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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요새
도박의 동기 - 운명적 상황에서 성격을 창조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 기술을 발휘하고 존경을 얻기 위해서 - 이기고 대가를 얻기 위해서 - 게임 그 자체, 참여와 경험 그 자체를 위해서 -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이 선택받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상업화의 과정에서 딜러들은 점차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고정된 승률이 제공하는, 보다 예측 가능하고 보다 안전한 수익에 의존하게 됐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게임을 사람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상업 세력-도박장-은 승리가 보장되는 기발한 변화를 꾀했다. 그들은 게임에 참가하는 대신, 게임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자신들에게 패배를 강요했던 바로 그 법칙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확률 등식 안에 넣음으로써 뒤에 가만히 앉아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그들에게..
두 사람 사이에 갈등관계가 존재할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갈등관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풀기 위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왜 먼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까? 먼저 움직이면 우선 상대방에게 무어라고 말할지 준비할 수 있고, 상대방의 예상되는 반응에 대하여 다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화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협상력이나 힘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p.168) 요즘 게임이론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본 협상과 전략》이라는 책을 읽다가 평소 생각과 정말 비슷한 내용이 있어 가져왔다. 나는 상식과는 다르게, 고백을 받는 쪽이 아니라 하는 쪽이 갑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지루함을 내색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달리 보면 개인이 자기 느낌을 위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확인시켜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자기네가 어떤 입장인지는 알게 된다.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상황의 실상을 알려주는 피드백 신호를 차단하는 셈이다. 따라서 개인에게는 몰입 시늉을 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지나치게 잘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의무도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루했던 상대가 진심을 담아 작별인사나 호감 표현을 하면 지루해 했던 사람은 자신이 몰입하지 못했음을 내색하지 않고 몰입한 척 시늉만 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삶에서 가장 뼈아프고 치명적인 순간은 바로 개인이 최상의 수완을..
친구들아 만나서 얘기해보자. 편히 썼다. 1. 네 명의 논객 중 누구 의견에 가장 가까운가? 나는 스티븐 프라이 쪽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프라이는 온건 좌파, 말랑말랑한 자유주의자, 의심하는 반체제주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또 동성 결혼한 게이이며 자유주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PC의 스타일(설교, 독선, 아집)은 비판하며 그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리버럴한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온 편이지만, PC 방식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이다. 아직도 인종 차별이나 성별 간 불평등, 섹슈얼리티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이런 것들이 점차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PC는 단어 싸움 같다. 단어를 바꾼다고 해서 실제 존재하는 사회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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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7년에 출간되었으며 현지 조사는 1980년대에 이뤄졌으니 책 속 내용은 거의 30년이 지난 이야기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에 대한 관심이 뜸하고 연구가 드물었던 시절의 인류학 현지 조사 결과이기에 나름 신장 관련 필독서일 것으로 예상이 된다. Identities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신장 내에서 경합하는 여러 정체성에 대한 책이다. 저자에 의하면 위구르 농민 계층은 지리적 이동이 거의 없기에 자신이 속한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스스로의 집단 정체성을 규정한다. 반면 상인 계층은 중국 내지의 대도시와도 교류하므로 신장의 범주를 넘어 중국 공민이라는 의식 역시 어느 정도 갖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식 계층은 주로 한족과의 대비를 통해 위구르라는 민족 의식을 강조하며 ..
내가 페미니즘에 매우 실망하고 거리를 두게 되면서 집에 여성주의 관련 책이 별로 안 남아있는데 잘 읽은 몇 권은 남겨두었다. 그 중 '오빠는 필요없다'라는 책이 있는데 2011년에 중국 가기 전에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난다.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나는 진보든 보수든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고 성찰을 할 줄 몰라서 자기 입장만 우기는 꼴통 꼰대가 싫다. 처음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남자 꼰대가 싫어서였고 최근 페미니즘에 환멸을 느낀 것은 페미니스트 꼰대가 싫어서인데, 이 책은 다양한 꼰대 중에서도 운동권 꼰대를 까는 책이다. 진보 진영의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에 환멸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페미니즘을 평소 싫어했더라도 의외로 ..
용산사는 타이페이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도교의 신전은 흥미롭다.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월하노인 같은 가상의 존재, 그리고 화타나 관우 같은 실존 인물 등 온갖 것을 섬긴다. 주로 건강, 시험운, 재운, 뱃사람들의 고장이니까 해상 안전, 배우자 복이나 자식복 같은 걸 빈다. 기복적이고 아주 인간적인 내용이다. 용산사에 가면 이런 별의별 기도를 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에 타이페이 여행을 가서 주변 사람들 기도는 잔뜩 했지만 정작 내 기도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내가 선량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뭘 기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천진난만한 사람들이 부럽다.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
표트르 코즐로프는 러시아의 실크로드 탐험가 중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함께 제일 유명하다. 프르제발스키가 발탁한 제자이자 동행이었다. 심지어 둘은 비밀 연인(!)이었을 거라는 설이 프르제발스키 전기에 등장할 만큼 각별한 관계였다. 프르제발스키는 평소에 자기 부하가 결혼을 하면 실연당한 것처럼 질투하고 슬퍼하며 결혼을 매우 막았다고 한다. 덕분에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을 많이 받는다. 여하튼 코즐로프는 프르제발스키 사후에도 독자적인 탐험 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특히 고비 사막의 버려진 도시 카라 호토(흑수성)를 발굴해 내어 서하 왕조(1038–1227)의 전모를 밝히는 데 기여했다. 카라 호토는 서하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서하는 티베트·강족 계통의 탕구트인이 북중국 고비 사막에 세운 국가다..
1888년에 프르제발스키의 5차 탐험대는 카라콜 이식 쿨 근처에서 출발 준비를 마쳤으나 프르제발스키가 갑자기 사망했다. 탐험대는 이듬해 봄에 출발했다. 지리학회는 새로운 탐험대장으로 미하일 페브초브를 선임했다. 미하일 페브초프 준가르 사막에서페브초프를 탐험대장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두 차례의 중앙아시아 탐험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프르제발스키처럼 그 역시 군인이었으며 합동군사참모대학을 졸업했고 어렸을 때부터 탐험을 꿈꿨다. 기분 좋은 행운이 젊은 대장을 도왔다. 1876년에 그는 자이산에서 중국 신장 치타이 현으로 가는 카라반을 지키는 카자크 100명을 이끌어줄 것을 제안받았다. 그 길은 준가르 사막의 스텝 지역에 있었는데, 페브초프는 정확한 좌표가 표시된 이 지역 상세 지도를 최초 제..