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독서 (71)
독수리 요새
일요일에 회사 행사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읽고 싶어 빌린 책. 시오노 나나미 책은 처음인데 듣던 대로 필력은 그럭저럭. 하지만 인상 깊은 부분 몇을 좀 들추어내 본다. 어떤 사람을 스타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1.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경제상태 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2. 윤리, 상식 등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독자적이고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3. 궁상스럽지 않을 것. 4.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간성에 부드러운 눈을 돌릴 수 있는 사람. 5. 멋있는 사람. (pp.17-18) 정직함이 바탕이 된 자신감이 있는 사람. 편견이 적어서 품이 넓은 사람. 가치있는 것을 위해 후하게 베풀고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 유머와 기지로 어려움을 타개해나가는 사람. ..
굉장히 흥미로운 입문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중학교 체육시간에 발레 배울 때 치를 떨었으며, 발레 기본 동작도 하나도 모르고, 발레의 명작 중 명작이라는 백조의 호수는 보다 쿨쿨 잤을 정도니 문외한 중의 문외한이지만 몇 가지 오래된 궁금증이 있어서 빌려본 책인데 대만족이다. 몇 년 전 미국에 놀러갔을 때 취미발레 배우는 친구 따라 댄스스쿨에 가본 적이 있다. 남자가 거의 없는 그곳에서 굉장히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튀튀 입은 흑인 남자. 딱 봐도 아 동성애자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발레하는 남자는 왜 그렇게 드물며 만약 있으면 게이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많을까? 발레는 왜 여성의 전유물처럼 됐을까? 게다가 발레는 엄격한 체격조건과 외모와 흰 피부색, 그리고 많은 경우에 젊음과 가혹한 신체조정을 요구..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다이어리 다음으로 읽어본 러시아 기행문. 재미있게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인 카잔차키스가 썼다. 벤야민이 당시 사랑에 빠져 있었던 라트비아 여자 이야기로 가득차 있어 생각보다 별 감흥 없었던 모스크바 다이어리와는 달리, 직접 구입해서 여러 번 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 책이다. 카잔차키스는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 사회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러시아어를 오랫동안 배운 다음, 1920년대 후반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를 여행한 후에 이 책을 썼다. 작가의 균형 있는 시각이 무엇보다도 인상적이다. 그는 공산주의의 이상인 유토피아 건설이나 인류사회 진보를 긍정하면서도, 오직 투사나 군인만을 만들기 위해 개인을 말살하고 동심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규격..
최근에 레스코프 책들을 한창 읽고 있는데, 광대 팜팔론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지체 높은 가문의 고결한 영애이지만 그것이 도덕적 우월감이 되어버렸고 결국 철저히 영락해버린 마그나, "왜 모두 나의 어머니나, 내 친구들인 타오라, 포티나, 실비야처럼 살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정말이지 수정처럼 순결한 삶을 살아요." 고관대작 지위를 내버리고 고행자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상으로 굳어버린 예르미, "보아하니 이자는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곳에 빠져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 하지만 그의 마음과 성정은 선량한 것 같구나. 내가 이곳으로 보내어진 것은 은총을 입은 그의 영혼을 다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분명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광대로서의 본분을 받아들였기에 가장 비천한 곳에서도 사람을 섬길 ..
www.dilbert.com에서 네컷만화 딜버트를 자주 챙겨본다. 점심시간쯤 거의 매일 들어가 보는 편이다. 한국 웹에서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해서 야음(?)을 틈타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딜버트 법칙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장 무능력한 직원일수록 회사에 실질적인 손실을 가장 적게 끼치는 위치, 즉 경영층으로 쭉쭉 승진해 간다는 법칙이다. 웹페이지들을 좀 더 살펴보다가 동명의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냉큼 학교 도서관에 달려가서 빌려왔다. 풍자와 촌철살인의 결정체! 원래 미국식의 시니컬하고 아이러니컬한 유머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데다,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굉장히 압축적이다 보니 문화적 배경지식으로 메꿔야 하는 공백이 많아서 이해가 어려운 에피소드도 종종 있곤 했다. 줄글로 충분히 풀어놓은 책을 읽으니..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 중에 하나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및 크림 사태의 주요 측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최근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의 파시즘 경향이다. 스바보다(자유) 당과 프라비 섹토르 등의 단체는 친서방과 자유를 기치로 내걸고 있으며 이는 표면상 유로마이단의 지향점과 동일하다. 그러나 실상 이들은 공공연히 나치 계승을 표방하는 파시즘 단체로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더욱 복잡 다단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유로마이단 운동에 대한 언론의 관심에 편승하기 위해 시위 속에 섞여 들었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이, 극우 세력의 이러한 틈입으로 인해 러시아 언론은 유로마이단의 본래 취지까지 파시즘으로 싸잡은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푸틴 정권은 유..
자서전의 백미라는 찬사가 딱 어울리는 책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이 어린 시절과 관심사와 정치적 신념을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뛰어난 지성과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로 낮은 곳에 임하고자 하는 고상한 인격이, 문장 문장마다 찻잎 우리듯 은근히 배어나온다. 2010년에 타인의 고통과 동정심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집착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읽은 손유경 선생님의 《고통과 동정》이라는 책에서 크로포트킨과 상호부조론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름 모스크바 여행 때 크로포트킨스카야 역에 자주 출몰하다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젠 직접 크로포트킨 저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자마자 빌린 책. 읽다 보니 니힐리즘에 대해 언급이 나온다. 인습, 권위주의, 전제정치, 미신..
푸쉬킨 작품 중에 읽어본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 뿐이어서, 여름에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민음사판 푸쉬킨 선집을 빌렸다. 전권을 다 읽진 않고 몇 작품만 발췌독. 먼저 〈보리스 고두노프〉. 죽은 줄 알았던 황자가 두 번이나 살아 돌아와 나라가 뒤집어진 동란시대를 그렸다. 여러 이설이 있기는 하나, 보리스 고두노프는 황위 계승자를 죽이고 제위에 오른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리스의 치세에 자연재해가 계속되어 민심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수도승 하나가 승복을 벗고 황제의 의관을 입기로 마음 먹는다. 보리스가 죽이려 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황자가 바로 자신임을 주장하던 그는, 마침내 보리스의 아들을 죽이고 황제가 된다. 그렇지만 그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또 다른 찬탈자에게 황위를 넘..
3년 전 중국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시절 자주 들었던 질문이 "너는 무슨 민족이야?(你是什么民族?)"이다. 중국은 '중화 56개 민족'이라고 엄밀하게 구획해서 관리하고 있고, 개개인의 신분증에 민족성을 표시한다. 그냥 대충 한민족은 한국인이고 한국인은 한민족인 줄 아는 그런 나라에 사는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중국에서나 들을 수 있는 참으로 중국적인 질문이었다. 그곳에서 위구르어 수업을 들으면서는 신장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보았다. 회족 학생들이 꽤 많이 있었다. 보통 부모님 중 하나는 한족, 나머지 하나는 회족인데 회족 정체성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대학 입학이나 공무원 시험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여러 민족성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행정적으로 관리가 되고 있..
처음 읽은 톨스토이 대장편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 몇몇은 대학생 때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읽어 내렸다. 이번 톨스토이 장편은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가는 시점에 읽었는데,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둘다 참 절묘한 시기에 만난 것 같다. ▲ 이반 크람스코이 작 ‘미지의 여인’.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갤러리에 묘한 아우라와 함께 걸려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그림이다. 이반 크람스코이와 톨스토이는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화가 미하일로프의 실제 모델이 이반 크람스코이. 미하일로프는 안나와 브론스키가 이탈리아 생활을 하던 중에 만난 화가로, 그는 작중에서 안나에게 초상화를 한 점 그려 준다. 톨스토이가 미하일로프를 통해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