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독서 (73)
독수리 요새
도박의 동기 - 운명적 상황에서 성격을 창조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 기술을 발휘하고 존경을 얻기 위해서 - 이기고 대가를 얻기 위해서 - 게임 그 자체, 참여와 경험 그 자체를 위해서 -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이 선택받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상업화의 과정에서 딜러들은 점차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정된 승률이 제공하는, 보다 예측 가능하고 보다 안전한 수익에 의존하게 됐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게임을 사람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업 세력-도박장-은 승리가 보장되는 기발한 변화를 꾀했다. 그들은 게임에 참가하는 대신, 게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자신들에게 패배를 강요했던 바로 그 법칙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확률 등식 안에 넣음으로써 뒤에 가만히 앉아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들에게..
두 사람 사이에 갈등관계가 존재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갈등관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풀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까? 먼저 움직이면 우선 상대방에게 무어라고 말할지 준비할 수 있고, 상대방의 예상되는 반응에 대하여 다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화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협상력이나 힘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p.168) 요즘 게임이론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본 협상과 전략》이라는 책을 읽다가 평소 생각과 정말 비슷한 내용이 있어 가져왔다. 나는 상식과는 다르게, 고백을 받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 갑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지루함을 내색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개인이 자기 느낌을 위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네가 어떤 입장인지는 알게 된다.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상황의 실상을 알려주는 피드백 신호를 차단하는 셈이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몰입 시늉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나치게 잘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의무도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루했던 상대가 진심을 담아 작별인사나 호감 표현을 하면 지루해 했던 사람은 자신이 몰입하지 못했음을 내색하지 않고 몰입한 척 시늉만 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삶에서 가장 뼈아프고 치명적인 순간은 바로 개인이 최상의 수완을..
친구들아 만나서 얘기해보자. 편히 썼다. 1. 네 명의 논객 중 누구 의견에 가장 가까운가? 나는 스티븐 프라이 쪽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프라이는 온건 좌파, 말랑말랑한 자유주의자, 의심하는 반체제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또 동성 결혼한 게이이며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PC의 스타일(설교, 독선, 아집)은 비판하며 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리버럴한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편이지만, PC 방식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이다. 아직도 인종 차별이나 성별 간 불평등, 섹슈얼리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이런 것들이 점차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PC는 단어 싸움 같다.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실제 존재하는 사회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
내가 페미니즘에 매우 실망하고 거리를 두게 되면서 집에 여성주의 관련 책이 별로 안 남아있는데 잘 읽은 몇 권은 남겨두었다. 그 중 '오빠는 필요없다'라는 책이 있는데 2011년에 중국 가기 전에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나는 진보든 보수든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고 성찰을 할 줄 몰라서 자기 입장만 우기는 꼴통 꼰대가 싫다.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남자 꼰대가 싫어서였고 최근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낀 것은 페미니스트 꼰대가 싫어서인데, 이 책은 다양한 꼰대 중에서도 운동권 꼰대를 까는 책이다. 진보 진영의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에 환멸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페미니즘을 평소 싫어했더라도 의외로 ..
이것도 친구들이랑 같이 읽었다. 이번 모임은 내 집으로 초대를 했다. 빚으로 빌린집임 ㅋㅋㅋㅋㅋㅋ 가계부채의 급증이 경제위기의 징후라는 얘기는 흔히 들어보았다. 그게 어째서 그런지 총수요 중심의 입장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현 대출제도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하는 책이다. 서민들은 자산 대부분이 주택에 묶여 있고 자산의 대부분을 빚을 내어 형성했다. 빚 많은 서민 가계는 한계소비성향도 높다. 빚이 있을수록, 집값이 떨어질수록 소비를 드라마틱하게 줄여버린다. 밤은 깊어가는데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듯이 집값이 폭락해도 채무 액수는 고정돼 있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서 빚 갚으려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빚 내서 독립해 나오면서 허리띠를 졸랐다. (근데 슬픈 것은 그다지 졸라지지가 않는다 대체 여기서 뭘 더 줄임?..
살다보니 물리 단행본을 다 읽네. 친구들이랑 이번에 같이 읽었는데 철학학회다운 책 선정이었다. 과학서로 분류되지만 철학서에 가까웠다. 물리는 꽤 좋아하는 과목이긴 했었다. 물화생지 중에 물리가 제일 나았고, 고3때도 대학에서도 물리를 수강했다(만 거의 까먹었다). 물리가 그나마 괜찮았던 이유는 비교적 적은 개념과 공식으로 많은 현상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학생 입장에서 말하자면 뻑뻑 외울 것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생물이랑 지구과학은 암기 위주여서 그다지 흥미를 못 붙였고, 화학은 재밌었지만 화학반응 식을 외워야 되는 게 번거로웠다. 반면 물리는 지금까지도 비교적 여러 개념이라든지 공식이 기억난다. (그 수준은 일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순명쾌한 원리. 예전엔 물리가 그런 것을 다루는 것 같아서 꽤 ..
위대한 개츠비는 읽을 때마다 마음이 어지럽다. 아무리 애써도 처음 몇 장 이후로 넘어가질 않아서 무수히 실패했었다.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수업을 듣기까지 했다. 두 번을 읽어도 도통 페이퍼가 안 써지더라. 열심히 했는데도 그 학기에 그 수업만 안 좋은 학점을 받았다. 아 난 문학을 전공했으면 안 되었다;; ㅋㅋㅋ 문학 페이퍼 쓰는 거는 처음이 신선했지 그 후부터는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런 건 가끔의 취미로 남기고 딱딱 떨어지는 테크니컬한 걸 전공했어야 하는데 ㅋㅋㅋ 그런 거야말로 대학 졸업하고 나면 못 하는 거잖아 ㅋㅋㅋ 내세에는 수학과 물리에 매진하여 이과를 가는 걸로..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이번에 어떤 기회가 있어서 오랜만에 읽..
데이트의 탄생 - 자본주의적 연애제도. 이것은 심히 의표를 찌르는 제목이다. 미국의 근현대 데이트 변천사를 써내린 '역사책'이다. 출간 무렵부터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렸는데 오래 잊고 있다가 드디어 발견해서 바로 빌려 읽었다. 데이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행위 같으면서도 코드이자 제도이고 패러다임이다. 이 책에서 미국의 경우를 보면 1910년 이전에는 구애자 남성이 여자 집을 방문하는 만남이 정석이었다. 손님을 맞는 쪽인 여자가 초대를 통해서 관계를 주도했고, 초대받지 않고 찾아온 구애자 남성의 미래는 암울했다. 초대와 방문을 둘러싼 수많은 의례(적당한 시간 간격, 다과 준비 여부, 보호인 동반 여부, 대화 주제, 적절한 방문 시간, 복장, 제스처 등)가 있었고 이걸 우아하고 능숙하게 준수해야 짝..
12월 시작한 독서모임친구모임 첫 책. 정치 전공한 친구가 제안했지만 군주론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1년에 한 번 꼭 읽는다. 마키아벨리는 천재다. 로마 카톨릭이 주름잡고 있던 시기에 별 보잘것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인간의 악함을 이야기하고 군주의 술수를 권하는 책을 군주한테 바친 과감함을 존경한다. 인간은 선하고 성스럽기도 하지만 영악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다. 모두가 경건한 척 하기 바빴던 시대에 인간의 영악함을 현실정치 운영에 참고시키는 이 대담함! 이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태도 자체도 높이 사지만,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내용이 전혀 퇴색되지 않아서 더 놀랍다.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