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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1. 나는 여행할 때를 제외하면 일기를 쓰지 않는다. 여행 중 일기를 쓸 때면 귀찮아서 악필이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 것도 귀찮아 한다. 이미 지난 일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보다는 앞날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둘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다. 이미 지나간 것을 너무 성실하고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굉장히 피로하고 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 자체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지만 지난 일에 대한 성찰과 응용은 또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일기를 쓰기보단 산책하거나 대화하면서 하는 걸 선호하며, '이번엔 이랬으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겠다'처럼 과거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둔다. 2. 물론 여행기를 안 쓰면 휘발되는 기억이 있어 아쉽긴 하지만 잊힐 것은 잊히고 남을 것..

인도는 당신의 계획을 보란듯이 망쳐놓는 예측불가능성의 끝판왕인 동시에, 가지가지 삼천포를 함께 제공하는 치명적 매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계획은커녕 상상조차 못한 일들이 벌어질 때 본인의 문제 해결력을 시험해볼 수 있고, 사전 계획이 불가능한 삼천포에 제대로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뉴델리에서 다람살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가 한번 취소됐습니다. 여행 시간을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이른 아침 항공편을 예매하는 꾀를 부렸다가 오히려 망한 거죠. 인도는 절대 호락호락하지가 않은 녀석인데 제가 컨트롤하려 했던 것이 건방졌나 봅니다. ㅎㅎㅎ 새벽 3시에 그 무서운 빠하르간즈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에 도착한 후에야 결항이 된 걸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겨울 북인도에선 운무로 인한..

북인도 여행 16박 17일 무사고 생존 팁을 공개합니다. 여자 혼자 인도 여행 간다고 타박(?ㅋㅋ)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 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준비하고 유의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물갈이나 사기 등을 겪지 않고 무사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 여행이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구상 어떤 곳에서든 유의해야 할 점들을 준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대비하고 제대로 대응하면 리스크 헤징이 상당 부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운수가 따랐기 때문에 별 일 없었던 거지만, 제가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제대로 해내려고 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0. 거지꼴로 감 - 짐과 현금을 적게 들고 ..

원래 블로그에 예방접종 같은 여행 사전 준비나 짐 싸기 같은 건 쓰지 않았다. 다른 곳에 양질의 정보가 넘치기 때문에. 이번은 예외다. 이제까지의 여행 중 가장 난이도 있는 축에 들고 특수사항이 있기 때문에 짐을 어떻게 쌌고 무얼 대비했는지 좀 기록을 남겨두려고 한다. 1. 일단 출발 약 2주 전인 12/2에 A형간염 주사, 장티푸스 주사 맞음. A형간염은 올해 초에 유행할 때 1차접종을 했는데 마침 7개월 정도 지난 터라 정확히 2차접종 시기였음. 보통 저것들은 보건소에 가야 맞을 수 있는데, 회사에서 가까운 강남하나로의료재단 가서 둘다 맞음. 장티푸스 예방주사는 현지 도착 2주쯤 전에 맞아둬야 효력이 있고 3년간 유효. A형 간염은 6개월 텀을 두고 2번 맞아야 되는 주사라 임박해서 맞는 건 그저 자..

인도 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여자 혼자 위험하다, 가기 전에 꼭 마지막 인사하고 가라 (ㅋㅋㅋ), 거기를 왜 돈을 주고 가냐, 너 좀 특이하다, 무슨 일 있냐, 실연 당했냐, 류시화 책 읽고 혹해서 가냐, 깨달음 얻으러 가냐, 그러게, 왜 하필 인도일까? 류시화 때문도 아니고, 깨달음 얻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뭔가 성스러움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 면전에서는 너무 개인적이고 진지해서, 그리고 굳이 모두를 설득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ㅋㅋㅋ) 하지 않는 얘기를 여기 해본다. 스스로의 '동기'는 한번 점검해보면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니까. 왜 하필 인도인가? 0. 그냥. 무슨 이유가 필요한지. 아래는 모두 사족임. 1. 그 자체만으로 대륙 스케일인 커다란 나라, 다민족 ..

결국 12/19 ~ 1/4 인도를 가기로 했다. 일정 관련해서는 뉴델리 인아웃 항공편, 공항 픽업, 뉴델리 2박 이것만 결정해 놓고 나머지는 미정이다. 플랜A가 하필 날씨 운이 따라줘야 하는 데라 계속 일기예보 보고 빌면서 백업플랜 아웃라인만 잡아놨다. 임박하면 날씨를 봐서 플랜ABC 중 골라잡은 다음, 교통편이나 숙소는 그때그때 해치울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출발이 일주일도 남지 않으니 마치 번지점프 다이빙대에 올라선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두렵고 번거로운 건 도시 간 이동인데 그게 하나도 준비가 안 됐기 때문. 기차/버스표 예매앱을 가입해서 표 좀 살펴보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입인증 SMS가 안 왔다. 아 이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인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인가 ㅋㅋㅋ ..
도박의 동기 - 운명적 상황에서 성격을 창조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 기술을 발휘하고 존경을 얻기 위해서 - 이기고 대가를 얻기 위해서 - 게임 그 자체, 참여와 경험 그 자체를 위해서 -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이 선택받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상업화의 과정에서 딜러들은 점차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정된 승률이 제공하는, 보다 예측 가능하고 보다 안전한 수익에 의존하게 됐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게임을 사람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업 세력-도박장-은 승리가 보장되는 기발한 변화를 꾀했다. 그들은 게임에 참가하는 대신, 게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자신들에게 패배를 강요했던 바로 그 법칙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확률 등식 안에 넣음으로써 뒤에 가만히 앉아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들에게..

두 사람 사이에 갈등관계가 존재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갈등관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풀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까? 먼저 움직이면 우선 상대방에게 무어라고 말할지 준비할 수 있고, 상대방의 예상되는 반응에 대하여 다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화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협상력이나 힘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p.168) 요즘 게임이론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본 협상과 전략》이라는 책을 읽다가 평소 생각과 정말 비슷한 내용이 있어 가져왔다. 나는 상식과는 다르게, 고백을 받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 갑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지루함을 내색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개인이 자기 느낌을 위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네가 어떤 입장인지는 알게 된다.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상황의 실상을 알려주는 피드백 신호를 차단하는 셈이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몰입 시늉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나치게 잘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의무도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루했던 상대가 진심을 담아 작별인사나 호감 표현을 하면 지루해 했던 사람은 자신이 몰입하지 못했음을 내색하지 않고 몰입한 척 시늉만 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삶에서 가장 뼈아프고 치명적인 순간은 바로 개인이 최상의 수완을..

친구들아 만나서 얘기해보자. 편히 썼다. 1. 네 명의 논객 중 누구 의견에 가장 가까운가? 나는 스티븐 프라이 쪽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프라이는 온건 좌파, 말랑말랑한 자유주의자, 의심하는 반체제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또 동성 결혼한 게이이며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PC의 스타일(설교, 독선, 아집)은 비판하며 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리버럴한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편이지만, PC 방식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이다. 아직도 인종 차별이나 성별 간 불평등, 섹슈얼리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이런 것들이 점차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PC는 단어 싸움 같다.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실제 존재하는 사회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