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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참여관찰과 기능주의로 얻은 '원시법'의 이해) 1. 호혜성과 전시성의 원리 말리노프스키 이전의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 사회의 법체계에는 금기 위반을 제재하는 형법만이 존재한다. 말리노프스키는 이를 본격 반박했다. 그는 트로브리앤드 군도에서 본격적인 참여관찰을 수행한 결과, 원주민 사회에도 서구의 민법에 해당하는 유연하고도 구속력 있는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 의무는 호혜성(reciprocity)과 전시성(publicity)이라는 적극적 원리에 지배받는다. 쉽게 말해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그 티를 팍팍 내서 자신의 체면과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원리다. 물론 원시 사회에도 터부, 금지 등의 부정적이고 소극적 성격을 띠는 형법이 존재..
1. IS가 이라크에서 처음 나타난 이유 이라크전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수니파)이 무너지고 누리 알 말리키 정권(시아파)으로 교체되었다. 알 말리키 정권은 부패지수가 높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수니파를 탄압하는 한편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알 말리키 정권에 배척당한 후세인 잔당이 IS 지도부로 합류하였다. 후세인 시기 집권당인 바트당은 범아랍권 통일, 아랍사회주의 및 반서구 반식민의 기치를 내건 집단으로 IS와 기본 성향이 비슷하다. 요약: 알 말리키 정권의 무능과 종파 갈등 2. 미국 중동 정책의 명분과 결과 * 1990-91 걸프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명분: 이라크의 부당한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UN 집단안보 행사 결과: 미국의 중동 석유시장 헤게모니 장악, 사우디 친미화 * ..
최근에 처음 기항한 어느 항구의 대리점에다가 하역 작업을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다음 기항지의 선적 기일을 맞추라고 각처에서 독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대리점은 갖은 노력을 해서 사전 작업을 훌륭하게 해놓았고 밤을 새가며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 놓았다. 그런데 막상 하역비 인보이스를 받아서 상사에게 보였더니 할인을 받아야겠다며 돈을 보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일을 재촉한 입장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있는데, 이제 와서 후려치기식 할인을 요구하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게다가 협상에서 괜히 우위를 내어줄까 봐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사표시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손익을 생각하는 사측 의견을 앞세우며 대리점의 노고를 의도치 않게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항구에서 오..
하늘은 행복이란 자리를 대신해서 일상의 생활을 우리에게 내려 보내셨어. 예브게니 오네긴을 오페라로 처음 봤을 때 이 부분에서 눈물 그렁그렁 맺혔다... 엄청나게 장대한 순간을 포착하는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달리, 일상을 담담히 살아 나가는 여자의 이야기라 더더욱 깊이 울렸음. 뭐든 익숙해지니 안정감은 있지만 지겨워 죽겠다... 행복을 느끼는 마음의 근육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음. 평범한 일상을 담담히 밀고 나가는 꾸준한 사람들이 제일 존경스러운 요즘이다. ~_~ 마무리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졸업 축사 "이것은 물이다" 마지막 부분.
서역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은 마치 줄줄이 알사탕 같은 것이었다. 굳이 작정하고 찾아다닌 것이 아닌데도 가는 곳마다 실크로드가 딸려왔던 지난 6년이었다. 나는 2011년 9월부터 2012년 7월까지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호기심에 들은 위구르어 입문 수업이 계기가 되어 베이징에서 48시간 입석 기차를 타고 우루무치로 떠나게 되었다. 그 겨울은 통째로 우루무치, 투루판, 하미, 란저우, 자위관, 둔황, 인촨, 간난 티베트자치주, 시안 같은 실크로드 지역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눈앞에 아무 것도 막아서는 게 없는 광막한 사막이 있었다. 건조한 기후에 다리살은 갈라지고, 주먹만한 양꼬치를 먹다 보면 고기가 쐐기처럼 앞니에 끼곤 했다. 하루 종일 꼬박 사막길을 걸으면 다음날 골반 전체가 얼얼..
맹자가 말했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리오? 그러나 화살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무당이나 장의사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술을 선택할 적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 맹자가 말했다. "백이는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벗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벗하지 않았으며,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지 않았고,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고 악한 사람과 말하는 것을 마치 조복[관복]과 조관[관모]을 갖춘 채 도탄에 빠져 있는 것처럼 여겼다. 악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미루어보건대, 비루한 사람과 있을 때 그 사람의 갓이 바르지 않으면 ..
바야돌리드 논쟁 (Valladolid Debate)은 매우 흥미로운 논쟁으로 유럽사 최초의 인권 재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도 인간인지, 유럽인이 인디오의 삶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쟁론이다. 1550-1551 사이의 대항해시대에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후안 세뿔베다(Juan Ginés de Sepúlveda)와 바르톨로메 라스 까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사이의 경합이었다. 세뿔베다는 인디오를 야만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서구인들이 무력 개입을 해서 카톨릭을 전파하고 미개한 관습을 끝장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라스 까사스는 인디오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폭력과 악행이 아닌 설득과 가르침으로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스파냐..
이코노미스트 러시아 관련 기사는 정말 읽을 게 못 된다. (A hollow superpower 참조) 나는 러시아 문화를 사랑한다. 러시아 빠라고 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동시에 푸틴의 독재를 우려한다. 그렇지만 국제뉴스를 읽을 때는 러시아 문화에 대한 호감이나 평소의 도덕적 신념을 뒷전으로 밀어두고 정치역학의 작용 그 자체를 관찰하려 한다. 물리학에서 힘의 작용을 연구하듯이. 그렇게 기름기를 제거하고 본 현실정치란 헤게모니를 획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각종 기술이다. 푸틴은 이 정치에 능하다. 그것도 상당히. 러시아는 작년 9월 30일부터 이란과 모의해서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0월 말, IS 테러로 러시아 여객기가 폭격당했다. 덕분에 IS 격퇴를 명분으로 걸 수 있었다. 서방사회와 발맞춰 ..
내용이 꽤 쏠쏠하여 저장해 둔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지만 글자가 조금 작은 편이다.
예브게니야 선생님 드리려고 산 도블라토프의 Наши. 물론 liontamer님의 매력적인 독서록 덕분에 읽었던 재미난 책. 감사 멘트는 노어가 부족해서 매우 무뚝뚝하지만 선생님은 행간을 읽으셨을 것이야 ㅋㅋㅋ 아, 다샤(Даша)는 베이징 시절 러시아 친구였던 알렉세이네 가족들이 지어준 노어 이름이다. 모스크바 마야코프스키 박물관 바로 옆의 biblioglobus에서 득템한 스파르타쿠스 전곡반. 볼쇼이 오케스트라 1974년 녹음 버전. 내 귀에 익숙한 속도보다 느리게 연주가 되어 즐겨듣지는 않았지만, 전곡반 자체가 워낙 드문 레퍼토리라 건질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 이것 말고 프로코피예프 Ivan the Terrible도 샀지만 아직 못 들어봤다... 한 2011년까지만 해도 cd를 언제나 들었는데 이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