화 내용을 조각해놓았는데, 거대한 코끼리를 쳐다보면서 계속 캉캉 짖어대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우리 부서의 한 상사가 생각났다. 짖지 않으면 남들 앞에 약해 보이는 줄 알고 계속 쓸데없이 벽 보고 짖는 그 분. 알렉산드르 아저씨에게도 이미 메일로 얘기해준 적이 있는 사람이라 같이 떠올리며 엄청 웃었다. 저녁에는 아르바트 거리의..
벨로루스키 역에 도착해서 저번처럼 지하철 타는 곳을 못 찾고 헤맸다. 두리번거리던 중에 누가 한국말로 말을 걸기에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니 웬 러시아 아저씨였다. 한국에서 20년 산 분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하셨다. 이름은 블라디미르. 슬라브 계열 성씨가 아닌 것 같은데 배경이 조금 궁금하다. 친해지면 여쭤 봐야겠다. 지하철 표도 하나 사 주시고, 숙소가 있는 키타이 고로드 지하철역까지 짧은 길이지만 동행이 되어 주셨다. 내리기 전에 이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도착해서는 쿠즈네츠키 모스트의 어느 바에서 열리는 카우치서핑 모임에 나갔다. 러시아에 코가 꿰이는 바람에 이제 자주 드나들 것 같으니까 현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출발 전날밤 급히 가입한 카우치서핑. 떠들썩한..
일리야 레핀, 1901년 5월 7일 국가의회 100주년 기념 국가평의회 크게 보기 레핀의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구도의 드라마틱함 측면에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과 함께 최고가 아닐까 싶다. 화폭 안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는데도 당장에 니콜라이 2세에게로 시선이 가 꽂힌다. 황제가 가운데에 있지 않은데도 눈이 그리로 간다. 내가 결코 한 그림 오래 살펴보는 눈썰미 있는 사람이 아닌데도 그랬다. 러시아 박물관 가면 한 전시실의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데, 내가 마치 저 안의 조그만 한 부분이 된 것처럼 실내를 가득 장악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미술에 문외한인데다가 러시아 화가 하면 샤갈이랑 칸딘스키밖에 모르고 내 취향도 아니어서 전혀 기대 않고 갔던 게 러시아 박물관..
니콜라이 레릭, Guru Guri Dhar 여름에 모스크바 여행 갔을 때 놓쳤으면 정말 후회했을 뻔한 레릭 박물관. 고골 박물관에서 헤매면서 알렉산드르 아저씨와 인연이 닿지 않았더라면 레릭 박물관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아저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델리에서 힌디어와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하고 인도에서 15년 간 생활했던 인도어학자로, 현재 모스크바 소재 레릭 박물관에 근무하고 있다. 상상해온 전형적인 러시아인이었다. (회청색 눈동자가 유난히 깊고 진지하고 차분하며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속이야기를 아끼지 않는) 레릭은 영미권에서는 주로 Nicholas Roerich으로 알려져 있고 히말라야 설산과 생각에 잠긴 수도사를 많이 그렸다. 레릭이 사용하는 푸른색과 히말라야의 부드러운 질감을 사랑한다. 이번에 돌아..
자서전의 백미라는 찬사가 딱 어울리는 책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 어린 시절과 관심사와 정치적 신념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뛰어난 지성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로 낮은 곳에 임하고자 하는 고상한 인격이, 문장 문장마다 찻잎 우리듯 은근히 배어나온다. 2010년에 타인의 고통과 동정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집착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읽은 손유경 선생님의 《고통과 동정》이라는 책에서 크로포트킨과 상호부조론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름 모스크바 여행 때 크로포트킨스카야 역에 자주 출몰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젠 직접 크로포트킨 저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자마자 빌린 책. 읽다 보니 니힐리즘에 대해 언급이 나온다. 인습, 권위주의, 전제정치, 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