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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사적 소유·국가의 기원》 0. 기본 개념 사적 유물론 -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생산 관계의 변천이 역사 발전을 좌우한다 루이스 헨리 모건 《고대사회》의 친족체계론 1. 사회 단계 - 야만(barbarism): 자연 산물을 획득. 인간 생산물은 획득을 위한 보조 도구 - 미개(savage): 목축·농경. 인간 활동을 통해 자연 산물의 생산을 증대 - 문명(civilization): 공업과 기술을 통해 자연 산물을 가공 2. 가족제도의 역사적 변천 (1) 군혼 무규율적 성교. 짝짓기 대상에 제한이 없다. 아버지는 불명확하나 어머니는 명확하다. 모계만 인정되는 모권제 사회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도 나오는 초야권은 바로 이 군혼의 잔재다. (2) 혈연 가족 선후대 간..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미개 사회의 범죄와 관습》(참여관찰과 기능주의로 얻은 '원시법'의 이해) 1. 호혜성과 전시성의 원리 말리노프스키 이전의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원주민 사회의 법체계에는 금기 위반을 제재하는 형법만이 존재한다. 말리노프스키는 이를 본격 반박했다. 그는 트로브리앤드 군도에서 본격적인 참여관찰을 수행한 결과, 원주민 사회에도 서구의 민법에 해당하는 유연하고도 구속력 있는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였다. 이 의무는 호혜성(reciprocity)과 전시성(publicity)이라는 적극적 원리에 지배받는다. 쉽게 말해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그 티를 팍팍 내서 자신의 체면과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원리다. 물론 원시 사회에도 터부, 금지 등의 부정적이고 소극적 성격을 띠는 형법이 존재..
1. IS가 이라크에서 처음 나타난 이유 이라크전 이후 사담 후세인 정권(수니파)이 무너지고 누리 알 말리키 정권(시아파)으로 교체되었다. 알 말리키 정권은 부패지수가 높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수니파를 탄압하는 한편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알 말리키 정권에 배척당한 후세인 잔당이 IS 지도부로 합류하였다. 후세인 시기 집권당인 바트당은 범아랍권 통일, 아랍사회주의 및 반서구 반식민의 기치를 내건 집단으로 IS와 기본 성향이 비슷하다. 요약: 알 말리키 정권의 무능과 종파 갈등 2. 미국 중동 정책의 명분과 결과 * 1990-91 걸프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명분: 이라크의 부당한 쿠웨이트 침략에 대한 UN 집단안보 행사 결과: 미국의 중동 석유시장 헤게모니 장악, 사우디 친미화 * ..
최근에 처음 기항한 어느 항구의 대리점에다가 하역 작업을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다음 기항지의 선적 기일을 맞추라고 각처에서 독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대리점은 갖은 노력을 해서 사전 작업을 훌륭하게 해놓았고 밤을 새가며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 놓았다. 그런데 막상 하역비 인보이스를 받아서 상사에게 보였더니 할인을 받아야겠다며 돈을 보내주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일을 재촉한 입장으로서 고마운 마음이 있는데, 이제 와서 후려치기식 할인을 요구하자니 마음이 안 좋았다. 게다가 협상에서 괜히 우위를 내어줄까 봐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사표시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손익을 생각하는 사측 의견을 앞세우며 대리점의 노고를 의도치 않게 깎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항구에서 오..
맹자가 말했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리오? 그러나 화살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행여 사람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한다. 무당이나 장의사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기술을 선택할 적에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 맹자가 말했다. "백이는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벗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벗하지 않았으며,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지 않았고, 악한 사람과 더불어 말하지 않았다. 악한 사람의 조정에 서고 악한 사람과 말하는 것을 마치 조복[관복]과 조관[관모]을 갖춘 채 도탄에 빠져 있는 것처럼 여겼다. 악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미루어보건대, 비루한 사람과 있을 때 그 사람의 갓이 바르지 않으면 ..
바야돌리드 논쟁 (Valladolid Debate)은 매우 흥미로운 논쟁으로 유럽사 최초의 인권 재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도 인간인지, 유럽인이 인디오의 삶에 개입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쟁론이다. 1550-1551 사이의 대항해시대에 에스파냐의 바야돌리드에서 실제 벌어졌던 사건이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후안 세뿔베다(Juan Ginés de Sepúlveda)와 바르톨로메 라스 까사스(Bartolomé de las Casas) 사이의 경합이었다. 세뿔베다는 인디오를 야만인으로 보았다. 그래서 서구인들이 무력 개입을 해서 카톨릭을 전파하고 미개한 관습을 끝장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라스 까사스는 인디오도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폭력과 악행이 아닌 설득과 가르침으로 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스파냐..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에 대한 연구서. 지배받는 지배자란, 문화영역을 지배하지만 그 권위의 원천을 미국 학위에서 찾는 한국인 미국 유학파 지식인들의 이중적 지위를 뜻한다. 읽으면서 대학시절 선생님들과 내 가지 않은 길을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모두가 한복을 버리고 청바지나 양복을 입고, 공자 맹자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익숙한 현대 한국인에게 도대체 한국적이란 건 뭘까 하는 호기심이 주전공 선택의 작은 계기가 됐다. 탈식민주의 관련 영문과 수업을 한번 들었는데 흥미롭길래 영문학 복수전공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난 고등학교 때 홍콩영화 팬이었다. 반환 이전의 영화를 보면 저당잡힌 미래에 대한 페이소스, 이민 나가는 엑소더스 행렬, 세기말의 허무주의 같은 것들..
제9장: 메이지 초기의 대외관계와 청일전쟁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의 직접적 계기는 조선의 동학농민전쟁 발발이었다. 조선 정부는 동학전쟁 진압을 위해 청에 원군을 요청했는데, 일본은 톈진조약의 동시출병 조항을 근거로 즉시 파병하여 조선을 군사적으로 장악하였다. 이어서 청의 북양함대를 완전히 궤멸시키는 등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점한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점령하기에 이르자 청은 직예총독이자 북양대신인 이홍장으로 하여금 대일 회담에 임하게 한다. 이 협상 결과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는데, 이는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이었다. 우선 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이는 전통적인 동아시아 조공질서의 와해를 의미하는 동시에 일본의 대조선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청은..
제5장: 통일정권의 수립과 위로부터의 근대화 메이지유신 직후 번사 출신 도막파 인사들에 의해 중앙집권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도막파가 주도한 신정부는 1871년 폐번치현을 강행하여 정치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이와 동시에 도막파 공경이나 다이묘들이 점차 정부 요직에서 배제되고 사쓰마, 조슈 출신의 번사들이 권력을 독점했다. 1873년 정한논쟁 이후에 성립된 오오쿠보 도시미치 정권은 그 정점에 있었다. 유신 직후 도막파와 공의정체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도막파의 중심인 사쓰마와 조슈는 막부 폐지에 그치지 않고 도쿠가와가의 세력을 대폭 축소하여 신정부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반면 삼직회의의 다수를 장악한 토사, 에치젠, 오와리, 아키의 공의정체파는 쇼군을 포함한 웅번연합정체를 지지했으며 도쿠가와 가문과 번..
제3장: 하급무사에서 '지사'로 사쓰마와 조슈 등 웅번의 하급 무사들은 존왕양이 및 도막운동 노선을 형성함으로써 점차적으로 번정부를 장악하였다. 이처럼 도쿠가와 체제의 주변부에 속했던 하급 무사는 어떻게 새로운 정치체제 구축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는가? 존왕양이론은 도쿠가와 후기 미토번에서 성장한 존왕론의 영향을 받아 쇄국체제의 유지를 주장하는 사상이었다. 특히 1858년 이이 나오스케의 통상조약 체결에 대해 코오메이 천황과 미토번주인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강하게 반발한 것을 계기로 막부비판 논리로 자리잡았다. 교토에서는 천황과 양이파 공경들이 막부를 비판했으며, 다이묘 중에는 히토츠바시파 인사들이 항의했다. 지방에서는 조슈번과 미토번이 양이론을 번의 공식입장으로 채택했다. 일부 무사 중에서도 조슈번의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